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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열두달 Oct 18. 2023

난 일이 있어서 안될 것 같아

나만의 굴에서 보낸 10대 이야기

"우리 떡볶이 먹으러 갈래?" 


"아.. 나 그때는 일이 있어서 아마 안될 것 같아" 


마음을 내어놓지 못하고, 교감하지 못하는 소극적인 모습은 여러 가지 부분에서 나타난다.

주위와의 인간 관계에서도,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선에서도, 무언가를 시도할지 말지에 대한 부분에서도.




학창 시절 친구들이 나에게 어떤 제안을 할 때마다 '안될 것 같다'는 말로 대답했다. 나의 이 말이 여러 번 반복될수록 나에게 어딘가 함께 가자는 제안은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수업 중간중간 쉬는 시간에도 자리에 앉아 혼자 책을 보는 시간이 늘어났다. 종종 나에게 다가오는 친구들은 있었지만, 내가 별다른 호응이 없자 그 친구들은 이내 다른 활발한 기운을 가진 친구들에게로 옮겨가 왁자지껄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어머니의 큰 병과 바쁘셨던 아버지의 상황과 생각이 많고 내성적이었던 나의 성격이 어우러져 점차 나는 학교에서의 친구 관계가 어려워도, 속 마음을 내어놓기가 어려워 어딘가에도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형편이 어려웠기에 '공부하기 위한 돈'에 대해 겨우 이야기를 꺼냈고, '함께 어울리기 위한 돈'은 이야기를 꺼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게 '안될 것 같다'는 말로 항상 둘러대며 공부에 몰입하는 학생의 모습으로 하루하루 학교를 다녔다. 


무기력한 모습으로 학교를 다니던 중, 있었던 일이다. 내 앞, 뒤, 옆에 앉은 몇몇의 친구들이 쪽지를 전달하고 주고받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내 발 밑에 쪽지를 떨어뜨렸다. 쪽지는 펼쳐져 있었고, 나는 보고 말았다. 


"쟤는 뭐가 잘났길래 말도 잘 안 한대? "


내 이야기였다. 


나를 사이에 두고 쪽지를 주고받고 있었던 것이다. 아주 가까운 관계의 친구들도 아니었지만 함께 주말에 이루어지는 특별 활동에서 같은 조로 활동해야 했던 친구들이었다. 그때 이후로 나는 더더욱 내 마음을 꺼내놓고, 말하는 방법에 대해서 잊어가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하고 싶고, 사랑과 관심을 받고 싶다는 욕구는 저만치 밀어 눌러놓은 채 관심받고 싶지만 밀어내고, 관심이 많아도 관심이 없는 척했다. 방학이 되면 가장 연락이 안 되는 친구, 방학이면 잠수를 타는 친구가 바로 나였다. '바쁘다는 핑계, 안될 것 같다는 핑계'는 나에게 가장 익숙한 도구였다. 


그런 와중 나에게 아주 큰 위로가 되었던 기억들이 있었다. 


아버지의 형제들 중 한 분은 (이하 산타 삼촌) 어린 시절 머리 부분을 다치시고 나서, 겉으로 보기엔 일상생활을 어느 정도 해내시지만 판단력이나 이해력, 사회적 맥락을 읽는 부분이 많이 어려워지시면서 약간의 장애를 갖게 되셨다. 어린 시절 산타 삼촌은 무언가 행동과 대화 방식도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의 나는 그게 어떤 이유인지 잘 몰라서 불편함을 느끼기도 했었다. 그런 산타 삼촌은 매년 성탄절이 되면 전날 밤 언니와 나의 머리맡에 정성껏 포장한 선물과 한 자 한 자 써 내려간 카드를 꼭 놓아두시곤 했다. 


"OO아, 너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반짝이는 보물과도 같단다. 우리 조카가 사랑스럽고 예쁘게 자라줘서 정말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내가 초등학생이 되고, 중학생이 되어 이젠 더 이상 산타 할아버지에 대한 환상이 남아있지 않았는데도, 산타 삼촌은 항상 '산타할아버지가'라는 문구를 남기며 성탄절 카드와 선물을 준비하였다. 그때는 어딘가 불편한 삼촌의 조금은 부족한 행동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저런 상처 속에 약해져 있던 나는 내가 받았던 편지와 카드를 찬찬히 꺼내 읽어보면서,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반짝이는 보석과도 같이 소중하게 여겨주는 마음을 느끼게 되었다. 


힘들다고 말하기보단 혼자만의 굴로 들어가기 일쑤였던 나, 도와달라고 한 적이 없었기에 어디서 어떻게 도움받는지 방법도 알 수 없어 결국 혼자 견뎌냈던 나였다. 나의 상처와 자기 연민으로 가득한 굴 속에서만 있다 보니 나의 곁에 이미 있었던 사랑과 관심, 따뜻한 마음들은 찬찬히 들여다볼 수 없었던 것이다. 


아프지만 아직 어린 우리를 위해 숱한 힘든 치료도 이겨내려던 엄마의 모습, 마음이 무너질 법한 상황에서도 늘 포기하지 않고, 놓지 않고 끝까지 한 자리를 지키며 성실히 일하러 가셨던 아버지, 두 살 밖에 차이 나지 않는데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면서도 묵묵히 나를 챙겨줬던 언니. 그리고 나를 가장 소중한 보물이라고 말해주었던 산타 삼촌. 나만의 굴 속에서 웅크리고 있을 때, 항상 나를 말없이 토닥이고 내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던 소중한 사람들이 생각이 났다. 


살면서 겪을 수밖에 없는 갈등과 크고 작은 고통, 상처들 속에서 나를 견디게 해 주고, 조금씩 다시 자신의 소중함을 회복하게 해 주었던 것은 바로 이런 나의 안전지대와도 같은 따뜻한 기억들이었다. 상처받을 때마다 나의 굴로 들어가기보다, 따뜻한 기억들, 안전지대로 돌아와 다시 나를 보듬고, 또 보듬는 시간들이 있었다. 


그렇게 나의 10대, 쓸쓸함과 따스한 햇살이 공존했던 나의 가을날은 지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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