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나를 보는 사람들마다 얼굴이 왜 그러냐 물었다. 꼭 살아있는 시체 같다고. 정말 내가 시체고 무언가가 움직이는 거라면, 그건 뭘까? 어쩔 수 없이 움직이는 상황이 갑갑한 걸까, 감사한 걸까? 상태가 어떻든 간에 자리는 지키고 일도 처리한다. 톱니바퀴의 속이 썩는다고 문제 될 게 있을까? 날만 잘 살아있다면 상관없는 것 아닌가. 날카로울 필요도 없다. 구르면 알아서 맞아 들어갈 테니.
시체가 살아있게 보이는 데 큰 걸림돌은 뭘까? 속부터 썩는 게 아닐까? 일상이 굴러갈수록 속은 문드러지는 것 같았다. 악취가 나는 것 같아 점점 두꺼운 포장지를 둘렀다. 포장지가 조금이라도 찢어진 것 같으면 죽을 것 같은 공포가 몰려와 궁지로 몰아넣었다. 숨이 막힌다. 이건 악취 때문인가. 공포는 작은 원룸으로 부족했는지, 스멀스멀 일터까지 차지하기 시작했다.
공포가 불쑥 사무실 문을 열 때마다 나는 그를 데리고 화장실로 도망쳤다. 여기는 일터니 제발 이러지 말라고, 나중에 얘기하 자고 달래기도 하고 애원하기도 했다. 어떤 날은 기분이 좋은 지 조용히 집에 가서 기다리기도 했고, 어떤 날은 제 화에 못 이겨 한참을 괴롭히고 나서야 만족한 듯 사라지기도 했다. 시체가 생명체 흉내를 내려면 감내해야 하는 일이었다.
직장이 내게 간단한 일을 시켰다. 조금만 신경 쓰면 되는, 서너 시간만 투자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럴 터였다. 그래야 했다. 머리가 딱딱하게 굳어 움직일 생각을 안 했다. 일이 하루하루 미뤄질 때마다 손에는 작은 톱니바퀴의 이가 하나씩 쥐어졌다. 어떻게든 간에 자리는 지키고 일도 처리해야 한다. 일을 처리해야 하는데.... 공포가 또 사무실 문을 열고 깽판을 쳤다. 그를 달래느라 또 하루 반나절을 썼다.
사흘 후, 직장이 나를 불러 다그쳤다. 요즘 일처리가 왜 그 모 양이냐고. 얼굴도 허옇게 떠서는 핏기조차 없냐고. 그런 상태로 무슨 일을 하겠다고 앉아있냐고 했다. 자주 아픈 것도 문제 다. 자기 관리 하나 못해서 일을 어떻게 맡기냐고. 나는 연신 죄송하다 고개를 조아렸다. 공포가 귓가에서 키득이는 것 같았다. 시체가 사람 행세한 대가라는 듯이.
조금이라도 생기 있어 보이려고 화장을 두껍게 했다. 진한 향 수도 이곳저곳 뿌렸다. 전신 거울 앞에 선 모습을 보니, 죽느니만 못한 것 같았다. 그래, 시체면 시체다워야지. 죽자. 날카로운 칼을 하나 사서 공포가 자리 잡은 배 깊은 곳을 쑤시려고 했다. 나를 그렇게 괴롭힌 대가를 치러보라지. 너도 고생 좀 해야 해. 알람이 울렸다. 내일은 병원 예약 날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당장 직장을 그만두길 바라셨다. 진단서가 필요하면 써줄 테니 당장 그만두라고. 선생님의 눈동자는 맑고 촉 촉했다. 저 눈에 담긴 내 모습은 꼭 살아있는 인간인 것 같았다.
"저는 살아있을 자격이 있나요?" 선생님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고 물었다. 저 눈이 흔들릴까? 거짓말을 할까?
"청아씨, 청아씨는 살아있을 자격이 있어요." 흔들림 없는 눈동자에 내가 비쳤다. 눈동자 안에 나는 필시 살아있다.
입을 열었다 닫았다. 몇 번을 뻐끔거리다 떨리는 가슴을 가다듬고 말했다.
"선생님을 한 번 믿어볼게요."
그 길로 곧장 사직서를 다운로드하여 제출했다. 직장은 놀란 듯했지만, 진단서와 함께 제출하니 별말 없이 풀어주었다. 직 장에서 해방되면 가벼워질 거라 생각했는데 발목은 여전히 무 거웠다. 공포도 내 곁에서 떠나질 않았다. 내가 살아있는 게 맞을까? 나는 이미 죽어 지옥에 온 게 아닌가? 죽었거나 말거나, 나는 살려달라 빌었다. 나를 제발 풀어달라고.
그는 놀리듯 열쇠를 꺼내 들어 흔들어 보였다. 그 모습이 꼭 관 심 받고 싶어 하는 어린아이 같기도 했다. 진짜 자유가 되려면 그에게서 열쇠를 얻어야 한다. 열쇠를 주는 대가로 무얼 원하는지 알기 위해서는,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작은 원룸은 공포가 덕지덕지 묻어 숨이 막혔다. 그가 위협할 수 없는 무대로 초 대해야 했다. 떠나자. 네게도 낯설고 내게도 낯선 곳으로.
나는 퇴사하고 이틀 후, 여권과 신용 카드만 들고 도쿄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