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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Mar 01. 2021

어린이집 적응 잘할 수 있을까?

(아니, 너 말고 엄마 말이야)

3월 2일. 어린이집이란 익숙하고도 낯선 세계로 첫 발을 내딛는 초보 엄마의 마음은 복잡하다. 우리 딸이 드디어 첫 사회생활을 한다는 생각에 기쁘지만 TV에서 연이어 나오는 ‘어린이집 사건 사고’를 볼 때면 마음 한 구석이 무거워진다. 아무리 그래도 엄마가 보는 것만 하겠어?, 애는 세 돌까지는 엄마가 필요하지, 같은 말들이 마음에 콕콕 박혀 ‘어린이집 보낸다’는 기쁜 마음이 죄책감으로 바뀌기도 하고, 등‧하원은 엄마가 하실 건가요?라고 당연하게 물어보는 어린이집 선생님의 질문에 ‘아빠가 휴직 중’이라고 일일이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 조금 불편하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이집에 꼭 보내고 싶다. 2020년, 코로나를 견뎌내며 1년 간 아이를 돌본 남편에게도 ‘숨 쉴 수 있는 자유’가 필요하고, 우리 예민한 딸에게도 사회생활이란 게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자신이 원하는 대로만 되지 않는다는 것, 때로는 엄마&아빠가 아닌 다른 어른들이 잘 보살펴주기도 한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편식을 하면 배가 고프다는 것(?)을 가르치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성격상 수더분한 엄마는 되기가 힘들다. 친구들과의 모임에서도 항상 ‘원칙쟁이’란 소리를 듣고, 친정 엄마는 ‘넌 너무 피곤하게 살아’라며 ‘마음 좀 편하게 먹으라’고 잔소리하는 데다가 어린이집에서 무슨 일 생기면 어떻게 하느냐고 매일 같이 걱정하는 나에게 오죽하면 전업 남편이 ‘그럼 걔는 어린이집 보내지 말고, 나 좀 나가게 해 줘.’라고 할 정도니.


입소 전부터 눈에 띄는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아 친구들에게 슬쩍 조언을 구해보았다. ‘어린이집 보내면 삶이 달라진다’며 21년엔 꼭 보내라고 강력하게 추천하던 친구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이미 나보다 먼저 ‘어린이집 맘’의 길을 걸어간 그들이 말한 노하우를 몇 가지 공개한다. (개인차가 있으니 참고만 하시길)



     

하나, 외출복을 가능하면 많이 사둘 것.

한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키즈노트를 보는데, 아니 우리 애만 며칠 동안 옷이 똑같아 보이는 거야. 내가 옷을 많이 준비 못했더니 로테이션이 잘 안돼서 그게 참 민망하더라? (웃음) 그날 저녁에 바로 외출복 미친 듯이 샀어.” 육아 선배들의 첫 번째 조언은 무엇보다도 ‘옷’을 많이 사두라는 거였다. 상하복으로 구분되는 편안한 옷이 활동하기 좋다면서 새 옷이든 물려받은 옷이든 쟁여두라고 했다. 다 쓸데가 있다면서.

“입학식 날은 이쁘게 입하고 싶은데 원피스 어때?”라고 묻는 내게, “제일 이쁜 날은 ‘생일잔치’ 면 족해.”라며 더 이상의 말을 생략했다.

     

둘, 네임 스티커를 모든 물건에 붙여줄 것.

나는 체육복이나 교복에 실로 박음질하던 세대.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뜯어지지 않는 강력한 실로 한 땀 한 땀 이름을 박아주면 좋겠단 생각에 낮잠이불 세트가 오자마자 수선집에 가서 이름을 박아주려고 했다. 그 얘기를 들은 친구들은 ‘ㅋㅋㅋㅋㅋㅋㅋ’를 연이어 보내며 말했다.


"‘네임 스티커’라고 네이버에 검색하면 다 나와. 요새 다 방수돼. 실도 좋긴 하지만… 그래도 네임 스티커 예쁜 거 많아"라고.


튀는 엄마가 되기 싫어 결국 난 몇 번의 검색 끝에 네임 스티커 130개를 주문했다. 토끼, 사자, 곰돌이… 정말 귀여운 캐릭터가 많더라. 우리 딸, 엄마가 너무 몰랐네. 미안~


셋, 어린이집에 대한 긍정적인 이야기를 많이 해줄 것.

“우리 아들도 어린이집 적응을 힘들어했는데 선생님이 보고 싶어 하신다 같은 긍정적인 말을 많이 해줬어.”

28개월 동안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어린이집이 처음엔 얼마나 낯설까? 다행스럽게도 집에서 30초만 걸으면 도착하는 곳이라 환경은 익숙하지만, 그 상황 자체는 분명 힘들 터. 그래서 몇 달 전부터 딸에게 세뇌를 시작했다. “어린이집이 얼마나 재밌느냐면~”, “거기 가면 맛있는 간식도 주고, 엄청 좋은 친구들도 많대.”라고 하거나, 놀이터 가서 바로 보이는 어린이집 출입문까지 걸어가서는 “여기가 앞으로 다닐 어린이집이야. 엄마 손 꼭 잡고 잘 다녀오자!~”라며 응원해주고 있다. 몇 달간의 노력이 과연 내일(입학식) 빛을 발할까 궁금해진다.


넷, 할까 말까 고민되는 말은 하지 말 것.

“할까 말까 고민되는 말은 하지 마. 네가 보면 이건 꼭 말해야 할 것 같은 순간이 와. 그때 말하면 돼. 나도 말해놓고 후회한 적 많았어. 넌 그러지 마.”


사실 가장 긴장되었던 것은 ‘선생님’과의 관계였다. 나야, 내 자식이니까 사랑으로 감싸지만 솔직히 선생님들은 아이 하나하나를 다 돌봐주기 힘들지 않을까, 선생님 한 분이 7명의 아이를 케어하는 건데 그게 가능할까? 그러다 불만이 쌓여 말했다가 선생님과 나의 관계가 틀어지면 어떡하지? 그런 생각이 줄을 이었다. 그때마다 친구들은 ‘말을 아끼라’고 조언했다.


육아 만렙이라 칭송받는 한 친구는


“아이를 맡기는 입장이니까 믿어보는 거지 뭐. 나도 아이들을 가르쳐봐서 선생님 마음을 알 것 같거든.”라고 덧붙였다.


두 아이 모두 꽤 오랜 기간 어린이집에 맡겼지만 선생님께 의견을 표현한 것은 한두 번 될까 말까 하다는 친구의 말이 크게 와 닿았다. 나 역시 담임을 하면서 모든 아이들에게 신경 쓰지 못할 때가 있었다. 그럴 땐 괜히 소외된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다음엔 꼭 한 번 더 챙겨주곤 했다. 일 년이 마무리될 때, ‘그동안 아이를 잘 가르쳐주셔서 감사하다’는 부모님들의 문자가 얼마나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묵묵히 나를 믿어준 부모님들의 마음. 그 ‘믿음’이 지금 내게는 필요하다.




어쨌거나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내일은 입학식이 있는 날이다. 엄마와 아빠는 여러 생각에 마음이 복잡한데 딸내미는 낮잠을 3시간 넘게 자고 있다. 내일 일찍 일어나서 세수도 하고 머리도 빗고 가방도 메고 나가야 하는데, 그러려면 밤에 일찍 자야 하는데, 첫날부터 지각하겠네!라고 머릿속으로 잔소리를 되뇌다 잠시 멈춰본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니지, 나한테 필요한 건 ‘믿음’, 세상에 첫 발을 내딛을 딸을 꽉 안아주어야겠다. 그리고 믿어줘야지. 우리 딸, 잘 해낼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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