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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우 Sep 10. 2020

[단편소설]그녀와 곰인형

이별이 홀로의 아픔이자 책임일 수 있을까?

그녀가 날 처음 만난 건 아홉 살 무렵이었다. 세상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 백화점에 진열된 지 만 하루가 지나기 전에 그녀는 나를 만났다. 크리스마스였다. 눈이 올 것만 같이 어둑한 하늘 아래, 그녀의 품에 안겨 집으로 왔던 기억이 난다. 끝내 눈은 내리지 않는 밤이었던 것 같다. 내 단추 눈 아래로 얕은 습기가 스며들던 성탄의 밤, 그녀는 날 스탠드 등 옆에 놓고는 말했다.


“잘 자.”


주광색 등이 꺼진 책상에서 똑같이 잘 자라고 대답했다. 그녀에게 전한 첫 번째 말이었다. 시간은 흘러갔다. 여덟 번째 라인을 타고 그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하나하나 완성돼 갔듯이 두 번째 12월이 다가왔다. 지난 일 년간 그녀는 나를 잘 보살펴줬다. 언제나 그녀의 시선이 닿는 곳에 앉아있음으로 존재는 증명되고 있었다. 또다시 크리스마스였다. 작년과는 달리 창밖으로는 하얀 눈이 내리고 있었다. 단춧구멍으로 겨울의 한기가 짙게 파고들던 그 밤, 집 안이 술렁였다. 자정이 넘어 걸려온 전화 한 통. 거실에서 그녀의 엄마가 허둥댔다. 놀라 달려간 그녀에게 엄마는 다급한 목소리로 뭐라 말했다. 그녀가 울먹거렸다. 사고, 라는 말이 들렸다. 그 순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그 자리만 지켰다. 이윽고 방으로 돌아온 그녀는 황급히 옷을 갈아입었다. 여덟 살이 된 그녀가 어쩐지 낯설게 느껴졌다. 엄마가 다시 그녀를 부르고 이윽고 문을 열고 두 사람은 눈발이 흩날리는 세상으로 멀어졌다.


‘괜찮아?’


문이 닫히고서야 겨우 그리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은 목소리가 되지 못한 채 이 심장 안에서만 머물렀다. 주광색 등이 켜진 그 책상 위에서 잘 자라는 말도 전하지 못하고 그녀를 기다렸다. 전등 아래 홀로 남겨진 채 기나긴 밤을 곱씹으며 그녀를 기다렸다. 창밖에는 눈이 오래도록 내렸다. 마치 태초부터 내린 것처럼 눈은 영원히 그치지 않을 것 같았다. 이제는 시린 전등 아래서 잠들지 못한 채 그녀를 걱정했다. 밤새 걱정이 사박사박 창가에 쌓았다. 그녀를 다시 본 건 꼬박 사흘이 지난 밤이었다.


엉망이 됐다는 걸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보다 지친 엄마가 그녀를 안고 들어왔다. 모녀는 눈이 부어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 거실에 앉아 수런거리고 지친 기색의 그녀가 눈앞에 서 있었다. 두 눈을 바라보는 데 그 안에 슬픔이 가득해, 차라리 공허해 보였다. 딸이 잠들기를 바라는 엄마는 그녀의 이마를 짚고 말했다.


“엄마, 아저씨랑 이야기 좀 하고 올 테니까. 먼저 자.”

“응…….”


여태 듣지 못한 마른 목소리가 울렸다. 여덟 살의 그녀는 삼 일 만에 부쩍 나이 든 것 같았다. 죽음. 말하지 않았으나 내 목화솜 심장으로 그녀의 아버지가 죽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에게 괜찮냐고 물어보고 싶었는데, 아니 물어봤는데 끝내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이 두 손을 들어 그녀를 안아주고 싶었는데 그럴 수가 없어 슬펐다. 컨베이어 벨트에서 아무 의지 없이 만들어졌듯이, 까만 두 눈알이 선택이 아니었듯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등 아래 오도카니 앉아 애 터지게 그녀를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사람들이 나가고 그녀가 혼자 침대에 누웠다. 숨죽여 내는 흐느낌이 솜 베개를 뚫고 전해졌다. 한참이나 방안에서 조용히 울던 그녀는 몸을 뒤척이다가 날 바라봤다. 나는 그제야 목소리를 쥐어짜 말했다. 


‘널 안아주고 싶어.’


그녀가 나를 말끄러미 봤다. 붉은 눈시울이 더 짙게 물들다 그녀는 아빠하고는 나를 잡아 올렸다. 드디어 차가운 목제 책상을 떠나 그녀의 온기로 파고들었다. 아직 자라지 못한 그녀의 작은 젖무덤에 안겼다. 따뜻하고 서글펐다. 그녀는 몇 번 더 아빠하고 부르다가 잠이 들었다. 헝겊 귀 위로 그녀가 흘린 눈물이 스며들었다. 


추억은 눈처럼 쌓여갔다. 기억의 공유가 늘고 내 몸에 손때가 점점 더 묻자 그녀는 나를 전만큼 찾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가며 그녀는 점차 소녀 티를 벗기 시작했다. 외롭지는 않았다. 여전히 그녀의 주광등 아래를 지키고 있었고 간혹 그녀가 눈물 흘릴 때는 품에 안겼으니까. 그녀가 내게 준 목화솜 심장은 아직 뛰고 있었다. 그래, 고백하자면 때론 두려웠다. 시간이 지나며 사랑이 줄 수 있는 게 기쁨만이 아니란 건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그녀의 손길이 뜸해지고 한숨이 깊어져, 더는 날 보지도 않는 밤이면 두려움에 오스스 몸을 떨었다. 오래된 관계가 맺는 필연. 언젠가는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공포. 잠 못 이루는 날이 많아졌다. 어느새 오른쪽 단추 눈알은 떨어질 듯 헐거워졌다. 엄마가 달아줬던 그 눈알이 이제 8년이라는 세월과 함께 떨어지려 했다. 이제 한쪽 귀는 사라져 그 사이로 흉물스러운 솜들이 터져 올랐다. 그녀가 소녀에서 처녀로 자라는 동안 곰 인형이라는 본질은 조금씩 사라져갔다.


또다시 밤이 찾아왔다. 어떤 밤인지도 모를 숱한 밤 중의 하나였다. 그녀가 나를 안지 않은 지 한참이 된 밤, 전등 아래를 지키며 얼마 남잖은 미래를 미루어 보았다. 그녀가 돌아온 건 새벽이었다. 사위는 고요하고 적막했다. 평소라면 불을 켰을 텐데, 그녀는 어둔 방으로 곧장 들어와 이불을 끌어안았다. 어째서 그러는지도 몰라도 그녀가 소리 없이 운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기쁨에 심장이 뛰었다. 이기적이게도 가끔 그녀의 절망을 바라고는 했다. 오늘처럼 힘든 날이 오면 그녀가 나를 찾을 테니까. 기대를 숨긴 채 오도카니 그 자리에서 그녀의 손길을 기다렸다. 이윽고 숨 참는 소리와 끅끅一거리는 심해어와 같은 울음이 들려왔다. 그 눈물의 결말을 짐작했다. 두 손을 들어, 두 발을 곧추세우며 서둘러 위로할 준비를 끝냈다.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그 소리만큼 심장이 함께 뛰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그녀는 밤새 이불만을 끌어안은 채 울기만 했다.


서러운 울음 끝, 돌아온 건 저린 두 팔과 피로한 다리였다. 그녀가 잠든 후, 솜이 터져 올라 흉물스러운 얼굴로, 떨어져 가는 오른쪽 눈을 실로 부여잡은 채 반전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녀는 깨지도 않고 깊이, 아주 깊이 유년기가 아닌 어느 시기의 추억을 곱씹으며 꿈을 거닐고 있었다. 아픈데도 안아주지 않는다는 것은 더는 위로가 필요 없다는 뜻이었다. 우울한 목소리가 공허히 울렸다.


‘이젠 아프지 않은 거지?’


그러나 아무 말도 돌아오지 않았다. 밤새 그 어두운 방 안에서 그녀의 규칙적인 숨소리만이 질식할 듯 들려왔다. 태어나 처음으로 그녀가 내게 준 심장을 원망했다. 차라리 주지 않았다면 이토록 아프게 뛰지 않아도 됐을 텐데. 지난 시간 쌓인 추억이 야속했다. 눈처럼 쌓인 오랜 기억들이 이젠 눈사태를 일으키며 와르르 무너지는 밤 서러워 울고 싶었다. 이제 그녀에게는 정물과도 같아진 이 처지를 받아들이기 힘겨웠다. 사랑한다는 것이 때론 더 아프게 할 수 있음을, 서로의 체온을 나눈 만큼 더 덜덜 떨어야 함을 그제야 알았다. 아침이 다가왔다. 그날을 기점으로 그녀는 나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았다. 몸을 움직여 다가가고 싶었지만 이미 그녀에게 잊혀진 뒤였다. 더는 아빠가 필요하지 않은 그녀는 아버지가 사준 곰 인형에도 의미를 두지 않았다.


슬픔보다 큰 것은 공허다.


그녀가 그리워질 때마다 오래전의 추억을 곱씹었다. 그녀와 함께한 추억을 떠올리다 보면, 달콤한 유년기를 노니는 꿈을 꿨다. 숱한 아침과 셀 수 없는 밤이 지나갔다. 그녀는 더 어른의 태를 갖춰갔다. 어떤 날은 책상 위에 있는 나를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지워져 갔다. 그저 오래전부터 허락된 이 작은 영토만을 차지한 채 나를 잊은 그녀를 기억했다. 함께한 시간이 있으므로, 손때 묻힌 날들이 아직 이 안에 있으므로. 그 추억이 언젠가 네가 힘들어하는 날 나를 찾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믿으며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마치 바다에 가라앉는 조개껍데기처럼, 지난여름 잠시 볕을 보았다가 파도에 휩쓸려 다시 바다에 가라앉는 그 살아있는 유물처럼 살기 위해 숨죽여 기다렸다. 어느 순간 이 한쪽 눈알이 완전히 떨어지려고 할 때도 기다렸다. 시간이 흘러가는 게 두려웠다. 계속되는 이 방치의 밤이 결국 어떤 결말을 맞을지 다 알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지난 시간이 다 신화처럼 느껴졌다. 그저 그런 양산품인 곰인형이 그녀에게 심장을 받아 이토록 그리워한다는 게 말이 되지 않았다. 8년이 넘는 세월, 누군가에게 유의미한 무엇이 되었다는 것도 다 착각일지도 몰랐다. 그녀가 사랑했던 아빠가 준 크리스마스 선물이 아니었다면, 그녀의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진작 쓰레기통에 버려졌을지도 모를 운명이었다.


그걸 기뻐해야 할까. 이토록 서글픈 마음이 들게 한 이 모든 시간과 기억을 감사해야 할지 미워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루는 더 길어졌다. 이제 나를 보지 않는 그녀를 보는 게 편안해지고, 차라리 등을 돌려줬으면 하고 나직이 기도하는 밤이 잦아지고 있었다. 그러나 헛된 기대였다. 만약 그리 해버린다면 마지막 남은 이 부정의 희망마저도 잃을 것을 알았기에 그 기도는 늘 이뤄지지 않기를 바라는 주문이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을 선택할 수 있다면, 이 시비도 방향도 없는 감정이라는 걸 길들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 일방의 좁고 불편한 도로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결국, 오른쪽 눈알이 떨어진 어느 날이었다. 그녀는 아침부터 이사 준비로 분주했다. 방 안에 몇 개의 종이박스가 쌓여있었다. 이 집에서의 기억이 갈무리 되고 몇 개의 상자에 정리된 그 날, 아침 그녀는 나를 상자에 넣지 않았다. 당연히 따라갈 거라고 믿었던 믿음은 종량제 봉투에 넣어지며 가벼이 구겨졌다. 심장이 아프지도 그렇다고 아프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단지 궁금했다. 그녀를 바라보느라 떨어진 이 단추가 그녀에게는 쓸모없어 버려야 할 단초로 보였다는 것이. 그토록 오랜 시간 함께 했는데 그 기억들이 이토록 쉽게 폐기될 수 있는 것인지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틈도 없이 그녀는 나를 종량제 봉투에 넣었고 이 얄팍한 봉지에서 하는 말이 들릴 리 없었다. 그래, 버려졌다. 봉지에 담겨 집 밖으로 나가는데 그녀의 손끝에 매달려 흔들리는 데 어쩐지 슬프지 않았다.


애초부터 운명이라는 건, 만남의 끝은 이런 식의 일방적 이별인지도 몰랐다. 또각또각 지난 시간을 정리하는 그녀의 구두 굽소리가 울렸다. 어느새 당신은 이토록 자라 이제는 구두가 어울리는 여자가 돼 있었다. 아련한 감정들이 아직 갈무리 되지 못해 작별인사를 건네지 못하던 때, 그녀가 나를 전봇대 앞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한 번도 나를 돌아보지 않은 채 그녀는 멀어졌다. 그때 이 마른 심장을 움켜쥐고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실수인 거지? 깜빡 잊은 거지?’


그녀는 아무런 후회도 미련도 없다는 듯이 그렇게 멀어졌다. 어느새 모퉁이를 돌아 사라진 그녀를 보며 아침 공기에 떠다니는 그녀의 잔향을 맡으려 했다.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이라는 걸 믿을 수 없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네가 나를 버렸다는 걸 알아. 이게 우리의 마지막일 거라는 것도 알아. 단지 그걸 인정하기가 힘들 뿐이야. 그녀가 나를 버리고 간 그날은 초저녁부터 비가 내렸다. 어디서 몰려온 건지 모를 먹구름과 바람이 별을 흩뜨렸다. 떨어져 나간 오른쪽 단춧구멍으로 물기가 들어차기 시작했다. 비가 억수처럼 퍼부어 어느새 봉지 안까지 축축해졌다. 빗물이 스며들어 태어나 처음으로 눈물을 흘릴 수 있었다. 지금이라도 네가 돌아와 깜빡 잊어서 미안하다고 해줄 것 같은데, 아무래도 억수같이 쏟아지는 이 비 때문에 너는 오지 못하는 것만 같았다. 밤새 떨었다. 외로움에 떨었던 건지 아니면 추위로 떨었던 건지 모르겠다. 그러나 꼭 말해야 한다면 그 밤사이 잘 자지 못했던 건 절망감보다는 의문이었다. 이유의 부재. 왜 그녀에게 버려야 할 존재가 되었는지 납득되지 않았다. 그 매워지지 않는 이유가 필요해 더 살고 싶었다. 그것만 안다면 버려짐을 인정하고 기다림을 멈출 텐데…….


왜 너는 떠났을까.

무슨 잘못을 해서 이렇게 됐을까.

만약 잘못하지 않았다면 다른 결말을 맞았을까.


봉지에서 나온 건 일주일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종량제 봉투에서 끄집어 내져 다시 컨베이어 벨트로 실려 갔다. 수없이 많은 쓰레기가 있는 풍경 속, 언젠가 나를 조립하던 벨트 위에서 다가올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인부들은 나를 잡아채고는 타는 쓰레기로 분류해 던져넣었다. 곧 소각될 심장이 차가웠다. 이렇게 사라진다. 죽음을 앞에 두고도 이상하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유를 알 수 있다면, 무엇이 나를 여기에 오게 했는지, 왜 네가 나를 버린 건지 그걸 알 수만 있다면 이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 텐데. 그러나 이제 이유를 말해줄 너는 어디에도 없다. 그저 쓰레기통에 처박혀 악취와 오물 사이에서 수습되지 않는 감정이 널브러져 있을 뿐. 그녀와 함께한 지난 시간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8년이었지. 아직도 이걸 세고 있는 게 우스웠다. 그녀와의 열 번째 크리스마스를 맞지 못하고 이제 매립지에서 죽음을 예정한 채로 지난 세월을 세고 있다.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왜 나를 버렸는지 말해줄 수는 없을까. 내가 뭔가 잘못한 게 있다면, 그 잘못이 무엇인지 가르쳐 줄 수는 없을까. 만약, 아무런 이유도 없다면 그 이유가 없음이라도 알려 줄 수는 없을까. 


해묵은 감정들이 갈무리 되지 못한 채 쓰레기 더미를 떠돌았다. 이 가슴에 사랑만큼 무거운 의문과 추억만큼 뼈저린 욕망이 구더기처럼 득실거렸다. 그러나 결국 포기했다. 이제 곧 어떤 마대 자루에 담기면 모두 사라질 것이므로, 남을 것은 하찮은 의문뿐이므로. 해결될 길 없는 헛된 의문들만이 재가 되어 흩어지겠지. 다시 추억의 그 날로 그녀가 나를 품었던 눈 내리던 크리스마스로 기억을 거슬러 올라갔다. 살기 위해서는, 가쁜 죽음을 기쁘게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추억을 불러와야 했다. 지금의 이 상황을 이 오물 덩어리와 뒤범벅되는 현실을 인정하기에는 너무 나약했기에, 그것들을 다 태워버리기 위해 추억을 곱씹었다. 모두 태워버리려면 마지막 하나까지 잊지 않고 기억해야 했으니까. 그렇게 죽음을 기다렸다. 생에 대한 모든 의지를 버리고 대문에 꽃등을 걸 때쯤, 매립지의 박스 안에서 무언가가 불쑥 튀어나와 말을 걸었다.


“말하는 곰 인형?”


고양이였다. 온몸에 털이 엉킨 고양이가 휑뎅그렁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방금까지 달콤한 상상에 있다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상관하지 말라고 차갑게 말하자 고양이는 딱하다는 듯 혀로 자신의 발을 핥았다.


“너 같은 녀석들은 정말 지긋지긋해.”


눈을 흘기자 고양이는 나를 가만히 보더니, 한심하다는 듯이 웃었다. 대답 않고 있자 가르릉一한가한 울음소리를 내고는 그 자리에 앉았다.


“버려진 이유를 알고 싶다고?”


의중을 들켰지만 말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내 고뇌와 의문, 그리고 이 사무치는 감정을 타자가 이해할 리 없었으니까. 고양이는 쓰레기를 헤집다가 내 목덜미를 물었다. 아프다고 비명을 질러댔지만 고양이는 말 없이 폴짝폴짝 몇 개의 가림막을 뛰어넘어 밖으로 빠져 나왔다.


“왜 꺼낸 거야?”


퉁명스레 물어봤지만, 고양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무심히 저 먼 곳을 보고만 있을 뿐. 같은 질문을 다시하자 고양이는 귀찮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여기 있으면 시끄러워 죽겠어. 너 같은 녀석들 때문에…….”


우린 멍하니 하늘을 바라봤다. 눈이 올 것 같았다. 고양이의 온몸에는 오물이 덕지덕지 엉겨 붙어있었다. 뭇 버려진 것들이 지닌 더러움과 초췌함이 낙인처럼 털 여기저기에 찍혀 있었다. 고양이는 나를 물어뜯을 것만 같은 눈빛으로 한참이나 쏘아보다가 다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희망이 없는 메마른 목소리였다.


“저기 있는 저 고물 텔레비전이랑 다 부서진 화분에 있는 꽃 보여? 쟤들도 너처럼 생각하지. 요 앞 모퉁이를 돌면 너보다 조금 더 큰 강아지 인형도 있는 데 그 녀석도 너랑 똑같은 말을 해. 보통 너 같은 곰 인형은 오래 가지고 안 놀아서 말을 못 하던데 이건 좀 의외네.”


삭아버린 이빨 사이로 이야기는 계속됐다.


“난 살아있는 채로 버려졌어. 통 안에 구멍을 뚫고 나를 버렸지. 친절하다고 해야 할까? 숨구멍은 열어 줬으니까 죽지는 말라는 배려였는지도 모르지. 몸이 좀 안 좋았어. 자기네들 집에서 죽으면 머리 아파지니까 버린 걸 거야. 인간이라는 거 참 우습지……나도 몇 해는 너랑 똑같았어. 여기서 다시 생명을 얻고 이 매립지가 익숙해질 때까지 나도 너 같은 생각을 했지. 왜? 그 집 꼬맹이가 나를 버리라고 한 걸까? 아님, 그저 질렸던 걸까? 상태가 나빴으니까 어쩔 수 없었겠지만 죽을 정도는 아니었거든. 그런데도 나를 버렸어. 숱한 고민을 해봤지. 참, 이상해. 처음에는 미워서 복수라도 하고 싶었는데 정작 드는 생각은 지나간 일의 좋고 나쁨이 아니야. 상처가 아니라 의문만이 남았어. 해결될 길 없는 욕망만이 여기 있었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여기에 와서 살다 보니까, 나 같은 생각을 하는 것들 투성이였어. 조금이라도 생각할 줄 아는 녀셕들은 죄다 그 모양이었지. 왜 내가 버려진 걸까? 대체 왜 내가 여기로 와야만 했을까? 짜증 날만큼 다들 거기에만 집착했지. 솔직히 말하면 난 여기가 싫어. 우유도 없고 매번 상한 생선 통조림이나 핥는 이 삶에 무슨 즐거움이 있겠어? 하지만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없어. 오랫동안 그 녀석들과 똑같은 고민을 했지 왜 여기에 왔을까, 뭐가 잘못된 걸까, 내가 잘못하지 않았다면 조금은 달라졌을까…….”


마음이 아파 눈을 감았다. 사라진 오른쪽 눈에 한때 행복했을 고양이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그러다 이 모든 의문에 대한 답을 찾았지. 그건 내가 버려졌다고 생각해서였어. 이유를 알고 싶다면 왜 네가 그걸 너 자신에게 묻는지를 깨달아야 해.”


고양이가 가르릉一울음 소리를 내고 다시 말했다.


“눈이 내릴 것 같군. 이렇게 더러운 곳이라도 눈이 한 꺼풀만 덮으면 아름답지.”


떠나려는 고양을 붙잡았다. 너는 이유를 아느냐고 묻자 고양이는 나를 비웃었다. 꼬리를 살랑이며 그 한가로운 짐승은 발을 쭈우욱 폈다가 무심히 말했다.


“이미 알고 있을걸?”


고양이가 떠난 후, 마치 그게 무슨 신호라는 되는 양 매립지 위로 눈이 내렸다. 사박사박, 언젠가 그녀의 품에 안겼던 날처럼 눈이 쌓여갔다. 이내 세상은 희게 물들었고 눈이 쓰레기를 뒤덮은 풍경은 별천지였다. 모든 것을 다 잊게 하는 이 풍경을 보며 생각했다.


“왜 이유를 물어보는 걸까?”


일주일 후 고양이는 다시 날 찾아왔다. 먹다 만 꽁치 통조림을 들고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고양이는 말했다.


“무슨 이야기라도 좋으니까 해봐. 심심해서 죽을 것 같거든.”


다른 할 이야기가 없어 그녀에 대해 이야기했다. 기억하고 있는 것이 그뿐이었다. 고양이는 졸린 듯 내 이야기를 들으며 꾸벅꾸벅 고갯짓했다. 움직이지 않은 내 팔과 다리가 야속하다고, 그녀를 안아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슬펐다고 말하자.


“한 번이라도 움직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있고?”


그렇다고 답하자, 고양이는 고개를 저으며 다시 물었다.


“네가 말하는 그 여자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 움직이고 싶었던 적은 있냐고 묻는 거잖아.”


말을 멈췄다. 생각을 거듭해봤지만 그런 적이 없었다. 이 심장은 그녀에게 받은 것이므로 그럴 이유가 없었다. 이 두 다리와 팔은 그녀를 안아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었기에 그런 걸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고개를 떨어뜨리고 침묵하자, 고양이는 이제 비어버린 꽁치 통조림을 핥으며 그 안에 대고 말했다.


“그러니까, 이유를 모르지.”


고양이가 한 말이 통조림 안에 메아리 되어 울렸다. 그리고 내 가슴에도 그 말들이 아프게 와 닿았다. 한 번도 나를 위해 두 손을 쓰려 한 적이 없음이 부끄러웠다. 고양이는 꺼질 듯이 약한 숨을 토해내고는 물었다.


“넌 대체 왜 네가 버려졌다고만 생각하는 건데?”

“그녀가 날 버렸으니까, 그러니까 이런 쓰레기장으로 온 거잖아.”

“그래, 널 버린 게 그녀인 건 이제 알겠어. 그런데…….”


그 찰나, 영원과도 같은 침묵이 우리 사이로 내려앉았다.


“대체 널 가진 건 누군데?”


그녀라고 대답하자 고양이는 멍청하다는 듯이 날 보다가, 내 머리통에 있는 솜을 뭉텅이째 뜯고는 사라졌다. 그날 밤 고양이가 한 말을 계속 생각해봤다. 깊이 더 깊이 고민하고 답을 찾아봤다. 그 후, 며칠이 지났음에도 고양이는 오지 않았다. 그저 내 안의 고민만 웅숭깊게 자리 잡을 뿐이었다. 역한 쓰레기 냄새가 나는 언덕에서 나는 물었다.


“도대체 나를 가졌던 누구지?”


왜 나는 나 자신의 주인이 아니었던가. 왜 내 심장이 그녀를 위해 뛴다고만 믿었을까. 의문과 고심의 밤이 지나자, 애초부터 나는 버려지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그래, 나를 가지는 것을 결국 나였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고양이는 다시 내 앞에 나타났다. 마치 그때 와야 할 이유라도 있는 것처럼. 나는 고양이에게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말했다. 그리고 이 모든 생각이 답이 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고양이는 자신이 물고 온 참치 통조림을 핥다가 산뜻한 표정으로 말했다.


“감정이라는 건…….”


나는 숨을 참으며 그의 말을 기다렸다. 다시 참지 통조림에 머리를 들이밀며 고양이가 말했다.


“누가 가질 수도 버릴 수도 없는 거야. 이유를 찾는 것 자체가 바보 같은 짓이야.”


통조림 내벽을 타고 흘러나오는 그 메아리가 내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다. 고양이는 게으르게 기지개를 켜더니 날 보고 미소 지었다. 이윽고 다시는 나를 보지 않을 것처럼 조용히 저 먼 곳을 향해 나긋이 사뿐사뿐 걸어갔다.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었던 이유처럼 조용하고 깨끗한 이별이었다.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내게 말했다.


“다리가 있었으면 좋겠어, 내가 이곳을 나갈 수 있게. 팔이 있었으면 좋겠어. 이 세상을 내 마음대로 만져볼 수 있게. 심장이 있었으면 좋겠어.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이 살아갈 수 있도록.”


주문처럼 나는 그 말을 되풀이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내 두 발로 그 쓰레기 언덕을 넘어 이유를 찾아 헤맸던 숱한 감정 소모의 나날들을 벗어 나왔다. 밤이었다. 하나밖에 없는 눈으로 하늘을 보자 별 무리가 반짝반짝 빛났다. 내가 그녀를 만났던 밤처럼 깨끗하고 고요하고 눈이 내리지 않는 밤이었다. 그러나 어디선가 내 심장이 두근두근一나를 위해 뛰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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