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도 명절에 친정에 가면 곧바로 쉬고 싶어 진다. 시댁에서도 편안하게 잘 쉬었는데 시간대가 나른한 오후 시간이라 그런 건지 친정 문 앞에서 신발을 벗기가 무섭게 급 노곤해진다.
"아고고~~ 엄마! 나 좀 누워있어도 돼?"
"그럼! 그럼! 얼른 누워 쉬어라"
엄마는 언제나 오케이다.
"송편 먹어볼래?"
잠깐 잠들었다 잠시 깨어 누워 있는 내 양손에는 어느새 엄마가 건네준 송편 두 개가 들려있다.
하나는 쑥 송편, 하나는 흰 송편.
급하시기도 하셔라.
큰언니네 가족은 모두 달콤한 깨 송편을 좋아한다고 했지만, 나는 무조건 동부 콩이나 녹두를 으깬 담백한 소를 선호한다.
"무슨 깨 송편이래~ 송편은 역시 동부콩이나 녹두 소를 넣은 게 최고지! 그치 엄마?"하고 작년에 가족들 앞에서 넉살을 부렸던 기억이 난다.
엄마 송편을 먹어야 추석 같다. 엄마 송편이 나의 추석 소울 푸드다. 손안에 반죽을 여러 번 꼭꼭꼭 쥐어 야무지게 빚은 엄마표 송편은 쫀든쫀득하고 담백하다. 사 먹는 송편 하고는 비교도 안되게 향기롭고 쌉싸래한 쑥 송편은 또 어떻고!
"체할라! 일어나서 먹어~"
엄마는 비몽사몽 잠에 취해 누워있는 딸 손에 송편을 두 개나 쥐어주고는 뒤늦게 걱정을 하셨다. 그래도 나는 아랑곳 않고 누워서 송편 두 개를 냠냠 꼭꼭 씹어 먹었다. 소울 푸드도 먹었으니 팔순을 눈앞에 둔 엄마를 도우러 주방으로 나가야지.
직접 물 주어 키운 숙주, 쪄서 찹쌀가루에 묻혀 놓은 고추, 큼직하게 썰어 미리 부쳐 둔 호박을 갖은양념에 조물조물 무치는 엄마 옆에서 나는 마늘이며 고춧가루를 날라 보조를 한다.
"싱크대 밑에 조선간장 좀 줄래? 이거 간 좀 봐라~"
엄마가 찹쌀가루에 무친 고추 하나를 내민다.
"싫어~ 나 그거 안 좋아해."
"하나만 먹어봐. 맛있어."
엄마가 제일 작은 것을 골라 입에 넣어 주셨는데 입안에서 신선한 고추 맛이 화르르 밀려왔다. 그리고 곧 매운맛도 입장.
"엄마! 이거 엄청 매워!! 후아후아~"
"응? 내가 먹은 건 안 매운데? 야~뱉어라 뱉어!"
이미 늦었다.
나는 매운맛을 급히 달래려고 송편 두 개를 더 먹었다.
"엄마 나 송편 많이 먹으면 살찌는데, 매워서 두 개나 더 먹었다! 이따 언니들 와서 살쪘다고 하면 어떡하냐~"
나는 엄마를 마주 보고 옆구리 삐져나온 살을 꼬집으며 말했다.
"네 동생도 올해는 살찐다고 송편 안 먹더라~ 그래도 추석이니까 오늘까지는 먹고 내일부터 다이어트해~"
나는 웃음이 났다.
엄마는 예전에도 그랬다. 설날이면 갓 쪄낸 김치만두를 "만두는 다 야채라 많이 먹어도 살 안 쪄! "라고 하시면서 주셨다. 나는 늘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밤늦은 시간에도 만두를 안심하고 먹어 살집을 키웠다. 지금은 다이어트한다는 젊은 친구들한테 "우리 엄마가 만두는 살 안 찐댔는데~"라고 말하며 나도 웃겨서 같이 웃는다.
엄마가 같이 반찬 만드니 소꿉놀이처럼 재밌었다고 하하하 웃으셨다. 나는 아까 먹은 작은 고추 때문에 이제는 속까지 매워와서 올케가 만들어 놓은 전을 한 개 더 집어 먹으며 "그렇네~ 헤헤" 하고 함께 웃었다.
당근이며 버섯, 고기 등 잡채 재료는 이미 다 볶아 준비했지만, 삶은 당면에 버무려 양념하는 최종 고급 기술은 좀 이따 도착하는 언니한테 맡기기로 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아직도 언니들에게 기댈 수 있는 막내다.
'어서 와요~ 언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