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녕 Mar 27. 2021

너는 90년대 맛을 사랑하는구나.

계란에 밀린 게 아니었어. 세월에 밀린 거지.

탁탁탁탁. 도마 위를 춤추듯 움직이는 칼의 경쾌한 리듬.

치이이익. 팬 위에 물 흐르듯 흐르는 기름의 고소함.

촤아아악. 알맞게 달궈진 팬, 기름 위에 쏟아지던 야채들의 움직임.

적당히 야채가 볶아졌을 때 따뜻한, 흰 밥을 툭툭 털어 넣고.

소금을 찹찹, 깨소금 톡톡 넣어주면.



학창 시절, 시험이 끝나면 난 친구들과 떡볶이를 먹으러 가는 대신 집으로 곧장 달려갔다. 공부하느라 지친 내게 엄마가 해준 야채 볶음밥은 세상 좋아하는 떡볶이보다도 강력한 힐링푸드였기 때문이다. 달큼하면서도 짭조름한, 느끼하면서도 고소한 맛에 김치를 죽어라 안 먹는 나도 김치 한 점 집어서 밥이랑 같이 먹곤 했다.




딸과 같은 추억을 공유하고 싶었다. 유아식을 시작한 순간부터, 머릿속엔 ‘볶음밥’에 대한 로망으로 가득했다. 엄마가 내게 추억을 준 것처럼, 나도 딸에게 추억을 주고야 말겠다는 일념으로 ‘볶음밥’을 먹일 시기만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때가 왔다. 모든 재료에 알레르기 반응 무(無), 햄은 너무 어리니 패스, 대체할 새우 역시 이유식 때 무난히 통과. 고슬고슬한 밥 준비!


탁탁탁탁. 똥 손이지만 재료 하나하나 정성껏 다져놓고, 팬에 기름을 스윽- 둘러놓고, 야채와 새우를 넣는다. 치이이이익- 그래! 이 소리다. 일요일 아침에 나를 흥분시켰던 소리.

밥을 넣고 열심히 쉐낏 쉐낏 볶아주고, 맛소금을 넣어 간을 맞춘다. 그리고 울 엄마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 동그란 틀에 넣어 모양을 만들고 좋아하는 계란을 덮어 오므라이스처럼 장식하면 끝!


“엄마가 볶음밥 했다~!?”


식판 속 노오란 계란지단을 보고 신난 딸내미! 숟갈을 들어 뒤적뒤적거리다가 계란에 먼저 손이 간다. 양손으로 계란 지단 다 먹고 나니, 드디어 드러난 나의 완벽한 볶음밥! 숟가락으로 한술 떠 입으로 넣는 순간. 딸아이의 표정이 오묘하다. 한두 번 떠먹더니...


안 먹는다.


식판을 탕탕 치며 계란 찌꺼기를 들며, 이거 더 달란다.


결국 그날 나는, 계란만 두 번 정도 다시 부쳐 주었다. 그날은 나의 노력이 한 낱 계란에 밀린 날이었다.  


이후 수차례 볶음밥을 시도해 딸 앞에 대령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가끔은 반 공기 정도 먹었으나 대체로 볶음밥은 성공하지 않았다. 새우 대신 어묵이나 소고기를, 혹은 돼지고기를 넣은 적도 있고, 오로지 야채만 넣거나, 싫어하는 감자를 아예 빼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만들어주었지만 딸은 입을 다물었다. 이제는 아예 나만 먹을 거 만드는 김에 같이 먹을까 싶어 물으면, 고개를 획 돌리며 “시어!” 답하는 수준.


근 1년 간 노력 끝에 생각했다. 얘는 볶음밥 싫어하는구나. 나랑은 다른 존재구나. 받아들이기로 했다. 내 추억을 아이에게 강요하지 않기로. 내 입맛을 아이에게 강요하지 않기로.




작년 8월, 딸과 함께 친정에 간 적이 있다. 하필이면 그때 돌발진이 와서 동네 소아과를 전전하며 고생하고 있던 차였다. 밤새 간호하느라 지친 내가 안쓰러웠던 엄마는 뭐라도 먹으라며, 뚝딱 볶음밥을 만들어주었다. 누가 해준 밥이라 그런가, 엄마가 해준 밥이라 그런가, 아니면 그냥 너무 힘들어서 그런가 그날의 볶음밥은 햄도 없었는데 맛있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그 순만만큼은 시험 끝나고 집에 와 밥을 먹던 중학생으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그러니까 2020년인데, 1990년대의 맛이 났다.


네 딸도 뭘 먹어야겠지 않느냐고, 아플 땐 먹어야 힘이 난다고 걱정하던 엄마는 볶음밥은 집에서 몇 번을 해줬는데도 다 남기고 버렸다고, 쟤는 볶음밥 별로 안 좋아한다고, 차라리 김에 밥 싸주는 게 나을 거라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릇에 볶음밥을 한가득 담아 손녀에게 건네주었다.


“아마, 안 먹을 거야. 집에 김 있지?”


혹시나 엄마 상처 받을까 일어나 김을 찾으려는데


가.


잘 먹는다. 너무 잘 먹는다. 숟가락에 가득 퍼서 입에 넣고 오물오물, 다 씹기도 전에 또 하나 가득 퍼서 입에 넣고 오물오물. 목이 메는지 물을 쭉쭉 들이켜더니 다시 또 한 숟갈.


이럴 수가. 이럴 수가! 집에선 한 번도 보지 못한 모습에 놀라, 멍하니 있자 엄마가 말한다.


“잘 먹는데? 어유~ 이뻐! 그래 잘 먹어야 금방 낫지! 많이 먹어 할머니가 더 줄게. 얘. 너 어릴 적보다 더 잘 먹네. 아빠 닮았나 보다!”


그날... 딸은 볶음밥을 두 그릇 해치웠다.


밥상을 치우고 불룩해진 배를 쓰다듬으며 행복해하는 딸을 옆에 두고 어이없어 말을 꺼냈다.


“아니, 엄마! 분명 집에선 안 먹었어. 내가 한 건 진짜 한, 두 번 먹고 뱉는단 말이야. 어떻게 엄마가 한 건 이렇게 잘 먹지? 말도 안 돼! 엄마 또 미원 넣은 거 아냐?”

“그게 뭔 소리니~ 볶음밥에 미원을 왜 넣어!”

“아니 그럼 이렇게 차이가 날 수가 있어?”


당황스럽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고, 배신감도 들던 난 분명히 비법 가루가 있을 거라면서 엄마의 주방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비밀은 없었다. 콩기름 식용유, 소금, 후추, 진한 참기름, 진간장. 아주 오래전부터 쓰던 엄마의 재료들 뿐. 분주하게 움직이는 나를 보던 엄마 왈.


“얘. 나랑 너랑 같니~~?”

"......”


그제야 깨달았다. 39년 차 주부의 음식과 손맛 따윈 하나도 없는 5년 차 야매 주부의 그것은 달라도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우리 집에 와서 엄마가 끓여준 김치찌개에서 친정의 맛이 났다는 것을. 어릴수록 정확한 입맛 덕에 딸은, 할머니의 음식에서 39년 내공의 맛을 느꼈다는 것을.




집에 돌아가는 길. 카시트에 앉아 곤히 자는 딸을 보며 생각한다.


딸, 딸은 1990년대 맛을 사랑하는구나.

아니, 딸, 너도 나랑 입맛이 같구나.



작가의 이전글 친정 엄마가 보낸 택배 상자에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