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는 어디로 갔을까?
비는 새벽부터 내렸다. 부슬부슬, 해가 떴음에도 하늘이 흐리다. 나는 프렌치 프레스로 추출한 커피를 들고 2층 테라스로 나왔다. 시계를 보자 아홉시가 조금 안 됐다. 포치 아래서 지상을 내려다보자 전봇대 아래 강아지 한 마리가 떨고 있다. 하바네즈 비숑? 아마, 아닐 것이다. 애견 수집가들 사이에서도 희귀한 견종이다. 어쩌면 그걸 닮은 잡종이겠지. 색은 흰색 바탕에 얼굴에 갈색이 묻은 파티컬러다. 비를 맞아 함빡 젖은 개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골목은 비어있다. 강아지를 주시하는 사람은 테라스에 앉은 나 하나 뿐이다. 하늘이 검다. 어둑어둑한 게 휴거가 일어날만큼 불온한 날씨다.
왜 비를 맞고 있을까. 무엇을 기다리는 것일까, 어쩌면 버려진 것일까. 빗속에 방치된 것들은 왠지 모르게 사연이 있을 것만 같다. 우울한 얼굴을 한 여자처럼, 필연적인 이유가 있을 것만 같다. 이유. 오래토록 천착해왔었지. 나는 늘 세상 모든 것에 이유가 있다고 믿었다. 주일 아침 내가 저 강아지를 보는 데도 이유는 있겠지. 그리고 내 안에 굼실거리는 이 뱀같은 욕망도 분명 이유는 있을 터였다.
오래 전 일이다. 스무 살에 아버지의 친구분이 상을 당해 조문하러 갔었다. 상주를 보고 절을 하고 나오자, 하얀 국화 옆에 선 여자가 보였다. 검은 상복을 입은 여자는 처연히 울고 있었다. 누구냐고 조용히 물으니 돌아가신 친구분의 둘째 딸이었다. 검은 상복. 이상하게 나는 그런 것들에 마음이 동하고는 했다. 특별할 것 없는, 그저 나보다 네 살 많았던 그녀를 달리 본 건 상갓집을 누르는 우울한 분위기와 검은 상복이 어울리는 표정 때문이었다.
우리의 시작을 말하는 건 바보 같다. 우리의 과정을 이야기하는 것도 무의미하지. 오직 말해야할 건 우리가 어떻게 끝났느냐일 뿐일 테다. 나보다 네 살 많은 그녀는 나를 길들였다. 길들인다는 말은 야하다. 필연적으로 그 말은 기다림을, 지배를, 복종을 포함한다. 그녀는 나를 가르쳤다. 어디를 애무해야 할지 얼마나 뜸을 들여야 할지 또 언제 참아야 할지. 그녀의 말을 잠자코 들으면 침대에서 만족하고 잠들 수 있었다. 하얀 시트 위에 우리의 수액이 피처럼 뿌려지면 내 코 위로는 썩은 당밀같은 냄새가 눈앞으로는 잡힐듯한 허무가 어른거렸다. 그런 관계를 3년 넘게 지속했다. 그녀에게 길들여진 나는 어느새 그녀 없이 잠을 잘 수 없을만큼 고장 나 있었다.
폭력을 동반한 관계는 파국을 예정한다. 3년이 되기 직전부터 나는 죽겠다는 겁박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헤어짐을 암시할 때마다, 한 번 더 검은 상복을 입을 일을 만들어 주겠다고 을러댔다. 면도칼은 늘 내 주머니에 있었고, 몇 번의 혈향이 일고 나면 우리는 지쳐 잠들 수 있었다. 이제는 진짜 붉은 피가 우리의 애액과 정액과 함께 시트를 물들이기 시작했다. 얼룩진 이불만큼이나 더러워진 관계. 한 번으로 끝날 소동은 어느새 일상이 됐다. 어느 순간 그건 반드시 치러야만 하는 우리의 지난한 의식이 돼 제관인 그녀는 늘 제물이 지칠 때까지 달래야 했다. 하지만 여러번에 걸친 그 의식은 결국 우리 사이에 애정이라는 걸 완전히 지워냈다. 비가 오던 어느 날, 제관은 신전에 오지 않았고 제물은 피흘리다 일어나 집으로 절뚝이며 돌아갔다.
사랑이 없는 건 참을 수 있었다. 쾌락이 없는 건 견딜 수 없었다. 그녀가 없이 잠들 수가 없어 통사정을 하니, 검은 상복을 입고 우리 집으로 해묵은 행차를 했다. 나는 성교를 맺기도 전에 사정을 두 번이나했다. 정작 내게 극렬한 쾌락을 준 건 그녀의 기술이 아니라 욕망과 폭력으로 점철된 언어와 언제 끊어질지 모를 위태한 분위기였다. 우리는 같은 사람이었다. 데칼코마니의 양면처럼 서로 떨어져서는 성립할 수 없는 반푼이들. 연애의 끝이 다가온 그날 채찍을 들고 있던 것은 나였고 살이 붉어지는 건 그녀였다.
빗속에서 하바네즈 비숑이 두 걸음을 움직였다. 강아지는 그만큼을 움직이고는 다시 그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바들바들 떨고 있다. 어디로 갈지 모르는 듯 머리를 갸웃이다 다시 원래 있던 저리로 돌아갔다. 나는 강아지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타자를 이해할 수 없다. 그녀도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랐던 것처럼 말이다. 그날도 오늘처럼 새벽부터 비가 왔었지. 연우였다. 해무리가 진 오후의 어느 날, 공기는 찹찹했고 따스히 내리는 비는 사람을 죽여도 좋을만큼 기분 좋았다. 그녀와의 섹스로 달큰한 피로가 앉은 그 침대 위,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암중속에서 그녀는 사라진 왕조의 금문비를 읽듯 고저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헤어지자.”
평소와 다른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도 돌이킬 수 없다는 예감이 있었다. 나는 그녀의 마음을 돌리려 간곡히 부탁했지만 뜻을 꺾을 수는 없었다.
“이젠 나도 결혼해야지.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는 없어......”
스물 여섯밖에 되지 않은 그녀가 왜 결혼을 서둘렀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짐작컨대 비정상적인 인간일수록 더 안정적인 상대를 찾는 게 아닐까. 불안정한 이는 필연적으로 다른 이의 안온함을 빨아먹으며 살아가야하니까. 불면의 밤이 지나고서 방에 남은 건 오직 나 하나였다. 더러워진 채 역한 냄새를 풍기는 시트가 이 모두가 사실임을 증명했다.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반년동안 매달렸다. 그녀의 남자친구라는 녀석에게 흠씬 두들겨맞고도 계속 집을 찾아갔다. 혼자서 눈을 감으면 검은 상복을 입고 우는 그녀가 떠올랐고, 그녀가 상복 치마를 걷는 상상을 하면 내 두 다리는 어느새 그녀를 향해 뛰고 있었다.
그녀가 고파 죽을 지경이었다. 단 한번이라도 좋으니 꼭 한번만 더 하고 싶다고 간청했다. 그 더럽고 지리멸렬한 요구에 그녀가 응낙했다. 타인의 여자가 된 그녀는 약속된 장소로 왔다. 검은옷을 입고 오라는 말에 그녀는 플레어 스커트에 까만 블라우스를 입은 채로 도착했다. 초여름이었다. 에어컨을 종일 켜 놓은 그 방은 습기하나 없이 산뜻했다. 이윽고 검은 옷을 입은 그녀와 또 한 번 뒹굴었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지난 시간 상상했던 모든 행위를 시도했다. 그녀가 단언했다.
“이걸로 진짜 끝이야.”
“알아.”
다시는 이 곳에 올 일도 없으며 너를 볼 일도 없으며 마주치더라도 아는 척 하지 말자고 그녀는 다시 말했다. 더 생각할 것도 없었다. 그녀는 이제 내 것이 아니었고, 영원히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다른 방법은 없었다. 이제 문을 열고 나가는 그녀의 목덜미에 내가 자주 핥았던 까아만 점이 보였다. 나는 소리없이 독극물을 넣어둔 주사기를 들어 목을 찔렀다. 나를 돌아보기에, 괴로워하는 것 같기에 칼로 목을 찔러주었다. 단숨에 조용해졌다. 편안하고 행복해보였다. 거실에 남아 이제 숨쉬지 않는 그녀를 보며 나는 울었다. 이제 나를 길들여줄 사람이 없다는 게 슬퍼 오열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그녀의 배를 베고 잠들어 있었다. 이제 식어버린 그녀의 머리칼을 잡아 질질一끌어 욕조에 처넣었다. 따뜻한 물을 받고 깨끗이 그녀를 씻겨냈다. 파리해진 얼굴과 오물로 범벅된 그녀를 깨끗이 닦았다. 초라했다. 한때는 사랑했던 그래서 죽여서라도 갖고 싶었던 그게 겨우 이거라니.
욕조에서 그녀를 끄집어내 정성스레 옷을 입혔다. 그리고 검은 플레어 스커트를 걷어 내 머리를 집어 넣었다. 팬티를 물어 뜯고 음부를 핥은 후, 두 다리를 벌려 필사적으로 발기한 내 페니스를 밀어 넣었다. 그러나 이제 딱딱해져 아무 것도 받아들일 수 없는 몸은 내 존재를 부정하고 그녀의 퍼런 허벅지 위에 내 정액만이 흩뿌려졌다. 이제 그녀는 쓸모 없었다.
시체를 유기해야했다. 까만 소프트 캐리어에 시체를 집어 넣었다. 키가 크지 않아서인지 관절을 우그러뜨려 넣으니 딱 맞게 들어갔다. 커다란 가방을 산 게 다행이었다. 손잡이를 펴 끌자 가방 속 둔중한 느낌이 내 두발을 잡아끌었다. 잊을 수 있을까? 방 안 멀티탭 위에 물을 뿌렸다. 전기가 튀는 소리가 들리며 검은 연기가 죽음처럼 피어올랐다. 나는 방문을 열고 비밀을 속삭이듯 읊조렸다.
“하지만 사라지진 않겠지.”
깜빡 졸았나 보다. 방금까지 보이던 하바네즈 비숑이 보이지 않는다. 몸을 일으켜 비가 내리는 난간까지 걸어와 아래를 내려다 봤다. 오래토록 전봇대를 지켜보자 시야의 사각지대로 작은 발 하나가 삐져나온 게 보였다. 강아지는 전봇대 뒤에 숨어 떨고 있다. 흰 발이 꼬물거린다. 내가 잘라냈던 그녀의 손처럼 작고 귀엽다. 나는 다시 테라스에 앉았다. 빗발이 한 층 더 거세어 진다.
그 날, 적어도 다섯 번은 넘게 택시를 갈았다. 마지막 택시에서 내렸을 때는 아침이었다. 여기가 어디냐고 물으니 기사는 경남 창녕이라고 말했다. 들은 적도 없는 곳이었다. 가방 속에 그녀는 밤새 꿈도 없는 잠을 자고 있었다. 내 눈두덩이에는 아침 안개만큼이나 나른한 피로가 부一옇게 내려 앉아 있었다. 모내기가 끝났는지 논 곳곳에 버려진 모판들이 보였다. 시멘트 길을 걸었다. 야트막한 야산 쪽으로 좁다란 길이 하나 나 있었다. 비에 짓무른 흙길로 발을 디디자 두충 나무 군락이 보였다. 누군가 사유지로 쓰는 곳일까? 시계를 보니 이제 오전 7시였다. 좀 더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누군가 경작하는 밭인 듯 이름 모를 작물의 순들이 웃자라 있었다. 운동화로 자근자근 새순을 밟았다. 아무 것도 피어나지 못하게, 나의 부정을 보지 못하도록.
끼릭一끼릭- 캐리어 가방에 돌멩이가 끼었는지 제대로 따라오지 않았다. 좀 더 어두운 길을 들어가자 저 안으로 생각지도 못한 풍경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농수로를 사이에 두고 작은 저수조가 펼쳐졌다. 웅덩이라고 하기에는 크고 연못이라고 하기에는 작은 곳이었다. 농사용으로 물을 대기 위해 만든 둠벙같은 거였다. 여기라면 쉴 수 있겠지. 그녀와 나의 추억이 영원히 보존되겠지. 나는 가까운 곳에서 돌덩이 몇 개를 주워왔다. 돌산에서 떨어져 나온 이판암 계열의 돌들이었다. 돌 다섯 개를 캐리어 앞에 놓고, 두 번 절했다. 작별할 때였다. 검은 캐리어를 열자 그녀는 V자로 접혀 자신의 무릎에 가슴을 대고 있었다. 우리의 마지막이 애달팠다. 이렇게 작아져, 이제는 악취를 풍기는 그녀가 안타까워 울었다. 그토록 나를 뒤흔들었던 네가 이제는 내 성기조차 집어넣을 수 없는 이런 쓰레기가 돼 썩어가고 있다. 헤어지지 않았다면, 바보같이 결혼같은 걸 하겠다고 우기지만 않았다면 여기까지 오지 않아도 됐을 텐데. 갑작스레 그녀가 미워져 주머니에 넣어뒀던 칼로 그녀의 상박을 찔러댔다. 하지만 사후경직된 시체에서는 피 한방울 베어 나오지 않아 재미도 보람도 없었다.
이렇게 이별이군.
담배 한 개비를 꺼내어 폈다. 담배가 다 타자, 생전 내가 자주 핥았던 그녀의 귓구멍에 담배를 비벼끄고 그대로 쑤셔 넣었다. 캐리어 가방을 닫았다. 돌덩이를 들고 둠벙의 외측 절벽으로 올라갔다. 로프로 돌을 묶고 캐리어와 연결했다. 이윽고 저수조 가까이로 그녀를 데리고 갈수록 가방이 끼릭끼릭 시끄럽게 울어댔다. 완전히 절벽의 끝에 다다랐을 때 나는 주저했다. 네가 더 이상 없다는 게 정말 이대로 떠나 보내야 한다는 게......슬프다기 보다는 공허했다. 누가 죽였는가는 이제 중요하지 않다. 네가 더는 이 세상에 없다는 게 오직 유의미한 진실이었다. 가슴에 오한이 들어찼다. 너는 알까? 사실은 너를 누구에게도 빼앗기고 싶지 않아서 죽이고 해체했다는 걸, 그런 내 마음을 너는 알까.
며칠 후 집으로 돌아오니 난리가 나 있었다. 경찰에 연행된 건 당연한 수순처럼 느껴졌다. 심문과 불면의 밤. 경잘들은 내게 집요히 물어댔다. 내가 마지막으로 그녀와 연락한 사람인데 그동안 어디에 있다 지금 나타난 거냐고. 나는 그녀를 본 건 맞지만, 나를 만난 후 다른 남자를 만나러 간다고 말했다며 둘러댔다. 경찰은 그녀를 찾지 못했다. 수사가 계속 진행됐고 정황상 내가 범인이라고 그들은 확인한 듯 했다. 그러나 증거가 없었다. 그녀는 실종 되었고 나는 살인 사건의 용의자가 아닌 실종 사건의 용의자로서 불려갔을 뿐이었다. 경찰의 집요한 수사에도 불구하고 끝내 우리의 숨바꼭질에서 웃은 건 나였다. 시체가 없으니 재판에 회부될 일도 없었다. 유야무야 시간이 지나가다가 수사는 조용히 막을 내렸다. 그러나 사건을 담당한 경찰관은 나를 마지막으로 심문하며 말했다.
“네가 죽인 거 알아. 시체만 찾으면 그때는 죗값을 치러야 할 거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찾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지금도 당신 바로 앞에 그녀가 있는데 찾지 못하고 있지 않는가.
“죽지도 않은 사람을 왜 자꾸 죽었다고 하십니까?”
커피 한잔을 더 마셔야겠다. 강아지는 아직 그 자리에 있었다. 어디로도 도망갈 것 같지 않았다. 주방에 들어가 포트에 물을 올렸다. 이제 10시가 좀 넘어가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머그잔에 인스턴트 커피 가루를 넣고 물을 따랐다. 설탕은 넣지 않는다. 언젠가부터 든 습관이다. 그러니까.....서른 살 때부터 블랙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그 무렵 나를 길들인 여자 때문이었다. 길들인? 아니, 길들였다가 맞겠다. 그녀는 불안정한 성격이었다. 스물 넷. 나는 서른. 우리가 연애를 시작한 나이다. 첫인상은 조숙하고 조용했지만 내면에는 무서운 불길이 타올랐다. 그런 걸 놓칠 리 없는 나였다.
한때 내가 미치도록 갈구했던 모습이 그녀에게서 겹쳐 보였다. 1년이 넘는 구애 끝에 겨우 두 번째 희생양을 잡을 수 있었다. 처음에만 해도 저항하고 그런 식의 성관계는 맺을 수 없다는 그녀는 점차 내게 물들어 갔다. 쾌락의 밤이 거듭됐다. 채찍과 촛농. 담뱃물과 바늘. 우리의 가학적인 섹스에는 늘 그런 도구들이 있어야만 했다. 즐거웠다. 실로 즐거웠던 세월이다. 2년 정도를 그렇게 보냈다. 서른 세 살이 됐을 때 그녀가 결혼이라는 이야기를 꺼냈다. 지긋지긋하고 구질구질한 이야기였다. 우리 같은 이들이 무슨 결혼을, 아니 나같은 놈이 누구를 책임지고 산단 말인가. 심드렁히 싫다고 일축했더니 그녀는 보통 여자처럼 질질 짤기 시작했다. 짜증스러웠다. 내가 바라는 건 그녀와의 밤이었지 평온한 낮이 아니었다.
몇 번이나 싸우꼬 헤어지기를 반복했지만 우리의 밤 만큼은 서로의 쾌락에 충실했다. 어느 날은 돼지가 또 어느 날은 개가 돼 서로를 물어 뜯었다. 그러나 결국 위태하게 이어져오던 관계도 종언을 고하고 말았다. 임신이었다. 중절 수술을 하라고 권했더니 그건 싫다며 난리였다.
“그럼, 어쩌자고?”
결혼하자며 울먹거리는 그녀가 귀찮고 지겨워 따귀를 올려줬다. 저주와도 같은 말을 퍼붓고 그녀는 차문을 열고 나갔다. 나를 떠나겠다며 악다구니를 써대는 그녀의 말이 내 가슴에 불길을 지폈다. 오래전 상복을 입었던 그녀가 생각이 나, 나는 문을 열고 쫓아가 말했다.
“누구 마음대로 나를 떠나?”
“책임질 생각 없으면 꺼져버려, 이 변태 새끼야!”
돌아올 줄 알았다. 늘 그렇듯, 내가 그랬듯 모든 게 재자리로 돌려질 줄 알았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도 그녀에게서 연락이 오지 않았다. 초조해진 건 나였다. 다른 남자가 그녀를 가지고 놀게 되면 어떡하지? 겨우 길들인 내 장난감이 누군가에 손에 쥐여진다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결국 먼저 연락했다. 다 책임지겠다고하자 그녀에게서 답장이 왔다. 이틀 후에 보자는 거였다. 나는 시간과 날짜를 정했다. 이튿날엔 철물점에 들렀다. 다음날 예정됐던 시간 보다 10분 정도 일찍 그녀가 도착했다. 묘한 설렘으로 침실로 들어갔다. 오랜 침묵 끝에 그녀가 더듬더듬 말했다.
“문자 받고 울었어.”
그리고 사랑한다고, 내가 없으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다며 눈물을 찍어냈다. 나는 처연한 그녀의 모습이 사랑스러우면서도 죽여버리고 싶어 옷을 벗기고 섹스를 시작했다. 격렬하게 한바탕 놀고 난 후 그녀가 오르가즘을 느낄 때, 매트릭스 사이에 끼워둔 로프를 꺼냈다. 목을 조르는 건 힘들지 않았다. 그녀가 버둥거리다가 내 팔을 잡았다. 팔뚝 사이로 삶을 그러쥔 손톱이 아른하게 파고들었다. 손톱에 상처난 내 팔뚝에 기분이 좋을 만큼 피가 흘러내렸다. 그녀는 마치 곧 죽을 활어처럼 팔딱거리다가 결국은 비 맞은 연체동물처럼 추욱一늘어졌다. 두 번의 살인. 이번만큼은 실수할 수 없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아 나는 곧 비닐을 깔고 그녀를 잘게 잘랐다. 사지와 몸통 머리를 따로 담아 각각 소형 트렁크에 나눠 담았다. 차를 몰아 먼 곳까지 갔다. 언젠가 구매해 두었던 냉동 컨테이너였다. 그곳에 트렁크를 넣고 문을 닫았다. 언제까지 보관할 거냐는 말에 나는 산뜻하게 대답했다.
“곧 찾으러 올 게요.”
그녀를 찾는 사람은 없었다. 가족이 없는 건지 아니면 연을 끊은 건지는 몰라도 일 년이 지나도 누구도 그녀를 찾지 않았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오직 나를 만나는 게 일과였던 여자였다. 하지만 대학까지 나온 그녀를 아무도 찾지 않는 건 내겐 적잖은 충격이었다. 어떤 식으로 인간관계를 맺어온걸까. 나처럼 숨어서, 사람들을 조용히 관찰하며 살아왔을까? 2년을 넘게 알고 지냈지만 그녀의 가정사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몰랐다. 그저 우리는 충실히 섹스를 했었고 그녀는 죽어 저 냉동 창고에 평생 처박혀 있을 뿐이었다.
커피가 바닥을 드러냈다. 다시 빗속으로 시선을 옮기자 전봇대 앞에 낯선 남자가 서 있었다. 남루한 행색. 검은 우산은 살이 두 개나 나가있다. 전봇대 앞에 그는 쪼그려 앉아 개를 쓰다듬고 있다. 노숙자일까 파지를 줍는 사람일까. 그는 곧 강아지를 전봇대에서 끌어내 자기 품에 안는다. 이윽고 검은 우산을 쓰고 일어난 그는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탐욕스런 눈동자가 뒤룩뒤룩 굴러다닌다. 그의 한심한 작태가 우스워 나는 일어나 비가 내리는 테라스로 몸을 내비쳤다. 그가 화들짝 놀랐다. 아래에서 나를 올려다보는 시선에서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나는 입아귀를 비틀어 웃어주었다. 그건 이성을 동반하지 않은 본능적인 판단이었다. 그가 얼굴을 찌푸린다. 들키기 싫은 걸 들킨 듯, 도벽이 발각이라도 된 듯 허둥대다가 두 손으로 강아지를 꼬옥 안는다. 강아지는 자기 운명도 모른 채 그의 따뜻한 품으로 몸을 파고든다. 파닥파닥, 젖은 꼬리가 목 졸린 그녀의 두 다리처럼 흔들린다. 완벽한 무음. 빗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우두커니 쳐다봤다. 그가 눈을 내리깔고 몸을 돌렸다. 저벅저벅 골목을 빠져나가는 그 발걸음이 언젠가의 나를 닮았다.
커피가 바닥 난 머그잔을 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비는 그치지 않을 성 싶다. 어둑한 하늘은 마치 오늘 세상이 무너질 거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이제 골목에는 아무도 없다. 방금까지 한 마리의 하바네즈 비숑이 있었음을 기억하는 나만 이 테라스에 서 있을 뿐. 손목 시계를 바라보자 11시가 다 되어간다. 배가 고팠다. 나는 주방으로 걸어들어갔다. 두툼한 스테이크를 구워먹어도 좋겠지. 냉동실을 열자, 가득찬 고깃 덩어리 중 하나가 툭 떨어진다.
담뱃재가 묻은 귀였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