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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Nov 05. 2024

책과 두 아이 (2)

"쌤... 혹시 지유... 기억나세요?"



반가운 마음에 냉큼 지유 자랑을 하며 이어진 카톡. 메시지를 주고받을수록 표정이 어두워지는 것을 감출 수 없었다. 그때가 2021년이었던가. 유난히도 구름이 많이 껴 날이 흐렸던 것은 분명히 기억한다. 주고받던 메시지를 멈추고 곁에 있던 남편을 와락 끌어안으며 아주 잠깐, 눈물을 훔쳤던 것 같기도 하다. 그때 겨우 4살이었던 우리 딸은, 그런 나를 보고 조금은 놀랐던 것 같기도 하고.



장례식장에 찾아갈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아이는 너무 어렸고, 무엇보다 제자의 장례식장에 가는 마음이 너무나 무거워서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뭐라고, 내가 뭐 그렇게 대단한 선생님이었다고 그 자리에 가 있나, 하는 생각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하찮은 고민이지만 당시엔 그랬다. 대신 부조금만큼은 보냈다. 지유가 무사히. 편안한 마음으로 눈을 감았길 기도하면서.



스트레스였을까.

중학교보다 더 극심한 경쟁에 내몰린 고등학교 입시 스트레스. 그런 것이 아닐까.

너무너무 힘들고 지친데 (실제로 지유는 중학교 때에도 성적관리에 무척이나 스트레스를 받았으니까.) 곁에 아무도 없었던 것일까. 자기 말 한마디 들어주고 토닥여줄 사람. 친구. 그 무언가라도.



나는 녀석이 아니기에 녀석의 선택에 대한 어떤 것도 가늠할 수 없다. 그저 지유를 잠시나마 가르쳤던 선생님으로서 아이의 아픔을 조금만 더 일찍 알아주고, 조금만 더 관심 있게 지켜봐 줄 걸. 하는 후회만 밀려올 뿐이다. 지유가 내게 건넨 책 속의 글이 얼마나 무겁고 진지했던가. 생각의 늪에서 한참을 헤매다 고르고 고른 말로 정리했을 그 책 속에, 지유가 하고 싶었던 말이 다 담겨있지는 않았을지. 글로 풀어내다 풀어내다 안 되었던 것일까. 지유 생각을 하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도서부장이었던, 학급 회장이었던, 항상 교무실과 복도와 도서관을 누비며 밝게 웃던.

그럼에도 가끔은 깜짝 놀랄 모습으로 등교해 주목을 받았던.

그리고 지금은, 어딘가에서 반짝이는 별이 되었을.






고3 때의 일이다. 

집안 형편은 어렵고, 공부는 안 되고. 그런데 내 안의 기준은 높고. 독서실에 홀로 앉아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한 번 불안한 마음이 들면 걷잡을 수 없이 퍼져 생각을 멈출 수가 없는데, 대학을 가야 한다는, 지금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인생이 망할 것이라는 극단적인 생각이 자꾸만 떠올라 공부를 할 수 없는 나날이 매일같이 이어졌다.



폭식을 해서 살이 20kg 가까이 찌니 더 우울해졌다. 나보다 공부를 잘하지 못했던 친구가 나보다 더 좋은 대학을 갔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도리어 성적은 더 떨어졌다. 마음은 조절하기 힘들었다. 자꾸만 내 안에 나를 가두며 괴롭혔다.



- 너 그것밖에 안 돼?

- 그러니까 네가 성적이 그렇게 떨어지지.

- 그러고도 네가 지금 밥을 먹을 자격이 있어?



우울의 반작용으로 과한 충동성이 이어졌다. 안 하던 짓을 했다. 수업 시간에 장난을 치다 걸리거나, 판서하는 선생님의 뒷모습을 보며 춤을 추고, 점심시간에 교문 밖을 나가다 교장선생님께 걸려 혼나고,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도망을 나가 담임 선생님께 혼나는 건 다반사였다. 뭐 어때, 고3인데. 라며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었다.



혼자 있을 때면 걷잡을 수 없이 밀려오는 우울에 이기지 못한 날이 있었다. 

하루는 독서실에 혼자 앉아있는데 도저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내가 도대체 살아서 뭐 하나, 차라리 죽어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떠올랐다. 보통 거기서 멈추는데 그날은 멈춰지지가 않았다. 그래, 어쩌면 그게 나을지 몰라.



흰 종이를 하나 꺼내 유서를 쓰기 시작했다.



엄마, 엄마... 엄마.... 



글을 쓰는데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엄마에겐 뭐 그렇게 미안한지, 미안하다는 말만 늘어놓았다. 가족에게 한 마디씩 남기고 싶은 글을 적고, 나니 종이가 눈물로 뒤범벅이 되었다. 숨죽여 흘린 눈물이 나름 치유가 되었는지 마음이 한결 홀가분했져 신기했다. 죽을 마음으로 쓴 유서가 내 숨통을 트게 하는 아이러니. 



그 유서는 독서실 어딘가에 처박아 놓고 나중에 모두 버렸지만, 난 그 덕분에 하루를 더 살아갈 힘을 얻었다. 






다 안다고, 힘든 마음 내가 다 겪어봤고 이해한다고 감히 말할 수는 없으나

지유가 겪었을 마음의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는 조금이나마 가늠할 수 있다. 이 넓은 세상에 혼자 있는 기분. 무엇을 해도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그 마음이 나를 얼마나 작게 만드는지. 곁에 있는 누구도 나를 위로해주지 못한다는 기분이 들 때, 삶에 대한 의욕마저도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가끔 책상 서랍에 고이 담아 둔 지유의 책을 보면서 생각한다.

지금쯤 스물세 살이 되었겠구나, 하고. 아마 글을 쓰는 쪽으로, 전공을 정하지 않았을까, 하고.



아직도 내 카톡엔 지유와 나누던 2018년도의 대화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별이 되어 반짝일 녀석이, 혹시라도 중학교 시절 국어 선생님을 기억한다면, 우리 함께 했던 17년, 18년이

녀석의 삶에 가장 행복하고 평안했던 순간이기를 바란다. 그리고 조금 더 세심하지 못했던 그 시절의 나와 그런 나를 묵묵히 믿어주고 지지해 줬던 지유에게 마음을 전하고 싶다. 고맙다. 고생했다고.






앞으로 내가 만날 제2의, 제3의 지유를 위해서

나는 오늘도 아이들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건다.



"오늘, 기분은 어때? 별일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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