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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Mar 20. 2021

18년생의 레트로 성장앨범

엄마는 오늘도 찰칵, 찰칵, 찰칵.

없다.

아무리 찾아도 없다.


어린이집 선생님께 보내야  사진을 찾는데 아무리 뒤져봐도 없다. 작년에 찍은 사진   괜찮은 사진을 보내니 선생님이 마스크 벗은 가족사진  장만 보내 달라 신다. 정리를   하는 (?) MBTI P 유형의 부부 집은 난장판.  기질을 받았을 우리 딸도 난장판.  속에서 사진을 찍으라니 말도  . 다시 한번 고르고 골라  촬영  스튜디오에서 찍은, 그럴싸한 사진을 보낼라치니, 남편 .


“집에서 편하게 찍어 보내 달래.”


어질러진 집을 대충 정리하며, 적당히 편한 옷을 입고 입히며, 어찌어찌 사진을 찍으며 생각한다. 왜 나는 가족사진 한 장 없는가. 그동안 뭐했는가.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럴싸한’ 사진 한 장 없는가.




사실 아주 어릴 적을 제외하곤 사진을 찍히는 걸 무지 싫어했다.


좌우 비대칭이 심한 얼굴형 때문에 아무리 열심히 웃어도 비웃어 보이는 탓에 넌 표정이 왜 그러냐고 한 소리 듣기 일쑤이거나, 분명 내가 보기엔 이상한데, 괜찮다고 잘 나왔네~ 라며 애써 위로해주는 소리가 듣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각 잡고 촬영해야 하는 각종 기념사진은 늘 스트레스였다.


한 번은 친구의 웨딩촬영장을 따라간 적이 있었는데, 신부님, 신부님 고개를 약간만 더, 그러니깐 좀 더 옆으로, 좀 더, 아니요, 그 상태에서 살짝만, 네네네 좋아요. 신랑님 너무 굳으셨다. 긴장 푸시고, 자 갑니다! 하며 찍는 모습에 혼이 쏙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물론 결과물은 너무나 예뻤지만 그 과정이 고되 보여 스튜디오 웨딩촬영은 절대 안 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예비엄마들이 찍는다는 만삭 사진은 당연 제외대상이었다. 예쁜 드레스를 입고 배를 만지며 행복한 표정을 짓는 사진이 뭔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사실 임신 기간에 한순간도 오롯이 행복한 적이 없는데 만삭 사진 속의 나는 너무 행복해 보여야 하니깐, 현실과 사진 속 감정의 괴리가 견디기 힘들었다. 무엇보다도 장시간의 촬영이 무리가 될 것 같기도 했고. 그래도 앞으로는 다시없을 만삭의 모습을 남기고는 싶어, 집에서 남편과 편한 옷차림으로 몇 장 촬영해서 앨범에 꽂아두었다. 스케치북에 적힌 “너를 기다리는 엄마 아빠가” 따위의 멘트와 함께.


“얘. 바보 같은 생각 마라. 요새 애들 어린이집이랑 유치원 가면 다 성장 사진 보내라고 하는데 니 딸만 없으면 어떡하니?”


만삭 사진을 대충 찍었다는 말을 들은 엄마는 잔소리를 바가지로 퍼부어댔다. 요새는 옛날 같지 않고 사진관에서 사진을 예쁘게 찍어준다며, 만삭 사진이야 그렇다 쳐도 아기 낳고 기념사진은 꼭 좋은 데서 찍어주라고 신신당부하셨다. 고집 센 나 때문에 진짜 멋들어진 사진 한 장 없으면 이상할까 싶어 고민하고 있었는데, 출산 직후 산부인과와 연계된 사진관에서 생후 2일 된 아기를 찍어준 사진을 보고는 마음을 싹, 접어버렸다.


속싸개에 싸여 눈도 뜨지 못한 아기의 머리에 헤어밴드를 채우고 반짝 거리는 날개를 달아 찍은 딸 사진은 기이했다. 이건 아니지, 싶었다.


그래서 난, 울 딸의 성장앨범을 나 스스로 만들어주기로 했다. 50일, 100일, 200일, 300일부터 지금까지 모두 집에서 자연스러운 장면을 담아 찍어 왔다. 쏘서에 들어가서 닿을랑 말랑한 발바닥을 곧추 세우고 노는 200일, 아기 식탁에 앉아 떡 뻥을 쥐며 뒤로 넘어가게 웃던 300일, 눈 앞에 있는 케이크를 빨리 먹고 싶어 안절부절못하며 억지로 웃던 600일, 그리고 일 다녀와서 늦은 엄마에게 심술이 나 “엄마 가~”라고 말하며 울던 874일.


이 중 몇 장을 뽑아 액자에 담아 걸어 놓으니 집안 곳곳에 있는 자기 사진을 보며 웃는다. 좋아한다. 스튜디오에서 찍는 사진이야 전문가의 손길이 담겨 구도도 연출도 보정도 좋다. 하지만 어린 아기를 데리고 가서 찍는 건 어떤가. 좋은 타이밍에 사진을 찍기까지의 과정은 정말 고되다. 아기 컨디션이라도 안 받쳐주면 찍는 내내 울고 마는데 그러면 그 사진이 아무리 잘 나오더라도 나는 울던 딸의 모습만 기억이 난다.


그런데 집에서, 약간 지저분한, 그래도 삶의 흔적(?)이 묻어있는 집에서 찍어준 사진은 살아있는 것 같다. 아이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담겨 좋다. 기저귀만 입고 돌아다니는 모습, 엄마 아빠의 빵을 탐내다가 도망가는 모습, 떼쓰다가 혼나서 눈물이 그렁그렁한 모습이 정겹다.

 




아주 아주 어릴 적 친구네 집에 가서 어릴 적 앨범을 구경하는 것은 꽤나 재밌는 일이었다. 다 큰 친구의 귀여웠던 꼬꼬미 시절을 보는 것도 재미였지만, 사진 속 배경이 다 달랐던 것이 또 하나의 재미기도 했다. 때로는 외할머니댁 마당의 꽃밭 앞에서, 때로는 친한 문방구 가게 앞 평상에서, 때로는 이모가 운영했던 비디오 가게 앞에서 자전거를 타며 찍은 사진 속엔 저마다의 추억이 있었다.


필름 카메라 20장으로 모든 순간을 담아낼 수 없었던 그 시절, 엄마 아빠가 찍어준 사진은 완벽하지 않았다. 구도도 엉망이고, 보정이 웬 말인가. 눈을 감기도, 얼굴을 찡그리기도, 다른 곳을 보기도 했다. 뭔가 완벽하진 않지만 나름의 감성이 묻은 사진들. 그래서 시간이 흘러도 그 순간을 추억할 수 있는 사진들. 그래서 약간은 부족한, 그런 사진들이 좋다.


신규교사 시절, 맡은 첫 제자들의 일상을 찍은 사진을 모아 따로 우리 반만의 앨범을 만든 적이 있었다. 앨범 속엔 단합 대회하면서 라면 먹는 모습, 삼겹살 쌈을 먹기 위해 입을 쩍- 벌린 모습, 체육대회에 계주 하다가 바통을 놓친 모습들이 담겨 있었다. 졸업 후 찾아온 녀석들은 졸업앨범 속 사진보다도, 내가 손수 만들어준 굴욕사진앨범(?)을 더 좋아했다. 사진 속엔 자신을 보며 그 시절 행복했던 마음을 담아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앞으로 후배들에게 이런 사진 더 많이 만들어달라면서.




그래서 난, 지금처럼 찍어줄 것이다. 딸이 커가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은 사진을 모을 것이다. 유치원에서, 초등학교에서 사진을 보내라 하면 괜스레 민망해 일부러 스튜디오를 찾아 그럴싸한 사진을 찍지 않고, 집에서 내복 입고 찍은 모습, 콧물 줄줄 흘리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내줄 거다. 그것은 하나도 부끄러운 것이 아니며, 어쩌면 그런 사진이 더 매력이 있을 것임을 믿는다.




오늘도 우리 딸은 신나서 집안을 뛰어다닌다. 잔치국수 잔뜩 먹고 ‘그 억’ 거리면서 트림을 뱉는다. 그럼 나는 폰을 쥐고 찰칵- 찍어본다. 소리에 놀라 웃으며 다가오는 딸을 또 찍어본다. 찰칵, 찰칵,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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