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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Nov 14. 2024

넌, 이야기를 쓰는 재주가 있어

처음 수업에 들어가 이현이와 눈이 마주친 날이 기억에 남는다. 유난히 반짝, 거리던 눈빛과 약간은 짓궂은 인상이 인상적이었다. 




워낙 장난꾸러기가 많던 학급이었다. 

같은 초등학교에서 같은 중학교로, 그리고 같은 반으로 배정된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시끌시끌, 와글와글, 그리고 웅성웅성 거리는 소리가 늘 고정적으로 교실을 가득 메우는 곳이었다. 조용하고 차분하게 수업을 이끌어 나가기가 어쩐지 더 힘이 드는 곳. 그 교실에서 이현이는 늘, 책을 옆에 끼고 살았다.




책상 위, 사물함 안, 그리고 가방 속에 늘 좋아하는 소설책을 한 아름 쌓아 놓았다. 교과서를 펼 자리가 부족할 정도로 쌓여 있는 책을 교탁에서 바라보면, 가끔 ‘도대체 무슨 책을 읽는 걸까?’ 하며 알은체를 하고 싶은 적도 많았다. 하지만, 담임 선생님도 아닌 내가 굳이 다가가서 아는 척을 했다가 혹시, 정말 혹시 기분을 상하게 할까 봐 선뜻 나서지 못했다. 그저 녀석이 읽는 책이 어제와 다르구나, 오늘은 저 정도 읽었나 보다, 하는 정도로 그쳤다. 거기까지가 이현이와 나의 심리적 거리, 였다. 




내 소심한 태도와 다르게 이현인 수업 시간에 생각보다 많이 적극적이었다. 책을 좋아하면 수업에는 소극적일 것이라는 생각과 다르게 이현이는 모둠 활동 때에는 주도적으로 활동을 이끌어 갔으며 특히 발표를 즐겨했다. 제 생각을 이야기하고, 상대방과 생각을 나누는 모든 활동을 좋아했다. 적당한 농담을 좋아해 수업 중간에 활력을 불어넣어주기도 했다. 통제를 좋아하는 내게 가끔은 녀석의 말 한마디가 맥을 끊게 할 때도 있었으나, 개인적으로는 이현이의 그런 적극성이 좋았다. 뭔가 야무진 중3 여학생 같은 느낌. 




한 번은 수업이 일찍 끝난 적이 있다. 뭔가를 더 하기도 애매하고 나 역시 조금은 힘들어서 10분 정도 남은 시간을 자유롭게 쓰라고 말할 참이었다. 


“이제부터 10분 정도는 자유 시간이야. 떠들지 말고 자기 자리에 앉아서 조용히 다음 수업 준비하자.”


라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이현인 가방에 있던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제 곁에 항상 두는 인덱스를 펴 놓고, 메모장을 꺼내며 그렇게 제 루틴 속에 들어가 책을 읽는 듯했다. 친구들과 장난치며 웃고 떠드는 다른 아이들을 지도하다가 문득 이현이를 바라보면 조심스레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이미 절반 이상 넘어간 책장을 한 손에 쥐고 집중하는 이현이를 바라보면 알 수 없는 뿌듯함을 느끼곤 했다. 




가끔 복도에서 마주치면 이현이는 꼭, 그렇게 반갑게 인사를 했다.


“OO선생님!”

“OO쌤! 내 거 해요!”


라며 다소 투박하게 마음을 표현하는 이현이가 나 또한 좋아서 맞장구쳐 준 적도 많다. 나를 가르치지 않는 선생님은커녕 나를 가르치는 선생님을 복도에서 마주쳐도 인사하지 않는 아이들이 태반인 세상이다. 그런데 언제고 날 보며 반갑게 인사해 주는 녀석이, 기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로 마주치지 못한 적을 제외하고 우리는 언제고 어디서고 만나면 반갑게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그렇게 지낸 세월이 벌써 8개월이 넘어간다.




3월, 갓 입학해서 아직은 초등학생 같던 이현이는 어느덧 중학교 생활에 적응해 제법 중학생 태가 난다. 중학교 1학년이 끝나면 어쩌면 다시 보기 힘들 것 같아 아쉬움이 들던 차에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을 모아 글을 써 책으로 출판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정식 출판사를 통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가 출판을 이용해 우리들의 글을 책으로 만들게 된 것이다. 글을 쓰고, 편집하고, 책으로 출판하는 것이 쉽지 않은 작업이라 망설여졌지만 이왕이면 내가 처음 학년 부장을 하며 만난 아이들과의 추억을 남기고 싶어졌다. 여태까지는 아이들의 글만 책으로 만들었다면 이번엔 아이들과 나의 글을 함께 엮어 책으로 만들겠다 마음까지 먹었다.




책을 좋아한다면 글도 잘 쓸 것 같았다. 아니, 잘 쓰진 못해도 쓰는 것을 즐겨할 것 같았다. 또, 글을 함께 쓰면서 일주일에 1~2번을 만나면서 이현이와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미리 섭외한 같은 반 친구에게 슬쩍 ‘이현이의 의중을 물어봐 달라.’고 전하니 며칠 후에 녀석이 찾아와 운을 뗐다.


“선생님. 이현이, 글쓰기 할 수 있대요!”


기뻤다. 원하는 작업을 글쓰기를 즐겨하는 아이와 함께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3년 동안 아이들을 데리고 억지로 글을 쓰게 했던 시절들……. 얼마나 힘들었는지.) 더군다나 항상 녀석이 어떤 생각을 할까 궁금증을 불러일으킨 이현이와 함께 하는 글쓰기라니. 좋지 않을 수가 있을까.




무튼, 그렇게 이현이와 서윤, 다경이와 나는 11월과 12월. 매주 한 번씩 만나기로 했다. 우리는 만나서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서로의 글을 읽고, 서로의 삶을 나누기로 했다. 그리고 12월의 그 어느 때가 되면 우리의 글을 모아 책 한 권으로 만들기로, 그러니까 최대한 열심히 성실히, 진심을 다해서 글을 쓰기로. 




지난 10월 31일, 첫 만남에서 우리는 마치 그동안 같은 반이었던 사람처럼, 아니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던 사이처럼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실명은 부끄러우니 필명을 만들자, 만들 거면 신중하게 결정하자, 선생님은 OOO가 어떻겠느냐며 서로 수다를 떨다 보니 시간이 훌쩍, 흘러 버리기까지 했다. 




그리고 며칠 전, 이현이가 제출한 소설을 읽었다. 역시 나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다른 두 친구들과 다른 이현이만의 무엇이 느껴지는 글이었다. 스토리를 이끌어 가는 힘이 남달랐다. 다음 날, 교무실로 찾아온 이현이를 보며 네 글 정말 잘 읽었다, 넌 이야기를 쓰는 재주가 있다, 고 칭찬하니 부끄러워한다.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 맞다. 나는 글 쓰는 것을 좋아하지만 이런 에세이 한정이다. 소설은 몇 번 써보려고 시도했다가 포기했다.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안다. 아직 엄두도 내지 못하는 일을 이현이는 완성해서 제출했다. 그 자체로 대견하고 존경스러운 마음까지 든다.




며칠 전, 체험학습을 간 이현이. 

복도에서 반갑게 인사하며 아는 체 해주던 녀석이 없으니 어쩐지 학교가 조금은 허전하다. 약간은 수다스럽지만 그 안에 따뜻함이 가득 담긴 녀석이 얼른 학교로 돌아왔으면 좋겠다. 그래서 녀석의 글을 또 읽고 싶다. 





사진: UnsplashN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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