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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우 Mar 02. 2020

인간관계를 위한 빨간약(21)

[전략 3_1/3]

•약자를 위한 배려를 보여줄 것.


‣타인의 긍정적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한, 첫 전략으로 약자를 위한 배려를 제시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장애우나 노인을 도와주는 사람 혹은 성적이 나쁜 친구의 공부를 도와주는 학생을 보면 그의 인품이 좋다고 여깁니다. 약자를 배려하는 모습을 목격했을 때 우리 마음이 따뜻해지는 건, 그의 최저한의 선(善)을 엿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진실이 아니더라도 나 또한 저 사람에게 저 정도의 친절과 배려는 받을 수 있겠다고 예상하는 거죠. 즉 상대가 아량이 넓고 나의 실수도 이해해 줄 거라는 생각과 경계할 필요가 줄어듦에서 오는 인간적 호감이 발생합니다.


그러므로 상대적으로 약자인 사람을 배려하는 모습이 관측되면, 거의 모든 사람에게 호감을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임이나 단체 활동을 할 때, 분위기에 어울리지 못하거나 따라오지 못하는 팀원이 있으면 챙겨주는 게 좋습니다. 실제로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는 상대적 개념의 약자가 발생하기 쉽습니다. 일반적인 사람은 감정적인 이유로 이런 사람과 거리를 둡니다. 어울려도 얻을 게 없는 데다가 즐겁지도 않으면서, 나의 사회적 위계까지 떨어뜨릴 수 있거든요. 말하자면 약자와 어울렸을 때 얻을 실익도 없는 데다가 비사회적인 이미지로 인식될까 봐 두려워하는 거죠.


어! 그럼, 제가 하는 말을 뒤집는 거 아닌가요? 저 말대로라면 약자와 잘 지내서 좋을 게 없으니 그들에게 잘해주는 게 도움이 안 될 수도 있으니까요. 이런 오해가 없도록 좀 더 명확하게 말합니다. 제가 말하는 전략은 약자를 배려하라는 거지 친하게 지내라는 게 아닙니다. 친절하게 대함이 곧 그 사람과 잘 지냄은 아닙니다. 그래서 집단 내에서 약자로 분류되는 사람과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다만 그를 챙겨주는 게 가장 유리하게 관계를 이끌어 나가는 방법입니다. 일편 비인간적으로 느껴지는 조언을 하는 이유는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 우리의 판단 시스템 자체가 유형화를 즐겨 하기 때문입니다. 가령 특정 그룹 내에 걸출한 개인이 있다고 칩시다. 그렇다면 우리는 평균적인 해당 그룹의 능력과 탁월한 개인 사이에 논리적 연결고리를 찾으려고 합니다. 그 결과, 집단 전체의 평가를 다소 올리고 개인의 뛰어남을 낮추는 식으로 해서 평준화를 시키죠. 그게 아니면 탁월한 개인이 해당 집단에 계속 있을 이유가 없거든요. 이 논리적 모순을 해결하려면 세부적인 정보가 있어야 하는데 관측하는 사람이 이런 정보를 얻기는 어렵죠.


둘째, 배려의 속성 때문입니다. 배려라는 것 자체가 더 여유로운 사람이 베풀 힘입니다. 상대적으로 좀 더 가진 사람이 적게 가진 이를 도울 수 있는 거죠. 자기 공부도 못 하는 친구가 자신보다 학업 성적이 뛰어난 친구를 가르쳐 준다면 우리는 그걸 의아하게 생각할 겁니다. 어떤 사람은 이를 배려가 아니라 주제 파악을 못 한 행동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배려가 관찰되기 위해서는 동류로 인식되면 안 됩니다. 즉 다른 그룹이자, 유형, 위계로 분리된 상태에서 약자에게 가해지는 긍정적인 힘이 관찰돼야 합니다. 이럴 때라야 배려라는 게 좀 더 힘을 발휘합니다.


논의를 조금 더 확장해보겠습니다. 지금 제가 글을 쓰는 시점은 COVID-19 사태로 인해 전국이 시끄러운 상황입니다. 만약 코로나를 전파한 사람이 신천지 교도나 일반적인 시민이 아니라, 약자들이라면 어떨까요. 가령 아침 일찍 한 끼를 먹기 위해 나온 이들이 마스크를 살 돈도 부족해서 쓰지 않았고 이로 인해 무료 급식소를 중심으로 전파됐다고 가정해 봅시다. 우리가 그들의 안일함과 무식함을 비판하면 어떻게 될까요?


괜찮다고 여기는 분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거부감을 느끼는 분도 있을 겁니다. 합당한 비판이고 충분히 비난할 수 있는 상황인데도 왜 이런 감정을 느낄까요. 그건 바로 그들이 약자기에 우리의 무언가를 건드려서입니다. 약자를 비난하는 사람을 보면 우린 은연중에 그를 무자비한 사람으로 느낍니다. 그러나 이건 상대의 무자비함에 기인하는 심리가 아니라, 내가 약자가 됐을 때도 상대가 나를 심하게 비난할 수 있겠다는 공포심에 기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합당한 비판이라도 상대적으로 약자에 위치에 있는 사람을 탓하는 건 인간관계에 득이 되지 않습니다. 보통 약자는 우리에게 위협이 되지도 않는 데다가 경쟁 대상도 아니기에, 우리는 그를 비난하는 사람에게서 인간적 여유를 느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직장 내에서 일을 못 하거나, 학교나 모임에서 모두에게 무시당하는 사람이 있다면 차라리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걔도 힘들겠지. 다들 뭐라고 하는데, 나까지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이럴 때에나 타인은 우리 곁에서 좋은 꿈을 꾸게 됩니다. 나의 최저한이 어딘지 가늠하고 안심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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