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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우 Feb 13. 2020

인간관계를 위한 빨간약(9)

[명제 둘, 누가 힘을 쥐고 있는가?]

두 번째 명제는 [나는 관찰된다]를 확장해서 집단 내에서 관계 맺기를 할 때 중요한 특성을 다뤄보려 합니다.



이 명제는 무리 내에서 관계 맺기 할 때 힘을 발휘합니다. 설명을 위해 두 사례를 제시합니다.


•사례 하나.


고등학교 친구들과 하교하는 길입니다. 우리는 친한 사이라 화장실에서도 스피커폰을 켜고 통화할 정도죠. 친구들 사이에서 가장 말을 잘하는 건 철수입니다. 별것 아닌 이야기도 철수가 하면 빵빵 터지거든요. 그래서 대화는 철수를 중심으로 흘러가고 다들 그걸 은연중에 바라는 것도 같습니다. 참! 우리 그룹에는 만덕이도 있습니다. 만덕이는 유머 감각이 떨어지는 데다, 자기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고 실없이 웃는 친구죠. 오늘은 만덕이가 제게 말을 걸었군요. 토익 LC를 두 번 치는 기분이 이런 걸까요? 이대로 더 듣다가는 소리를 지를 때쯤 누군가 구원의 손길을 내밉니다.


“집에 가기 전에 LOL 한판 하고 갈까?”


LOL이라면 만덕이가 Master 티어입니다. 우리는 일제히 만덕이의 얼굴을 봤습니다. 결연한 눈빛을 보니 어떤 챔프를 골라야 할지 다 계획이 있는 것 같군요.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마스터.


•사례 둘.


학창 시절을 잘 보내고 철수는 중견기업의 영업사원이 됐습니다. 주류영업을 담당하는 철수는 여러 사람에게 인기가 있습니다. 어딜 가나 센스 있게 말을 받아주다 보니 모두 호감을 느끼는 거겠죠. 오늘은 동료와 함께 점심을 먹으며 주말에 있었던 이야기를 좀 풀어낼 예정입니다. 그런데 부장님이 초복이나 다 같이 삼계탕이라도 먹자고 합니다. 센스는 없는 분이지만, 책임감이 강한 분이라 모두가 아버지처럼 따르는 우리 부장님. 군말 없이 부장님을 따라간 철수는 예의 바르게 숟가락과 젓가락을 세팅했습니다. 어색한 침묵이 감도는 식탁 위에는 소금 단지가 단출히 올라 있습니다. 오늘 할 이야기도 소금과 관련된 썰이었는데 못 풀어서 아쉽습니다. 멍하니 소금 단지를 바라보고 있자, 어디선가 들뜬 목소리가 들립니다.


“자네들 소금이 죽으면 뭐라고 하는지 아나?”


아아, 아버지 제발......철수는 말없이 주변을 둘려봅니다. 다들 웃을 준비는 돼 있습니다.


이 두 사례로 제가 논증하고자 하는 건 인간관계에서 힘이 차지하는 비중이 더 크다는 겁니다. 특히 관계의 형성, 결속, 유지에는 모두 힘이 주요한 동인으로 작용합니다. 왜 그런지 사례를 좀 분석해보겠습니다. 만덕이와 부장님은 모두 말을 잘하는 편은 아닙니다. 그러나 모두가 둘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이유는 뭘까요.


1)만덕이가 할 이야기는 우리의 승패를 가를 만큼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2)부장님은 유머 감각과는 별개로 우리 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입니다.


만덕이는 말하는 주체로서의 권위도 있지만 말 자체의 힘도 셉니다. 지금 만덕이가 할 이야기는 결정적 정보일 뿐만 아니라 전문가의 입에서 나온 무게 있는 언어입니다. 우리가 영혼까지 귀 기울여 만덕이의 말을 듣는 건 이 때문입니다. 반면 부장님의 개그는 끔찍하지만, 말을 하는 주체의 사회적 지위와 힘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정보로서의 가치도 긍정적 감정을 불러일으키지도 않을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물개박수를 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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