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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왜 땀을 흘리며 플래카드를 들었을까?

'연수'라는 이름의 진풍경

by ANNA

추석 연휴 후 진행 할 북경 행사는 충청도에 위치한 지역 기반의 소규모 여행사가 주관한다.

인사도 드릴 겸 사무실에 방문해서 실장님과 이런저런 얘기 나누던 중 대표님이 모 기관단체를 이끌고 시찰하는 투어를 이끌고 계신데, 이 쏴람들이 말이야..

술값 계산해 달라, 심지어 룸팁도 대신 내달라고 요구해서 참으로 힘들게 투어를 진행시키고 있다고 하는 얘기를 처음 듣는 순간 '뭐 이리 경우 없는 것들이 다 있나?'란 생각이 들었지만 막무가내로 고집부리는 것은 아닐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공공기관 단체를 인솔한 적은 없었기에 여행업 선배와 만난 김에 여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이 업계에 뿌리 깊게 자리 잡힌 고질적인 관행에 대해 새삼 알게 되었다.


정부나 공공기관이 시찰을 명목으로 해외순방에 나설 때면, 그 시작은 늘 계획 수립과 함께 해당 행사를 맡을 여행사를 정하기 위한 입찰 절차가 따른다. 겉으로는 공정한 경쟁을 위한 제도처럼 보이지만, 지방의 경우 현실은 다르다. 오랫동안 같은 기관과 호흡을 맞춰온 여행사가 늘 입찰에 참여하고, 또 늘 당첨된다.


그 여행사 대표는 큰돈을 안겨주는 ‘대어’를 놓치지 않기 위해, 하루 이틀 치 저녁 만찬의 술값을 대신 계산해 준다든지, 룸팁의 명목으로 1달러짜리 10개를 담은 봉투를 건네는 식의 각종 부가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한다.

이런 관행을 잘 아는 이들은, 예비비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대표가 반드시 동행해 주길 원했고, 그 정도의 ‘풀 서비스’를 암묵적으로 기대한다는 사실은 정부나 공공기관의 인센티브팀을 이끌 기회조차 없었던 병아리 인솔자로서는 절대 알 수 없었던 딴 나라 세상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스페인 저가 패키지팀에서 공무원팀을 처음 접했다.

공무원들이 패키지투어라니.. 여행업에 막 발을 들였던 그 당시는 왜 공무원들이 패키지투어에 참석했는지 이유조차 알 수 없었다.


출발 전 해피콜을 진행할때 '재래시장 방문이 일정에 잡혀 있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대부분 여행일정을 미리 확인하고 여행 계약을 하기에, 이런 질문 자체가 생소했다.

확인 결과 일정상 공식적인 '재래시장 방문'은 없다고 답변했지만, 자기들이 받은 일정표에는 '재래시장 방문'이 명시되어 있다고 해서 인천공항에서 미팅 시 확인해 보기로 했는데 그들이 전달받은 일정표에는 어이없게도 '재래시장 방문' 일정이 적혀 있었다.


일단 사태파악을 해보니 한정된 예산으로 여행지를 골라야 하는 공무원들이었고, 그 예산으로 유럽을 갈려고 치면 싸구려 패키지여행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고, 상품 하나라도 더 팔아야 하는 여행사는 패키지여행을 추천하면서 일정에도 없는 '재래시장 방문'을 거짓으로 넣어놨던 것이다.


'일단 패키지여행의 특성상 홈페이지에 공고된 일정대로만 진행해야 한다'

'재래시장을 가기 위해서는 자유시간 중 방문하거나 일정을 빼고 따로 다녀오는 방법 밖에 없는데, 패키지투어의 특성상 자유시간조차 빠듯할 텐데 그건 알아서 해야 한다'

'이의 있으면 일정에도 없는 방문지를 넣어서 거짓 여행 일정을 배포한 대리점에 따져라'

이 말을 듣는 그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여행지에서의 그들은 가난했다.

옵션과 쇼핑이 포함된 저렴한 상품이었지만, 쇼핑샵에서는 팔짱만 낀 채 앉아 있었고 옵션 상품 역시 온갖 핑계를 대며 단 하나만 참여했다.

옵션과 쇼핑 성적에 따라 수익이 갈리는 가이드는 속이 끓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휴게소에서 커피 한 잔, 화장실 비용조차 쓰지 않았고, 식사 자리에서도 음료 한 잔 사 마시는 법이 없었던 그들은 저렴한 간식과 맥주를 살 수 있는 마트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가는 곳마다 가이드를 집요하게 괴롭히곤 했다.

물을 어떻게 조달해서 마셨는지 알 수가 없지만 (수돗물을 마신 것으로 추정), 버스에서 1유로에 판매하는 물 한 병조차도 구입하지 않았던 그들은 똘똘 뭉쳐서 국가적 막대한 사명을 품고 온 원대한 계획을 이루기 위해 돈은 한 푼도 안 쓰기로 작정한듯했다.


그래도 나름 자유여행 중 그들이 일정에 맞춰서 방문할 수 있는 재래시장을 두 군데 잡은 것이 바르셀로나 '보께리아 시장'과 마드리드의 '산 미구엘' 시장이었는데 이미 가이드 눈밖에 난 그들에게 자유시간을 많이 줄리도 없었지만 실제로 유럽 패키지여행 다녀온 사람들은 알 것이다.





패키지투어 광고할 때, '**에서 자유시간 **시간 확보'

이거 괜히 적어 놓은 것이 아니다.


유럽은 기사들의 운행시간을 보장해줘야 하기 때문에 허용된 시간 안에서 모든 일정을 다 진행해야 하는 데다, 스페인처럼 땅덩어리 넓고 일정 빡빡한 곳에서 옵션투어 진행해야 하고 쇼핑센터까지 들러야 하는 투어라면, 한정된 시간을 짜내고 짜내서 시간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자유시간은 고작해야 10~20분 주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심지어 마드리드에서의 자유시간을 가지려면 '마드리드 연장투어'라는 옵션을 80유로 정도를 들여서 구입해야 하는데, 화장실 금액도 아끼기 위해 방광을 조이는 그들이 자유시간을 구입하기 위해 80유로를 쓸 리가 없다.


바르셀로나 람블라스거리에서는 사진만 찍을 15여분의 시간만이 주어졌지만 그들은 치킨 배달 오토바이마냥 달려도 불가능해 보일듯했던 '보께리아 시장' 방문의 하나의 임무를 완수했다.


마드리드에서의 자유시간을 옵션으로 구입하지 않았던 그들은 제발 일정 중에 '산 미구엘 시장'을 들를 기회를 달라고 사정했고, 그나마 가까운 쇼핑센터 방문을 포기하겠고 하여 내가 동행해서 다녀왔는데

'무릎이 아프다'며 각종 옵션을 하지 못한다고 양해를 구했던 30대 그들이 달리는 속도는 우사인 볼트급이었다.

숨이 턱에 차도록 달려서 도착한 그곳에서 그들은 애초에 시장을 둘러볼 생각도 없었다.

시장의 입구에서 부끄럽게 부끄럽게 품에서 꺼낸 플래카드를 들고 있는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하고선 다시 다리에 바퀴를 달고 내달렸다.


플래카드의 내용은

'**군 재래시장 첨단 혁신을 위한 선진국 재래시장 시스템 탐방'


그들이 재래시장에 대해서 뭘 보고 배웠으며 어떤 식으로 보고서를 작성했으며, 선진국 시스템을 도입해 쬐끔이라도 개선을 시켰는지는 아직도 궁금하다.





시간이 지나 중국으로 공공기관 연수를 다녀와서 겪었던 썰을 추가로 풀려고 한다.


출발 전 단체팀을 총괄하는 대표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금면왕조라는 공연 아시나요?'

'아니요'

'북경 가 본 적 없으시군요'

어떠한 공연에 대해 모른다고 해서 빈정대는 그 말투가 거슬렸다.

'가 봤습니다만, 왜 물으시죠'

'공연을 진행하려면 몇몇 이상 모여야 하나요?


순간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갔다.

이들은 국가 돈으로 연수를 떠나는 공무원들이다.

이 질문은 본인들이 돈을 내서 공연을 관람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너네 여행사에서 제공해 줄 수 있냐고 떠보는 의도가 담겨 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거기에 대해 결정권한이 없는 난 담당자에게 여쭤보라며 마무리 지었다. ,


가이드에게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이런 연수팀에서는 구성원 모두의 공동경비인 일종의 용돈을 짭짤하게 받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원하는 공연을 볼 수 있게 일정에 넣어달라고 여행사에 요청했을 테지만, 여행사에서는 그 돈으로 가이드에게 옵션투어를 구입해서 진행하라고 했을 테고 전원참석이라는 점을 내세워 가격을 후려치기 하라는 팁을 줬을 것이다.

그리고 담당자는 가격 네고를 성공적으로 이행했다.


그 덕에 난 예정에 없던 서커스공연과 용경협 관광까지 덤으로 할 수 있었다만, 치킨게임의 승자는 공무원들이었고 특별한 그들을 신처럼 모셔야 하는 가이드의 패배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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