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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Apr 03. 2021

삼양라면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기업의 맛에서 엄마를 찾다

"라면 하나 끓여 먹을래?"


엄마는 가끔 나에게 슬쩍, 라면을 권유했다. 자칭 라면 키드였던 나는, 좋아라 했고 그러면 엄마는 당신이 좋아하는 삼양라면을 두 봉 뜯어 끓여주었다. 라면의 자극적인 냄새가 집안에 퍼질 때, 보글보글 물이 끓어갈 때면 입에 침이 고였다. 평생을 전업주부로 살아온, 워낙 손맛 좋은 엄마이니 엄마가 끓여주는 라면의 맛은 얼마나 대단할까 싶어 어린 왕자를 기다리는 여우처럼 행복했다.


몇 분 후 삼양라면 특유의 기름진 냄새와 함께 오랜만에 간편한 라면을 끓여 신난 엄마의 얼굴을 보니, 어린 나도 덩달아 신이 났다.


하지만 엄마가 끓여 온 라면은 충격적이었다.


건더기 수프는 하나 없고 국물은 멀겋기만 했다. 1분도 채 익히지 않아 지나치게 꼬들꼬들한 면은 목젖을 할퀴며 넘어갈 정도였다. 심지어 그 곁에 정체성을 상실한 소면이 둥둥 떠다녔다. 먹고 싶지 않았다. 당장에라도 달려가서 컵라면에 물을 붓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내 마음을 알리 없는 엄마는, '많이 했으니, 많이 먹으라'며 젓가락으로 듬뿍 떠, 그릇에 담아주었다. 국물은 몸에 안 좋아, 라며 면발만 건져준 엄마의 마음은 따뜻했지만, 그래서 열심히 젓가락질을 해댔지만 맛은 없었다.


39년 차 요리 내공 만렙의, 주부 구단 엄마의 라면은, 라면이 아니었다. 요리 잘하는 엄마가 가장 못하는 요리. 그게 라면이었다.




따지고 보면 엄마와 나의 취향은 극단이었다. 엄마는 삼양라면을 좋아했고, 나는 신라면을 좋아했다. 엄마는 라면 속 건더기 수프는 아예 버리고, 분말 수프만 넣었지만 나는 라면에 들어있는 모든 수프를 다 넣었다. 엄마의 라면은 물이 끓은 지 1분도 안되어 꺼낸 것 같은 꼬들한 면발이었지만, 나의 라면은 적당히 푹, 퍼진 면발이었다. 엄마는 라면의 순결함을 사랑해 계란을 풀지 않았지만, 나는 반숙 노른자의 고소함이 좋아 계란을 꼭 깨뜨려 넣었다. 그렇게 엄마의 라면과, 나의 라면은 달랐다.


사실 요리를 잘하는 엄마 덕분에 살아오면서 주방에 들어갈 일은 거의 없었다. 명절날, 전 부치기라도 도와줄라치면 엄마는 '시집 가면 다 하게 된다'면서 극구 주방에 들어오는 것을 막아냈다. 주방은 엄마의 영역이었고, 그곳엔 설거지 거리를 놓으러 갈 때 외의는 갈 수 없는 신의 영역이었다. 그런, 신의 영역에 나 같은 인간이 들어가게 된 것은, 한 봉지의 라면 때문이었다.


불고기나 갈비가 먹고 싶으면 엄마에게 말해야 했지만, 라면만큼은 나 스스로 해낼 수 있었다. 아니, 해내야 했다. 엄마의 라면은 최악이었기에 라면을 먹으려면, 원하는 맛을 내려면 주방에 입성해야 했다. 내가 끓여줄게, 엄마가 맛있게 끓여줄게.라는 속삭임에 몇 번 속은 후, 나는 라면 앞에서는 솔직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처음 말했다.


“엄마. 엄마가 끓여준 라면, 맛없어.”




엄마는 라면이 다 거기서 거기라고 말했고, 나는 거기서 거기가 아니라 이렇게 먹어야 맛있다고 했다. 엄마는 라면 국물이 뭐가 맛있냐고 했고, 나는 국물이 있어서 맛있다고 했다. 엄마는 신라면이 매워 싫다고 했고, 나는 삼양라면의 소시지 건더기가 최악이라고 했다. 라면 앞에서 절대 기죽지 않는 딸을 보며, 요리를 죽도록 싫어하는 딸이 파르르 거리며 냄비에 물을 받는 걸 말없이 지켜보던 엄마는 결국 “네 맘대로 해 먹으라”라고 주방을 내어 주었고, 그때부터 원하는 대로 라면을 끓여 먹었다.


최초의 독립이었다.


그랬다. 라면은 내가 유일하게 불 앞에서 당당할 수 있는 요리였다. 가장 정확한 레시피가 있는 요리, 누구도 그 레시피만 따르면 기본은 해낼 수 있는 요리. 더불어 그 안에 내 취향을 넣어볼 수 있는 요리였다. 요리 똥손인 내가 절대 실패하지 않을 요리, 40여 년 넘게 주방 한 번 들어가 보지 않던 아빠가 취향껏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요리.


라면은, 단 하나의 맛으로 통일되어 몇십 년 간 유지되었던 우리 집 밥상을 붕괴했던 밥상의 이단아였다. ‘라면 먹을래’라는 말이 나오면 각자 냄비를 들어 좋아하는 라면을 꺼내게 되는, 그런 존재.


그래서 결혼 전까지 나는 엄마와 한 순간도 같은 라면을 공유하지 않았다. 찬장엔 삼양라면과 신라면, 그리고 진라면 매운맛이 날을 세운 채 서 있었다. 그리고 서로의 라면을 보며 늘 똑같이 물었다.


“그게 맛있어?”




“어! 이거 울 엄마가 좋아하던 라면인데.”


한 번은 마트에 가 쌓여있는 라면 봉지 안에서 엄마가 좋아하는 삼양라면을 발견한 적이 있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을 때라 그런지, 문득 엄마 생각이 났다. 라면에서 엄마 생각이 난다니, 조금은 우스웠지만 한 봉 담아 집으로 데리고 왔다. 불현듯, 엄마가 먹던 그 맛이 그리워져 엄마가 끓이던 대로 흉내를 내보았다. 건더기 수프 하나 없이 끓이는 멀건 국물 가득한, 꼬들꼬들한 삼양라면.  


한 젓가락 들어 후루루룩 면치기를 해본다. 국물을 떠 호로로록 먹어본다. 두 세 젓가락에 끝나 버리는 양도 아쉽지만, 무엇보다 국물을 다 먹으니 그릇이 말끔해졌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엄마는 이런 라면을, 이런 맛을, 이런 느낌을 좋아했구나. 평생을 주방에서 살다시피 했으니까 라면만큼은 정말 후딱 해치우듯 간편하게 먹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엄마 어릴적부터 먹어온 삼양라면을 먹으며, 그 어린 시절 맛을 그리워 한 건 아닐까.하고.


여전히 라면은 맛이 없었지만, 엄마의 맛이 있었다. 그 안에 엄마의 삶이 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삼양라면이 오래도록 나왔으면 좋겠다. 아니, 삼양라면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먼 훗날, 우리 엄마가 내 곁에 없는 순간이 왔을 때에도 삼양라면 한 그릇에 엄마를 추억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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