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명우 Feb 13. 2020

인간관계를 위한 빨간약(10)

[분석 1_1/3]

•부정적 물리력 : 주체가 객체에 불이익을 줄 수 있는 관측되는 힘. 


‣단순히 정의한다면 권력으로 요약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부정적이라는 단어에 방점을 찍고 싶습니다. 이는 타인의 생활과 욕망을 통제할 힘을 의미합니다. 단적인 예를 든다면 소속 집단 내의 상사가 지닌 힘이 있겠네요. 사례 둘에서 철수와 동료들이 부장님의 유머에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건 부장님이 모두에게 영향을 미칠 물리적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부장님이 인사고과나 업무량까지 결정할 수 있고, 이런 권한이 외부에서도 관측되며 철수까지 알고 있다면 철수는 부장님의 비위를 맞출 수밖에 없습니다. 이건 상대와의 관계가 틀어졌을 때 내가 받을 피해가 큼을 알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하지만 이 부정적 물리력은 불이익을 가할 힘이기에 상대를 굴종시킬 수는 있으나 관계를 돈독하게 만들기는 힘들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관리자와 부하직원의 사이가 나빠도 팀워크가 가동되는 조직을 생각해 보면 직관적으로 이해가 될 겁니다. 부정적 물리력은 상대의 눈치를 보고 그를 두려워하는 심리와 행동을 야기합니다. 이런 관계는 외부적으로는 주종을 형성하고 내부적으로 상대를 경원하는 심리로 발동합니다. 다수의 사람은 이 관계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말로 포장하지만, 저는 따를 이익이 없다는 말로 정의하고 싶습니다. 여기서 저는 왜 부정적 물리력을 가장 앞에 놓았을까요? 위의 내용을 읽은 분들이면 자연스레 이런 의문이 들었을 겁니다.


“나는 상사를 경원하는 게 아니라 혐오하다시피 하는데 이게 관계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상사가 내게 개인적인 부탁을 해도 들어줄 생각도 없는데 과연 관계 형성에서 가장 강한 힘으로 작용할 수 있나?”


직장 내 인간관계에 치여본 분이라면 이런 생각을 한 번쯤 해 보셨을 겁니다. 그러나 여기서 보이는 것처럼 상대를 혐오함에도 관계를 이어나간다는 점에서 부정적 물리력의 힘은 반증 됩니다. 즉, 이번 명제에서 저는 관계 형성에 작용하는 힘을 결속과 구속이라는 점에 집중해 논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다른 예를 하나 더 들겠습니다. 우리가 타인에게 채무를 지고 있다고 칩시다. 그럼 채권자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도 그에게 잘 보이려 들거나 최소한 밉보이려고는 안 할 겁니다. 내 감정을 꺾어서라도 그와 관계 유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거죠. 이제 부정적 물리력이 왜 강한지 이해되실까요. 심지어 이런 부정적 물리력은 관계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게 될 가능성도 큽니다. 가령, 우리가 상사와 함께 일하다 아래와 같은 일이 발생했다고 가정해봅시다.


1)본인의 실수로 문제를 일으켰는데, 상사가 문책하지 않고 넘어갈 때.


리더의 역할 중 가장 중요한 건 책임지고 수습하는 겁니다. 만약 우리가 손실을 일으켰는데 상사나 책임자가 심하게 혼내지 않고 함께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면 어떨까요. 아마 이전까지는 상사를 싫어했더라도 고마워하고 리더로서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인정할 겁니다. 이때 우리는 상사에게 심리적인 빚을 진 셈이고 상사는 내게 부정적 물리력을 활용하지 않음으로써 은혜를 베푼 게 됩니다. 실제로는 어떤 재화나 긍정적인 말도 오가지 않았는데, 어떻게 심리적 채권과 채무가 발생했을까요. 그건 문책에서 피하고 싶다는 주체의 욕망을 책임자가 부작위적으로 실현해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집단 내에서 권력을 쥔 사람은 늘 유리합니다. 부하의 잘못을 덮어주기만 해도 긍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거든요.


2)오랫동안 함께 지내며 상사의 스타일에 익숙해지거나 의외의 면을 봤을 때.


상사와 계속 일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상사의 성향에 익숙해지고 불편하던 마음도 옅어질 때가 있습니다. 여기어 더해 의외의 모습을 보면 부정적 영향력을 미치던 게 갑자기 긍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늘 실적 압박하던 영업 과장님이 어느 날 영업사원을 보며 이렇게 말합니다.


“이번에 회사 프로모션 맞춰주려고 저번 달이랑 이번 달 네 실적 반반으로 나눠 올렸다. 잘하면 둘 다 인센티브 나올 것 같으니까, 조금만 더 열심히 해봐.”


이러면 기존의 평가는 뒤집히고 그를 경원하던 심리도 옅어집니다. 사람들은 종종 백번 잘해줘도 한 번 못 해주면 관계가 틀어진다고 푸념하고는 합니다. 이건 애초부터 관계에서 잘해주거나 심리적 만족을 주는 게 힘이 약함을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물리력 앞에서 호의나 진정성 같은 건 나약합니다. 왜냐하면, 물리력은 구조에서 나오는 힘이고 심리적 만족은 개인의 감정에서 나오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인간관계의 형성, 결속, 유지에서 가장 중요한 성질은 장기적으로 관측될 수 있는가입니다. 군대 선입과 후임의 관계는 직장 내 상하 관계보다 훨씬 힘이 셉니다. 하지만 같은 동네에 사는 죽이 잘 맞는 친구는 관계에서 힘이 약합니다. 단 한 번의 오해나 다툼으로도 안 만나게 될 수 있고 같은 동네에 놀 만한 다른 친구가 있으면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게 되거든요. 아마 외부로는 이렇게 발화(發話)할 겁니다.


“걔랑은 잘 안 맞아서, 가까이 살아도 안 만나게 되네.”


하지만 내부에 도사린 속뜻은 이렇습니다.


“걔는 나한테 아무 영향도 못 미치는데, 굳이 잘 지내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잖아?”

매거진의 이전글 인간관계를 위한 빨간약(9)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