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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레몬 사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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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May 29. 2024

축의금

희수의 이야기

표정이 없는 사람이었다.

한 번을 제대로 웃어준 적 없었다.

공감을 못해주는 것은 유전인가 싶을 정도로.



그런 우진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져 가는 모습을 

눈앞에서 지켜보는 것은

생각보다 흥미로운 일이었다.



눈썹이 휘고,

눈이 커지고,

그리고 입은 점점 벌어졌다.




거리가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눈동자는 바쁘게 움직였다.

주변 사람들 시선을 의식하고 있는 듯

이리저리 움직이며

입가의 미소를 유지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니

어쩐지 통쾌했다.



이토록 다양한 표정을 지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니. 

그동안 사귀면서 나에게 보여준 건

진짜 네 모습이 맞긴 한지, 씁쓸한 마음이 

스쳐 지나갔다.




한걸음, 한 걸음 또박또박 걸어서

드디어 우진 앞에 도착했다.




희수가 자신의 앞에서 걸음을 멈추자마자

우진의 눈빛이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얼마나 떨고 있는지 

예복 재킷에 꽂힌 부토니아까지 흔들리고 있었다.



우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말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기에 눌릴 희수가 아니었다.

내가 힘들었던 만큼 한껏 괴롭혀 주고 싶었다.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상황에 밀어 넣어

가두어 버리고 싶었다.

지금이 기회.



부토니아를 괜스레 만지며 희수가 말을 시작했다. 



"와~ 오늘 멋지네?"

"여긴 왜 왔어?" 

"왜긴? 직장동료 결혼 축하해 주러 왔지."

"하!.."

"그러라고 사내 메신저에 청첩장 뿌린 거 아냐?"

"너 뒷감당 어떻게 하려고? 사람들 수군거리는 거 안 보여?"



사람들 시선. 하! 넌 그런 인간이었지.

사귀는 내내 사내 연애 소문나면 안 된다고

사. 람. 들. 시. 선. 이 얼마나 무서운 줄 아느냐고

회사 근처에선 손 한 번 잡아준 적 없는 인간,

그러면서 다른 여직원들과는 한 없이 다정한 모습을

보이던 걸 말만 해도 "너 지금 질투하냐?"

"집착하는 거야?", "가스라이팅하냐?"라고

닦달하던 인간.



어이도 없고 개념도 없고

배려도 없는 건 여전했다.

내가 왜 이런 남자를 사랑했지?

왜 이런 남자와 결혼까지 생각했지?

과거의 희수를, 원망하고 또 원망했다.

그 원망의 반의 반이라도 우진에게 갚아줘야 했다.

그래야, 살 수 있을 것 같으니.



희수는 웃으며, 하지만 살기 어린 눈빛으로

우진의 귓가로 얼굴을 가져갔다. 

잘못 보면 마치 키스라도 할 것 같은 각도로.

마치 한 없이 다정한 커플이 속삭이는 것처럼. 



"지금 날 보고 그러는 것 같아? 신랑이 

결혼식날 신부 아닌 다른 여자랑 이렇게 

다정하게 대화하는 모습을 보면,

저기~ 아까부터 계속 이쪽 쳐다보면서

기웃기웃하는 장모님, 장인어른이 어떤 기분이실까?



우진은 당황해 신부 측을 쳐다봤다.

희수 말 대로였다. 장모님은 의심의 눈초리로

이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장인어른의 눈빛은

한껏 매서웠다. 결혼 승낙을 받기 위해 

찾아뵌 현아의 부모님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다.

뱃속의 아이가 아니었다면

결혼은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이가 아니었다면

그렇게 부잣집 딸이, 그 재신이

내 것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 일도 아닌 양 그들을 향해 웃어 보였다.



"그것 봐. 지금 내 걱정할 때가 아니라고요.

아시겠어요? 강우진 씨?"



희수 말이 맞다.

우진이 영락없이 손해 보는 판.

손해 보는 장사는 아예 시작을 안 하는 우진이었다.

희수와의 연애는 호기심에 시작했지만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다.

최대한 빠르게 끊어냈어야 했는데

생각보다 희수란 인간 자체는 나쁘지 않아

길게 끌었던 게 화근이었다.

진즉에 헤어졌다면

지금 결혼식장에서 희수를 만나는 일은 없었을 텐데.



"조용히 밥 만 먹고 가."



희수는 기가 찼다. 



"넌 여전하구나? 내가 여기 밥 먹으러 왔겠니?

암튼 결혼 식장에 무사히 들어가길 바랄게.

사진 촬영도 잘해. 내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할 거야."



뭐라고?

그냥 가는 거 아니었어?

또 어디를 헤집고 다니려고?



당황스러웠다.

이건 예상 범위에서 벗어나는데.

순하디 순한 희수지만

한 번 눈 돌아가면 걷잡을 수 없는

성격이라는 건 우진이 더 잘 알았다.

당장에라도 얼른 구슬려서

여기를 내보내야... 



"아! 나 내보낼 생각하지 말고. 이미 양쪽에 축의금 다 했어. 그러면

여기 있을 자격 되지?"

"야. 잠깐만..!"



당황한 우진이 희수의 손을 잡으려고 하자

희수는 몸을 휙 돌리곤

웃으며 말했다.




"신부가 참, 예쁘더라. 하긴 걘 입사할 때부터 예뻤지?"




등을 돌려 걸어가는 희수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만 봐야 하는 우진은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역시, 희수의 발걸음은

신부대기실을 향했다.




애초부터 이럴 목적으로 온 것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

이제 이 순간만 지나면 

정상에 도착한다고 믿는 그 순간의

정점에서 가장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기분을 선물하는 것.




희수가 진짜 건네고 싶었던,

축의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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