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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우 Feb 29. 2020

인간관계를 위한 빨간약(19)

[분석 3_2/4]

•자수성가한 부자가 더 주목받는 이유.


‣대한민국 사람에게 존경하는 기업인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높은 확률로 등장하는 두 분이 있습니다. 바로 고 정주영과 이병철 회장입니다. 두 사람은 현대와 삼성이라는 국내 굴지의 기업을 일궜다는 점에서 브랜드 파워가 있지만, 대중 선호도로 보면 정주영 회장이 압도적인 것 같습니다. 다수의 사람이 정주영 회장을 더 좋아하는 이유는 뭘까요. 언변이라는 점에서 이병철 회장보다 뛰어났으니까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는 그보다는 정주영 회장이 무(無)에서 시작한 사람이어서 더 존경받는다고 믿습니다.


언젠가 고 이병철 회장의 생가에 들른 일이 있습니다. 한눈에 봐도 지방 유지임을 알 수 있을 만큼 좋은 고택이었습니다. 반면 정주영 회장은 탈북 후, 소를 판 돈으로 남한 생활을 했으니 진정한 의미에서 무일푼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지금으로 치면 원룸 보증금 500만 원으로 시작한 셈이니까요. 첫 사업을 시작할 때 이병철 회장이 아버지로부터 받은 종잣돈이 300석 추수의 토지 분재라고 합니다. 이 정도는 금수저까지는 아니어도 은수저 이상의 인프라는 지녔다고 봐야겠죠.


사실 오늘날 삼성이 이룩한 성공이 현대의 성공보다 덜 위대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정주영 회장을 사람들이 더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꿈꾸게 하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인 사람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읽었을 때, 좀 더 동일화하기 쉬운 대상은 정주영 회장입니다. 우리가 마윈, 스티브 잡스, 손정의 회장의 이야기에 더 끌리는 건 나도 저렇게 될 가능성이 있음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나아가서 샐러리맨을 가장 설레게 하는 건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성공 신화였을 겁니다. 그의 말로가 너무 나빴기에 이런 제 주장은 힘을 잃겠지만, 한때 그의 인기는 신드롬에 준했으니까요. 만약 그가 끝까지 경영을 잘해나갔다면, 정주영 회장만큼 인기 있는 기업인이 됐을 겁니다.


다시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가 봅시다. 우리는 자수성가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고 그들의 강연을 돈 내고 듣습니다. 그들이 성공하기까지 실패가 많을수록 우리는 더욱 매력을 느낍니다. 그건 일반적인 사람의 일생이 실패로 점철돼 있어서입니다. 거의 대다수의 사람은 성공하기까지 아주 많은 실패를 거듭해야만 합니다. 뛰어난 사람은 일의 추이를 조금만 보고도 구조와 패턴을 도출하고 곧 성공합니다. 심지어 타인의 피드백을 잘 수용해 큰 위기도 비켜나가죠. 하지만 보통 사람은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겪은 후에야 성공이라는 결실을 맛볼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자수성가한 사람의 실패한 스토리에 더욱 끌립니다. 그들의 숱한 잘못과 방황과 시행착오가 오늘의 결과를 만드는 데 밑거름이 됐다고 믿고 싶은 거죠. 이를 분절화해서 표현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1)자수성가한 이의 성공 도식.

보잘것없는 배경 ➡ 방황했던 젊은 시절 ➡ 여러 번의 시도 ➡ 반복된 사업 실패와 시행착오 ➡ 눈부신 성공


2)재벌 2세의 성공 도식.

부모와 자본이라는 인프라 ➡ 후계수업을 통한 경영 지식 함양 ➡ 계열사 경영을 맡아 여러 사업을 추진 ➡ 신규 사업에서 실패가 있었으나 자본의 힘으로 수습 ➡ 눈부신 성공


전형적인 모형을 제시했을 뿐이지, 모두가 이런 도식을 따르지는 않습니다. 다만 위의 도식을 보시면 일반적인 사람이 1)과 동일화할 영역은 꽤 보일 겁니다. 그러나 2)와 동일화할만한 영역은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이 둘 중 어느 게 더 어려울까요. 단순히 본다면 1)이 더 어려워 보이나 사실 2)도 그 못지않게 어렵습니다. 1억을 10억까지 키우려면 분명 1)의 조건이 더 힘들겠지만 10억을 1조 단위로 키우려면 1)이나 2)나 전부 어려운 일이 되니까요. 이런 의미에서 정주영 회장과 이병철 회장의 성취는 누가 더 어려웠다고 할만한 영역이 못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정주영 회장을 더 좋아하고 존경한다고 대답하고는 합니다. 거기에 우리가 꿈꾸는 바가 있거든요. 보통 사람은 지방 천석꾼의 자식으로 태어나기보다 무일푼의 청년에게 나를 발견하기가 더 쉬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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