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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Feb 24. 2021

수업일기엔 아무것도 없었다. (2)

아이들은 모두 나만 쳐다보았다. 선생님이 어떻게 혼을 내시려나, 하는 표정으로 70개의 눈이 나를 보고 있었다. 일단, 한 발짝 물러나기로 했다.


"다음 수업 시간까지는 꼭 써오도록 해. 이건 우리 수업에 대한 약속이잖아."


녀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벌게진 얼굴은 서서히 원래대로 돌아왔고 누구 하나 소리 낼 수 없던 교실의 분위기는 차츰 누그러지고 있었다. 한 마디 덧붙였다.


"한 줄이라도 좋아. 꼭 수업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해봤으면 좋겠어. 엄청나게 거창한 건 아니잖아? 다음 시간까지는 꼭. 써야 해."


마지막 말에 힘을 주었다. 네 수업일기를 기다리겠노라, 대신 내가 이렇게 기회를 한 번 더 주니 감사히 여겨라, 라는 뉘앙스로 말을 던졌을 것이다. 이 정도로 했으면 별문제 없이 일기를 완성해 올  거라고, 그럼 그때는 '역시~ 쌤은 네가 그럴 줄 알았어!'라고 응원해주면 된다고, 믿었다.




드디어, 그 날이 되었다. 설렘과 걱정을 동시에 안고 들어간 교실의 분위기가 그날과 같았다. 녀석은 일기를 제대로 쓰지 않았다. 노트엔 억지로 써 내려간 한 두줄의 문장이 전부였다. 무엇을 배웠는지 기억에 나지 않는다, 따위의. 성의가 전혀 보이지 않는.


순간, 걷잡을 수 없이 올라오는 화를 참을 수 없었다. 후우, 후우, 후우... 심호흡으로도 감정이 가라앉지 않았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마구 뱉어냈다.


정말 예의가 없구나. 이럴 수가 있어? 내가 그렇게 말했는데! 수업에 대한 일기를 적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 한 두줄 더 적어서 성의표시를 해야 하는 거 아냐?! 이런 식으로 할 거면 너희 반과는 '수업일기'를 할 필요가 없어. 그만 해.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 선생님(이럴 땐 꼭 선생님이다. 쌤이 아니라)이 아무래도 잘못 생각한 것 같다. 실망이고 솔직히 너무 서운하다. 오늘 수업할 기분 아니야.


하고는 일기장을 낚아채듯 빼앗아왔다. 너희 반은 오늘 일기가 마지막이고 앞으로도 할 일 없을 거야,라고 한 번 더 엄포를 놓은 뒤, 수업을 시작했다. 칠판엔 화를 그대로 담은 판서 소리만 들렸고, 교실의 분위기는 장례식장처럼 가라앉았다. 사건의 주동자(?)인 녀석은 고개를 숙이곤 수업 내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잔뜩 쪼그라들어버린 녀석을 제대로 한 번 쳐다보지도 않은 채, 그날의 수업이 끝이 났다.




사실, '백지'를 내거나, '한 두 줄만 겨우 적어' 제출하는 일기가 처음은 아니었다. 더러는 깜빡해서, 더러는 정말 글재주가 없어서, 더러는 재미있게 쓸 자신이 없어서 안 쓰거나, 못 쓰거나, 짧게 쓰거나 했다. 그럴 때면 어르고 달래 아이들을 설득하곤 했는데 끝까지 말이 통하지 않는 경우는 드물었다. 정 안될 것 같으면 미리 와서 양해를 구하거나, 방법을 알려달라고 하는 아이들은 있어도 며칠 째 노트를 꼭 쥐고 있다가 수업 당일이 되어서야 그렇게 터뜨리는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이다. 정말 속상했다. 다른 아이들은 다 좋아하는 일기를 왜, 너희들은 못하는 거니?


궁금했다. 안 할 때 안 하더라도 아이들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었다. 들어가는 11개 반에 설문지를 돌렸고, 아이들에게 덧붙였다.


"수업 일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니? 진행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진행하는 게 좋은지 궁금해. 솔직한 생각을 적어줘. 참고할게."


그렇게 11개 반, 35명의 아이들. 대략 400명의 의견이 모였다.


결과는 충격이었다.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이 일기를 부담스러워하고 있었다. 특히 발표를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자기표현을 좋아하는 세대라고 생각했는데 선생님 앞에서, 아직 친하지 않은 반 아이들 앞에서 자신의 일기를 읽는 것이 부담이 되는 것 같았다. 또, 일기를 유지하는 데에선 의견이 갈렸다. 내가 쓰긴 싫지만 친구의 발표를 듣는 것은 좋으니 계속했으면 좋겠다는 의견, 원하는 사람만 계속하는 방식으로 바꾸자는 의견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그건 애초의 내 의도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기회를 주고, 모두가 함께 공유하는 것에서 한 참 멀어진, 제안이었기에 난 그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기가 좋다, 계속하고 싶단 의견도 꽤나 있었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우려고 해도, 자꾸만 부담이 된다, 싫다, 는 의견만이 눈에 아른거렸다.


결국 난 독단적으로 전 반의 수업일기를 중단했다.


몇몇의 아이들은 아쉬워했지만 대다수의 아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굴었다. 시작도 끝도 내 마음대로 했으면서 아이들 반응에 섭섭해했다. 예전 아이들은 정말 잘 썼는데, 너희가 나랑 마음이 안 맞나 보다, 그래, 요새 애들 글 쓰기도 발표도 다 못하지, 맞아 내가 너무 욕심 냈네, 라며 애써 합리화했다.


그렇게 한 학기가 지나고 일 년이 지났다. 어떤 수업에서도 수업일기는 진행하지 않았다. 상처 받기 두려운 마음, 아이들을 설득하기 싫은 마음, 그리고 하얀 백지를 받아 들었을 때의 속상한 마음을 견디기 힘들어 2017년 이후로 모든 것을 멈춰버렸다.




그런데 최근에 묵혀 둔 이 이야기를 털어놓을 일이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예전 나의 제자들이 그랬노라고, 참 섭섭하고 그랬는데 그 녀석들이 벌써 고3이라며 넋두리를 하자, 듣던 이는 조심스럽게 꺼냈다.


"아이들이 정말 애썼네. 네게 성의를 다 한 것 같은데? 그 정도면 정말 네 말 잘 들은 거 아냐?"

"뭐야~ 잘 쓴 애들은 얼마 없었어. 진짜 애들이 막 성의가 없었다니까!"

"음... 넌 너무 너만 생각해. 생각해봐. 네 수업이 매일 특별했을까? 특별하지 않은 수업에, 매일 같은 일상을 반복하는 아이들에게, 특별한 내용을 담은 일기를 쓰고 발표하라고 한 건 사실 애들 입장에선 너무 부담이었을걸?"

"......."

"입장 바꿔서 생각해봐~ 늬 학교 교장선생님께서 '회의일기' 같은 걸 받으신다고...! 하하"


순간 누가 뒤통수를 때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 그럴 수 있었겠구나. 하며 지난날의 나를 떠올려 보았다. 교과 협의든, 교직원회의든 각종 회의에 참석한 교장 선생님이 일장 연설을 하신 후 돌아가며 의견을 말해보라고 하면 그게 참 죽기보다 싫었다. 어차피 듣기 싫은 이야기를 들어줄 것도 아니고, 듣기 좋은 말을 하기엔 내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라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부득불 내 이름을 호명하면 "참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따위의 말을 뱉고 황급히 앉았던 내가 있었다.


진짜 속마음은 말할 수 없는 분위기에 강요받는 것이 싫어 교무수첩에 낙서를 끄적이며 보냈던 나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때의 내 모습에서 순간, 아이들이 겹쳐 보였다. 녀석들이 쓴 한 두줄의 일기는 사실, 소통이란 걸 하고 싶어 했던 나를 위해 저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예의를 표현해준 것이란 것을. 그러니까, 내가 교장 선생님에게 뱉은 '참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같은.


나는 너무 폭력적이었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을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 '일기'가 부담이 될 수 있음을 인정하고 시작했어야 했다. 모든 아이들이 글쓰기를 좋아하지 않으며, 요새는 초등학교에서도 일기를 선생님께 제출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지하고 나 스스로 조절했어야 했다.


더군다나 선생님 앞에서 일기를 발표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검열이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인정받기 위해, 칭찬받기 위해 아이는 교사가 좋아할 내용을 무의식 적으로 선별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인정했어야 했다.


또, 모든 아이들의 발표에 같은 반응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말 잘 쓴 아이에게는 최고의 피드백을 주고, 평범하게 쓴 아이들에겐 적절한 피드백을 주었을 것이다. 그 반응이 아이들에겐 또 하나의 부담이 됐다는 것도 알았어야 했다.


제한된 자유를 주어 주곤 왜 그 안에서 마음껏 편하게 쓰질 못하느냐고, 너희들은 왜 글쓰기를 못하느냐고 윽박지른 꼴이었다. 따지고 보면 백지를 내거나 아예 안 한 아이들은 400명 중에 고작 10명 정도 됐을까? 수많은 아이들이 보여준 정성에 집중하고, 한 두 개 정도의 변주는 넘어가도 될 것을 나는 저도 완벽하지 않으면서 고작 15살 아이들에게 완벽을 요구했다. 통제하며 자율을 준다 생각했던 철없는 교사 아니었나.


백지이거나, 한 두줄 적어 발표한 아이들의 속 마음을 읽어냈어야 했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선생님, 저는 이게 참 힘들어요,라고 말하지 못한 녀석들의 마음을 알아채 주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미안하다. 그걸 4년이나 지나고 깨달아서, 더 미안하다.




노트의 주인들은 지금 고3이 되었다. 4년이 흐른 지금, 새삼스레 열다섯 살의 녀석들과 함께 했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의욕만 많고 섬세하진 못했던 나의 부족함을 채워준 건 그 녀석들일지도 모른다. 녀석들은 나와 함께 했던 국어수업을 기억이나 할까? 녀석들에게 일기는 어떤 의미였을까? 특히 내가 혼냈던 녀석은 그 순간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혹여나 우연히 마주치게 된다면, 말하고 싶다. 정말 미안하다고. 그리고 고맙다고.




그 해의 수업일기엔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그 해의 수업일기엔 사실 내가 읽지 못한 '마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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