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인솔자가 배우게 된, 감정노동의 진짜 의미
여행업에 발을 들였지만, 서비스업이라는 세계는 내게 완전히 낯선 영역이었다.
서비스가 무엇인지,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한 채 현장에 던져졌기에 겪는 사건마다 그야말로 매 순간이 당황의 연속이었던 것이었다.
서비스업이 처음이기도 했지만, 직장 생활에서도 늘 ‘갑’의 위치에 있었던 터라 이제는 ‘을’의 입장에서 '손님은 왕이요'를 되새기며 모든 것을 참고 견뎌야 한다는 게 더 어려웠다.
게다가 승질머리도 좋지 않은 데다, 쿠크다스 멘탈이라 손님이 조금만 언짢은 말을 해도그날 밤은 눈물로 지새우기 일쑤였다.
그래도 인솔자 일을 버틸 수 있었던 건
그 어떤 진상을 만나도,
그 어떤 개고생을 해도,
‘10여 일만 참으면 끝난다’는 단 하나의 위로 덕분이었다.
지금은 인수합병되어 이름이 사라진 한 여행사의 인솔자로 처음 나서게 되었다. (인솔자들이 이 여행사에 학을 떼며 개알티라 불렀던 회사이다)
그곳은 싸구려 패키지를 후려치기로 파는 것으로 악명 높은 곳이었는데, 한 푼의 비용이라도 아끼기 위해 혼자온 손님이 싱글 차지를 낼 의사가 없으면, 인솔자의 성별에 맞춰 억지로 룸조인을 시키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즐기러 온 손님들과 달리, 인솔자와 가이드는 종일 사람에 치이고 일정에 쫓기기 때문에 일과 후 혼자 쉴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래서 인솔자 교육 때 들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원하면 120유로를 내고 싱글룸을 쓸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초짜 인솔자들이 싱글룸을 사용하기 위해 돈을 내겠다는 의지를 피력해도 갑회사의 눈치를 봐야 했던 브로커회사는 무응답으로 강한 거절을 표시했다.
그래서 난 아예 요청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며칠이면 끝날 일정, 조금만 참으면 되겠지.
그 안일한 생각이 화근이었다.
하필 그때 감기까지 걸려 상태는 최악이었다.
약을 한 움큼 챙겨 들고, 결국 진한 항생제 냄새를 풍기며 여정에 올랐다.
나보다 한 살 많았으니, 그 당시 마흔여섯이었던 그녀의 이름은 ‘영순’이었다.
이름에서 풍겨지는 이미지와는 달리 작은 체구의 갸녀린 인상의 그녀는 모태솔로인지, 돌싱인지, 어쩌다 혼자가 된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이번 여행에서는 나와한 방을 쓰게 된 ‘싱글 손님’이었다.
처음부터 결심했다.
이 투어를 무사히 마치려면, 나는 무조건 그녀에게 양보해야 한다고.
손님과 함께 자야 하는 일이란 손님의 비위를 맞추고 듣기 싫은 얘기도 참을성 있게 들어줘야 하고 사사건건 배려해야 한다.
또 다른 업무의 연장으로 이제는 낮보다 밤이 더 고된 아이러니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스스로를 다독였다.
‘9일만 참으면 된다.’
첫날은 비교적 무난하게 흘러갔다.
그녀는 비타민을 건네며 먹어보라고 권하고, 룸팁도 자기가 내겠다며 준비해 온 돈을 꺼냈다.
늘 혼자가 익숙했기에 나는 그녀의 배려에 그저 머쓱하게 웃으며 나의 저질 센스를 탓했다.
그런데 문제는 따로 있었다.
결정적으로 한국에서 지어간 약이 제대로 듣지 않아 기침감기가 낫지 않고 점점 심해지더란 것이었다.
버스에서든 숙소에서든 시도 때도 없이 기침이 터졌다.
나도 모르게 몸을 웅크리며 숨을 참아봤지만, 한번 시작하면 발작처럼 올라오는 기침은 도무지 멈추질 않았다.
버스에서는 손님들을 괴롭혔고, 숙소에서는 곤히 자는 그녀의 잠을 설치게 만들었다.
세상에, 민폐도 이런 민폐가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녀가 삐딱선을 타기 시작했다.
말투는 점점 거칠어졌고, 나를 대하는 태도도 미묘하게 달라졌다.
같은 방을 쓰는 일이 점점 곤욕스러워져 나는 취침 전까지 일부러 바에 머물다 들어가곤 했다.
하지만 술 자체를 극혐 하던 그녀는 내가 방에 들어설 때마다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휴, 술 냄새 좀 봐.”
그 말투에는 노골적인 빈정거림이 섞여 있었다.
그녀의 날 선 태도는 방 안에서 그치지 않았다.
투어 중에도, 사람들 앞에서도 나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가이드와 함께 일회용 장갑을 끼고 손님들에게 에그타르트를 나눠주던 날이었다.
그녀는 일부러 내 앞에 서더니 이렇게 말했다.
“감기 환자한테 에그타르트 받느니 차라리 청산가리를 먹겠네”
그리고는 흥 하며 옆에 있던 가이드에게 에그타르트를 받아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동 중에 손님 두 명이 급히 상점으로 들어가는 걸 보고 나는 일행의 흐름을 살피며 뒤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녀가 갑자기 내 이름을 부르며 쏘아붙였다.
“**씨! 손님이 뒤에 있는데, 어떻게 앞장서서 가?”
그 말끝은 칼날처럼 서 있었다.
그때마다 속으로 부글부글 끓었지만, ‘손님은 왕이다’라는 말을 되뇌며 꾹 참았다.
며칠만 버티면 끝이었다.
그저 스스로를 다독이며 되풀이했다.
“참자, 참자, 조금만 더 참자…”
결국 곪을 대로 곪은 관계는 마지막 날 밤에 제대로 터졌다.
'오늘 밤만 참으면 끝이다'
그날은 그렇게 마음속으로 스스로를 다독이며 호텔 바에서 이른 해방의 기운을 만끽하던 중 걸려온 그녀의 보톡
시간은 밤 11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샤워기에서 뜨거운 물이 안 나오는데”
“제가 데스크에 요청드릴게요.”
순간 그녀의 악을 쓰는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폭발했다.
“야!!!!!!!!!!!!!!! 니가 와야지!!!!!!!!!!”
찢어져라 소리 지르는 폭발음에, 꾹꾹 누르고 있던 모든 감정이 폭발하면서 나도 순간 꼭지가 돌았다.
“하... 야, 너 지금 뭐라 그랬어?”
“니가 와야 될 거 아냐! 나 혼자 있는데 어떻게 남자를 보내!”
“일단 말은 하고 가야 될 거 아냐!!!!! 나 지금 이 일 그만둘 각오로 가고 있으니 한판 붙자"
“그래, 해봐!”
“내가 도대체 뭘 잘못했는데 나한테 이러는 건데?”
“너 잘못한 거 엄청 많지, 다 말해볼까? 첫째, 인솔자가 자기 몸 하나도 관리 못해서 감기 걸린 거.”
“또?”
“둘째, 손님 놔두고 먼저 간 거.”
“웃기고 있네. 내가 손님 못 본 줄 알아? 너 같은 하수가 지적질이야”
'또? 말해봐!'
'...'
'더 얘기해 봐. 할 말 없지?'
이 정도 되자 그녀는 거의 울부짖으며 히스테릭한 야수가 되어갔다.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가이드 불러내라고 난리난리 치는데, 가이드 안 부르면 입에 거품 물다 지 승질에 못 이겨 사망할듯해 결국 가이드까지 호출했다.
다음 기회에 내가 만난 중 가장 싸가지 없었던 이 가이드에 대해서는 따로 적겠지만 하필 그때 가이드와의 관계도 최악이었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회사에 상황을 보고했고, 결국 나를 다른 방으로 빼내어 그날 밤을 마무리했다.
다음 날 아침, 가이드는 나를 보며 한심한 듯이 말했다.
“어떻게 손님이랑 싸울 수가 있어요?”
이제 일정도 끝났겠다, 변명하고 싶지도 않아 그냥 째려보며 마무리 지었다.
이후 우리는 서로 말을 섞지 않았다.
오전 일정을 마치고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한층 안정된 그녀도, 나도 침묵 속에 각자의 자리를 지켰다.
귀국 후 컴플레인을 남기겠다던 그녀는 결국 아무런 액션을 취하지 않았고, 그렇게 그녀는 내 인생 최악의 진상 손님으로 기억에 남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녀가 그토록 나를 미워했던 이유가 발작적인 기침도 있겠지만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룸 문제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한 번은 이렇게 말했었다.
“서유럽에서도 싱글차지 안 내고 갔는데, 그때 인솔자는 자기 돈 내고 따로 방 잡던데요?”
아마 이번에도 내가 그걸 해주길 바랐던 거다.
하지만 그건,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회사에서 허락조차 하지 않는 상황에서 그녀의 기대를 들어줄 방법이 없었다.
그녀는 그걸 이해하지 못했고, 나는 그 사이에서 끝까지 감정을 삭이며 버텼다.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인솔자 일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서비스업이라는 건 무형의 용역을 제공해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단순한 일이 아니라, 결국 ‘감정을 다루는 일’이라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손님을 대하는 일보다 더 어려운 건 결국 내 감정을 다스리는 일이었다.
그녀가 나를 미워했던 진짜 이유가 무엇이었든,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저 서로의 피로가 쌓여 어긋난 감정이 폭발한 것뿐이었다.
누군가를 이해하려면, 먼저 그 사람의 자리에서 세상을 봐야 한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이후에도 수많은 손님을 만났고, 별의별 일을 다 겪었지만 그때의 ‘영순 씨 사건’만큼은 오래 남았다.
그 일은 내게 상처였지만, 동시에 인솔자로서의 세례식 같은 통과의례였다.
이제 누군가 까칠한 손님을 만나도 나는 속으로 이렇게 말한다.
“그래도 영순 씨보단 낫지.”
그리고 피식, 혼자 웃는다.
그게 내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작은 생존법이 되어버렸고, 그렇게 나는 점점 더 단단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