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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Aug 14. 2024

편지를 써요

사각사각, 종이 위로 연필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립니다.

하이얀 종이에 까만 글씨가 하나씩, 하나씩 새겨집니다.

조용히 틀어 놓은 피아노 연주곡은 마음을 편하게 만들고,

덕분에 지난 생각들이 정리가 됩니다.



오랜만에 편지를 씁니다.



몇 주 전 아는 분을 만나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멀리 해외에서 공부하는 딸에게 뜻밖의 편지를 받고

무척이나 행복했다는 말에, 문득 나도 한 번, 

그런 깜짝 선물을 보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터에서나 다정다감하지

실제 집에서는 무뚝뚝하기 그지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지금도 만나면 살갑게 이야기하지 못해요.

(특히 엄마보다 아빠에게 더 그렇습니다.)



이기적이기도 했어요.

아주 경제적으로 힘들던 청소년기엔

부모님 때문에 내가 이렇게 힘들어졌다고

원망도 많이 했습니다. 지금에서야 객관적으로 보이지만

그때는 속으로 많이 병들어 있었습니다.

아주 많이요. 원망의 화살을 안으로 돌려

자학, 자책, 자괴감에 빠져 살았습니다.



그런 제가 이제는 다시 부모가 되어

우리 엄마, 아빠의 마음을 헤아려 보려고 합니다. 



편지지를 꺼내어 듭니다.

제자들에게 많이 써준 그 편지지입니다.

가만히 엄마의 이름을 적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엄마, 

사랑하는 나의 아빠,라고 적는데 

그 글귀 만으로도 눈물이 고입니다.



엄마가 되고 부모의 마음을 안다고 하더니

그 고리타분한 말이 진짜인가 봐요.

요새 들어 부모님 생각을 하면 많이 울컥합니다.

나보다 어린 나이에 부모가 되어

많은 곡절을 겪으며 살았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버티어 지금이 되었고요.

어린 시절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이제야 보입니다. 끝까지 책임지려고 했던

두 분의 마음이 느껴져요. 




하고 싶었던 말을 다 쓰자니 종이가 부족하여

두 장, 빼곡히 채우고 봉투를 붙입니다.

편지 속에 담긴 마음은 

원래 보이고 싶은 마음의 1/10도 되지 않습니다.

그래도 적어 보냅니다.

앞으로 계속 남은 마음을 보이면 되니까요.



폭염 경보라고 경고하는 메시지를 무시하고

이따 2시가 넘는 그 언저리 시간에

우체국을 향할 예정입니다.

따뜻하고 섬세한 마음이

바람을 타고 날아 

나의 사랑하는 엄마에게, 아빠에게 닿을 수 있도록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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