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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Feb 25. 2021

갑자기 콩쥐는 항아리를 깨기 시작했어요.

<콩쥐팥쥐>_육아빠 ver. 

"갑자기 콩쥐는 항아리를 깨기 시작했어요."


옆에서 빨래 개다 어이없이 웃으며 뭐라는 거야? 애 앞에서,라고 말하자 남편은 한 술 더 떴다.


"콩쥐는 항아리를 깨며 말했어요. 어머나! 엄마! 물 채울 항아리 아홉 개가 없어졌네요!

저, 이제 잔치에 가도 되죠?

콩쥐는 앞치마를 벗고선 당황한 새엄마와 팥쥐 앞을 당당하게 지나갔답니다."   


‘원래는 이 타이밍에 두꺼비가 나타나서 도와줘야 하는데? 나타나기도 전에 콩쥐가 항아리를 깨? 이래도 되는 거야?’


애 앞에서 말하면 괜한 말싸움으로 보일까 싶어 이글거리는 눈빛을 쏘고 있었지만 남편은 무시하며 끝까지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결국 콩쥐는 행복해졌으나, 글쎄. 갑자기 불안해졌다.




그날 밤, 아기가 잠든 후에 슬쩍 얘기를 꺼냈다.


“아까 <콩쥐팥쥐> 말이야…”

“그게 뭐?”

“아니, 아직 어린 앤 데 너무 과격(?)한 걸 배우는 거 아냐? 항아리를 깨다니.”

“새엄마가 시킨 일이 말도 안 되잖아. 어떻게 애가 그 많은 일을 다 하냐?”

“그래도 어른이 시킨 일이면…”

“아니, 뭐 애는 어른 말을 꼭 말을 잘 들어야 해? 억울하거나,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안 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 그래도 시기가 있지. 28개월이 뭘 알아듣겠어.”

“그럼, 콩쥐가 꾹꾹 참고 그 많은 일 다 하는 원래 내용도 읽어줄 필요가 없겠네? 어차피 알아듣질 못하니까?”

“!”

나는 우리 한테 물을 부어도 부어도 차오르지 않는  빠진 독을 붙잡고 우는 콩쥐 말고, 부당한 ''이라고 판단되면 아예 항아리를 깨버리는 콩쥐도 있을  있다는 , 알려주고 싶어.”

“그래도… 그러다가 너무 튀어서 사람들에게 미움받으면 어떡해. 우리말도 안 듣고 막 반항하면 어떡하냐고…”

“미움을 받더라도 자기가 옳다고 믿으면 꿋꿋하게 버틸 줄 알아야지. 우리한테 반항하는 이유가 합당하면 이해해줘야지. 부모라고 무조건 옳은 건 아니니까.”

“...나중에 유치원 가서 울 딸이 다른 애들 앞에서 항아리 깨는 콩쥐 이야기하면 어떡해? 선생님이 막 상담하자고 하면?”

“아예 원래 이야기를 안 들려주는 것도 아닌데 뭐. 나도 처음부터 그렇게 읽진 않아.”

“그래?”

“그래! 처음엔 원래대로 읽어주지. 두세 번 더 읽을 때, 그때 바꿔보는 거라고. 읽는 사람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아이에게 경험하게 해주는 거니까 괜찮을 거 같은데? 뭘 그걸 벌써 걱정하냐.”

“…”


머리로는 무슨 말인지 알겠는데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28개월이고, 모두가 아는 교훈이 있는데 그걸 우리 맘대로 막 바꾸어도 되나 싶었다. 우리는 아무래도 아동교육 전문가도, 그림책‧동화책 검수자도 아니지 않은가. 우리의 생각이 검증이 안됐는데 그래도 되나?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이 이어졌다.


솔직히, 딸과 책을 읽던 나도 <콩쥐팥쥐>의 내용 중 걸리는 게 많았다. 착해빠진 콩쥐는 왜 '싫어요! 안 해요!'라고 도망치지 않는 거야?, 나무 호미로 자갈밭을 갈라고 할 때, 싫다고 했어야지, 팥쥐보다 훨씬 고퀄로 완성한 옷감을 보고도 칭찬 안 해주는 새엄마를 보며, 안 해!라고 객기도 한 번 부려봐야지! 라며, 속으로 생각한 적이 꽤  있었다.


사실 어떤 상황에서도 참고 착하게 구는 콩쥐를 보면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배웠던 대로 살아왔던 어린 날의 내가 겹쳐 보여 더 속상하고 억울했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 때문에 힘들어했던 시간들이 되살아 나, 딸이 읽어달라고 가져오면 마음속에서 울컥울컥 올라온 적도 많았다.


또 한 가지. 딸을 품고 있던 임산부 시절, 내가 매일 배를 쓰다듬으며 했던 말은 하나.


“언제든지 ‘네’라고 대답하는 아이는 되지 마. 부당하면 부당하다고, 아니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어.”였다. 


인정하기로 했다. 내 안에 꿈틀거리는 ‘항아리 깨는 콩쥐’에 대한 강한 열망을. 당장 책을 가져와 읽어달라는 딸에게 남편처럼 읽어줄 용기는 아직 없지만, 일단 그 방향으로 가보고 싶다는 것을.


존중하기로 했다. 아이와 늘 함께하는 주양육자의 방식을. 동화책에선 원래 말하고자 하는 '교훈(이라는 게 있었을지 모르지만)', 읽어주는 사람에 따라 교훈은 다양해질 수 있다는 남편의 철학을.




모든지 정석대로 하는 것을 좋아하는 엄마와, 약간의 반골 기질로 세상을 바라보는 아빠가 키우고 있는 우리 28개월 딸. 그야말로 상극(?)이며, 극단을 달리는 우리가 아이를 키우고 있다. 신생아부터 18개월까지는 엄마가 전담, 19개월부터 28개월까지는 아빠가 전담하며.



우리 딸은 항상 온탕과 냉탕을 오가며 엄빠의 철학을 온몸으로 흡수(?)하고 있는 중이다.


 


메인사진 출처 : <콩쥐팥쥐>, 블루버드 전래동화, 삼성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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