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3_3/4]
•극락조와 바우어 새의 유혹.
‣조류에 흥미가 없는 분께는 둘 다 낯선 종이겠습니다. 극락조는 파푸아뉴기니 쪽에 서식하는 화려한 새고 바우어 새는 호주와 파푸아뉴기니 양쪽 모두에서 발견됩니다.
극락조는 종류가 많으니, 여기서는 어깨걸이 극락조를 이야기 해볼까요. 이 새는 암컷의 개체 수가 부족하다 보니 번식을 위한 경쟁이 매우 치열합니다. 구애를 위해 수컷 극락조는 푸른색 깃털을 드러내고 목 뒤에 깃을 빳빳이 세웁니다. 이윽고 발바닥에 불이라도 붙은 듯 요란한 춤을 추기 시작하죠. 이런 구애의 춤이 10~20번은 반복돼야 암컷과 짝짓기가 겨우 가능합니다. 그들의 춤을 보면 우리가 클럽에서 새벽 2시까지 췄던 건 일종의 율동에 불과했음을 깨달아 숙연해지죠.
반면 바우어 새는 극락조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의 구애를 합니다. 별칭으로 정자새라는 느름한 이름도 있는데, 흔히 우리가 아는 정자와 같은 둥지를 짓는다고 해서 이리 불립니다. 실제로 바우어새는 1m 남짓한 나무 둥지를 만들고 그 안에서 암컷을 부릅니다. 움막과도 같은 둥지의 공간 덕분에 수컷의 울음소리는 공명을 일으키고 더 먼 곳까지 전달되죠. 더욱이 바우어 새는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집 주변에 형형색색의 물건을 모아 둡니다. 일종의 인테리어라고 봐야 할 것 같은데, 색깔이나 스타일은 각 개체의 취향에 따라 달라집니다. 암컷은 수컷의 울음소리를 듣고 둥지 근처에 와 수컷이 아닌 집의 형태만 봅니다. 그러고서 마음에 들면 둥지로 들어가 교미하는데, 서로 짝짓기하는 순간까지 수컷은 얼굴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집이 곧 얼굴인 셈이죠.
인간관계를 다루는 글에서 웬 새 이야기지 싶으시겠네요. 저는 이들의 구애 방식에서 꿈꾸게 하기를 엿봅니다. 두 종은 짝짓기라는 행위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같으나 그 내용이 다릅니다. 이는 암컷이 기대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이죠. 가령 극락조는 춤을 잘 추는 게 자신의 능력을 보이는 일이지만 바우어 새는 둥지를 얼마나 잘 꾸몄는가가 곧 성적 가치로 연결됩니다. 만약 바우어 새가 극락조와 같은 춤을 추고 극락조가 바우어 새처럼 둥지를 짓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지랄도 그런 헛지랄이 없겠죠?
그럼, 우리의 연애에 이 내용을 적용해 봅시다. 제가 생각하는 가장 가벼운 연애는 클럽이나 헌팅 포차에서 만나 하룻밤을 지새우는 것입니다. 반면 가장 무거운 건 결혼을 전제로 한 교제가 있겠네요. 만약, 우리가 원나잇을 목표로 클럽에 간다면 어떤 마음가짐으로 가야 할까요. 아마 극락조와 같은 비장한 마음이어야 할 겁니다. 최대한 눈에 띄게 입고 자기의 성적 가치를 드러내려고 노력해야겠죠. 다소 경솔해 보이더라도 더 많은 사람에게 말을 걸고 기회를 탐색하는 게 올바른 전략일 겁니다.
반면 결혼을 전제로 한 연애를 위해 선을 본다면 어떨까요. 클럽에 가는 마음가짐으로 갔다가는 생각 없고 경망스러운 사람으로 보일 겁니다. 성적 가치를 드러내는 옷을 입었다가는 좋은 평가를 받기보다 외려 이성 문제로 말썽을 일으킬 거라는 부정적 느낌을 주고 말겠죠.
이처럼 같은 가치라도 상대가 기대하는 바가 무엇이고 만남의 목적에 따라 평가는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즉 우리가 특정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올바르게 활용하지 못하면 외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거죠. 극락조 암컷에게 수컷이 지은 훌륭한 둥지는 의미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바우어 새 암컷에게 극락조 수컷의 화려한 춤은 지랄발광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관계 맺기할 때는 상대가 기대하는 바를 파악하고 거기에 맞춰 나의 가치를 선별적으로 드러내야 합니다.
가령 제가 바우어 새라면 클럽에 가기보다는 결혼 정보 업체에 재산정보를 등록할 겁니다. 반대로 극락조라면 헌팅이든 소개팅이든 직접적으로 사람을 만나려 노력하겠죠. 똑같이 연애라는 목표를 두고 있어도, 내가 지닌 가치를 욕망할 사람에게 다르게 어필하는 것이죠. 이와 달리 바우어 새인 제가 클럽에 가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인조 깃털이라도 붙이고 가겠습니다. 반면 극락조인데 선을 봐야 한다면 아름다운 깃털을 숨기기 위해 단정한 양복을 입겠죠. 경망스러운 춤을 추지 않기 위해 불편한 구두도 신을 겁니다.
결론적으로 이 분석 파트에서 제가 논증하고자 했던 건, 우리가 타인의 기대를 파악하고 그를 충족했을 때 관계에서 유리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나의 잘남이 당신에게도 이익이 됨을 알려주고, 나와 동일시할 수 있는 여지도 주며, 상대의 기대에 맞춰 나의 가치를 드러내야 합니다. 즉 타인의 욕망을 바라보고 거기에 부합했을 때라야 우리는 그의 인식에서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