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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Aug 29. 2024

우리는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가끔은 꼼꼼한 성격이 단점이 될 때가 있는 것 같다. 특히 '과거'에 대한 기억력이 무척 좋아서 아주 사소한 것까지 끄집어낼 때 보면 약간 변태(?) 같다는 생각을 한다.


제자의 동생들을 대거 만난 후 혼자, 신이 났다. 어머나! 이렇게나 많은 아이들이 지금 3학년 애들 동생이란 말이야? '친해지고 싶다'는 이유로 무작정 다가가 장난을 걸었다.


선우뿐 아니라 서희, 시준, 은성, 준빈, 성준, 훈, 세영, 아현이 등등. 넘치고 넘치는 아이들과 래포를 형성하는 좋은 방법이라 생각했다.


"네가 00이 동생이지? 와! 정말 닮았다."

"저 멀리서 봐도 누나 얼굴이 보이는데?"


라고 친한 척을 하면 대다수의 아이들은


"아~ 쌤!!! 하나도 안 닮았거든요!!!?" 라며 싫어했는데 나는 그 반응이 좋아서 계속 말을 걸었다. 누난 요새 잘 지내냐? 오빠는 어때? 언니가 중1 때 만든 웹툰 보여줄까?




그중 형제를 제일 많이 소환했던 것은 선우였다.

현우에 대한 애정과 미안함이 각별했던 것인지, 아니면 현우(편견과 관련된 이야기 속 주인공입니다^^)와 정반대의 성격이 신기했던 것인지, 그도 아니면 현우를 핑계로 장난기 가득한 선우의 학교 생활을 조금이나마 고쳐주고 싶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나는 1학기 내내 선우에게 가서 '현우'를 핑계로 반은 진담인, 반은 농담인 협박(?)을 많이 건넸다는 것.


"형 부를까?"

"3자 대면 한 번 할까?"


이런 식으로 말하면 선우는 장난기를 이내 거두고 '죄송합니다.'라고 고개를 숙이곤 했다. 당연히 선우도 아무렇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워낙 털털한 녀석이고 또, 실제로 그렇게 한 적도 없었으니까. 또, 으레 그렇듯 나는 선우는 지금이야 장난기가 넘치지만 잘 가르치고 다듬으면 꽤 괜찮은 녀석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선우의 어머니를 만날 일이 생겼다. 현우가 반장일 때에는 한 번도 뵙지 못했던 분인데 선우의 학교 생활을 상담하기 위해 오신 것. 학년부장으로서 꼭 한 번 뵙고 싶었다. 


어머님과 현우, 선우의 이야기를 넘나들다가 그 자리에서 순간, 아차 싶었다.


내가 몰랐던 녀석의 상황에 대해서 깊이 알게 되자, 무심코 던진 "형 부를까?" 같은 말이 선우에게는 얼마나 불편하게 와닿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서로 너무나 다른 성향의 형. 나보다 모든 것을 대부분 잘하는 형.(현우는 실로 공부, 운동 등을 꽤 잘한다.) 초등학교부터 중학교까지 형과 함께 학교를 다니는 세월이 벌써 7년. 누군가가 번뜩 떠오르기 시작했다. 누구긴 누구겠나. 바로, '언니'의 그림자를 그토록 지우고 싶었던 나, 나 말이다.


선생님들이 하는 그 말이 그렇게도 싫었다면서 내가 그렇게 하고 있었다. 언니의 그림자를 벗어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며, 없던 강박과 불안이 심해질 정도로 완벽을 추구하며 살던 내가, 선생님이 되어 또 다른 누군가에게 '형제'를 들먹이며 친절한 폭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최근까지도 그것이 문제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것. 


다행히 내가 그렇게 말할 때마다 선우는 


"아! 쌤. 죄송합니다. (형 부르는 건 안 돼요.)"

"죄송합니다."


라며 늘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겉으론 무심하고 털털한 듯 보이는 선우이지만 사실 그 속은 아무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나 역시 그렇게 반응하지 않았던가. 선생님들이 지현이 동생, 지윤이냐고 물으면 멋쩍게 웃으며 뒷걸음치지 않았느냔 말이다.


그런 생각이 불현듯 스치자 미칠 듯이 부끄럽고, 미안했다. 




아이들을 만날 때 가장 먼저 하는 것은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다. 그 해 만난 애들이 100명이든 200명이든 상관없이 늘 심혈을 기울여 이름을 외운다. 민서가 학년에 4명이어도, 세빈이가 학년에 3명이어도 그걸 열심히 외웠던 것은 '이름'을 알아주고 불러주는 것의 힘을 믿기 때문이었다.


반대도 똑같다. 


"국어쌤?"


이라고 말하는 것보다 


"지윤쌤!!"이라고 불러주는 것이 훨씬 좋다. 그런 것을 아는 내가 선우를 '현우 동생'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은, 심히 미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라는 시구절처럼 내가 그 아이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때 아이들과 진짜 만남이 시작된다고 믿는다. 내가 만난 아이들은 누군가의 동생이 아니라, 그냥 그 자체로서 충분히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존재라는 것을, 다시 한번 마음과 머리에 새길 때다.


알면서도 하지 못하는 것은 '나쁜' 것이다. 




미안한 마음에 선우에게 편지를 썼다. 2학기 들어 많이 차분해지고 특히 국어 시간에 열심히 공부하는 녀석이 기특해서. 


종례 후에 와서 편지 받아 가라고 한 후에 슬쩍 건네 주자, 이게 뭐냐고 당황한다. 그냥 네 생각이 나서 쓴 편지라고 하면 될 것을 또, 굳이 "현우는 한 번도 준 적 없는 거야."라고 말을 덧댔다. 아주 나쁜 말습관이다.


벌게진 얼굴로 교무실을 나가는 현우를 배웅하며 

다짐했다.


현우는 현우고

선우는 선우다.


이제, 선우 앞에서 현우 금지.




사진: Unsplash의 Zoe Schaeff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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