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연한 출발] /프란츠 카프카 단편선/ 민음사/ 전영애 옮김
프란츠 카프카
내면을 들여다보는 듯한 큰 눈, 오뚝한 콧날, 연약한 듯 고집스러워 보이는 앙 다문 입술선, 얼굴 옆면에 드리운 명암은 곧 우울한 영화의 시작됨을 예고하는 듯, 그의 흑백사진은 언제나 애수를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늘 궁금했다.
[돌연한 출발] 프란츠 카프카 단편선
변신, 시골의사, 황제의 전갈, 선고, 굴 등 모든 작품이 주옥같다. 마지막으로 목차를 훑어보며 한 편 한 편 돌아보니 나의 취향에 잘 맞는다. 여기서 나의 취향이라 함은 그러니까 '불안'과 '혼돈', '초조' 되시겠다. 그래도 조금 구별을 하자면 과거의 나라면 앞서 말한 카프카의 성향에 동조하고 동경하는데 그쳤겠지만, 백수가 된 요즘의 나는 그보다는 백 년이 넘는 시간차에도 불구하고 지금을 사는 우리들이 안고 있는 고민과 문제들을 그의 작품에서 발견하고 공감할 수 있다는 것에 크게 감탄한다는 것이다.
[변신]은 읽는 동안 안타까운 마음이 커져버려 읽기 진행이 더디게 되었고, [굴]은 땅굴을 파는 다소 별난 인간의 이야기인 줄 알고 읽고 있다가 쥐보다는 조금 더 큰 육식동물이 화자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당황하다가 거기에 지독하게 반복되는 불안과 강박에 취해 더뎌졌다. 뿐만 아니라 전형적인 유럽인 카프카를 생각하며 [만리장성의 축조 때]를 읽고 있다가 갑자기 화자가 중국인 인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작품 전체의 틀이 동양으로 완전히 뒤집어지는 현타를 겪으면서 방향을 잃기도 했다. 자수성가한 상인으로서 억세고 독선적인 아버지와의 관계를 반영한 듯한 [선고]를 읽으면서는 왜 내가 카타르시스를 느끼는지... 나에게 억압된 자아라도 있었던 걸까? 당황스러웠다. 하하. [선고]의 부제는 두 번이나 파혼한 약혼녀 [펠리체 B.를 위하여]라니... [선고]를 읽고 나면 카프카에게서 나쁜남자의 면을 발견하게 된다.
더 많은 책을 빨리 읽고 싶은 내 욕심과는 다르게 요즘 나는 점점 책과 거리를 두게 된다. 책을 펼치면 머리도 눈도 금세 피곤해져서 쉬 지치고 만다. 그래서 괜히 마음만 더 조급해진다. 책을 읽을 때 가볍고 즐거운 마음이 아닌 무언가를 얻어내고 말겠다는 집착도 문제인 것 같다. 지금으로서는 뭐... 엉덩이를 붙이고 계속 앉아 있는 노력만이 답인 것 같다.
[책 중에서]
나는 우리를 깨물고 찌르는, 다만 그런 책들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 우리가 읽는 책이 머리를 주먹으로 내리쳐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 책을 읽어야 할까? 네가 편지에 쓰고 있는 것처럼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 맙소사, 만약 우리에게 책이 아예 없다 해도, 우리는 행복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우리를 행복하게 만든다는 그런 책들은, 필요하다면 우리 모두 각자 쓸 수 있을 거야. 우리에게는 마치 불행처럼 다가오는 책들이 필요해. (중략) 한 권의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해. 나는 그렇다고 생각해. (32p) 카프카가 친구 오스카 폴락에게 보낸 편지 중
그의 이름에서 유래한 ‘카프카에스크‘라는 형용사는 거처할 곳 없음, 실존적 상실, 관료주의와 고문, 비인간화, 부조리성이 그 징표로 보이는 한 세계를 나타내는 공식 같은 어휘가 되었다. (44p)
프란츠 카프카는 체코의 프라하에서 자수성가한 강건한 체질의 아버지와 경건한 율법학자, 의사, 섬약한 독신자 들이 많은 유복한 가정 출신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거의 평생을 프라하에서 살았다. 법학을 공부하고 관립 보험회사의 관리로 근무했다. 초기 산업화 사회의 산업 재해의 피해자들을 손가락이 잘렸는가 하면 여기저기 다치고 병든 사람들을 날마다 대했다. 현대사의 격동기를 체감하고 현대 사회의 문제들을 피부로 느꼈다. 생활인으로 일하면서, 나머지 모든 시간에는 글을 썼다. 그 어떤 전업 작가 이상으로 문학에 명을 걸었던 사람이다. 문학을 위해 삶이 포기되다시피 했다. 여러모로 삶의 국외자적 상황에 처한 이방인이기도 했다. 체코에서 태어났으나, 프라하 시민 10분의 1 정도밖에 쓰지 않는 체코어 한가운데 섬처럼 고립되어 있는 독일어가 모국어였고, 독일어가 모국어였으나 유대인이었고, 유대인이었으나 유대교 신앙이 없었다. 이런 환경은 인종적, 언어적, 종교적으로 정체성 확립의 어려움을 조성하는 여건이기도 했다. (44p) 옮긴이 전영애 서문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