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이별 여행, 그리고 몇 해 뒤 아들의 마지막이야기
백만 가지 여행, 오백만 가지 스토리에서 가장 임팩트한 사건을 다루려고 하니 첫 주제가 아주아주 묵직하게도 사망이 되어버렸다.
손님이 현장에서 사망한 건 아니지만, 누군가의 죽음을 생각할 때 그와 함께 떠오르는 가족이 있다.
때는 2019년
인솔자 일에 막 발을 내디뎠던 병아리 인솔자 시절 담당했던 팀인데 그 가족의 사건이 아니더라도 결코 잊을 수 없었던 팀이었다.
오랜 세월이 지났고 수많은 팀들을 만나고 헤어지고 내 기억에서 지워졌지만, 그 팀은 모든 구성원 하나하나가 생각날 뿐 아니라 아직까지 만남을 이어오고 있다.
군대동기로 만나서 아직까지 연을 이어오고 있는 세 쌍의 커플
공군대령으로 퇴직하기 전 여행온 커플
세종시에서 온 그중 가장 튀지 않았던 중년 커플
그리고 대구에서 온 가족 장성한 아들과 딸로 구성된 네 명의 가족팀이었다.
인솔자를 하면서 느낀 사실인데, 한국 사람들은 유독 튀는 것을 싫어라 한다.
개성을 드러내는 것을 부담스러워해서 자아를 감추고 집단적인 분위기에 동행한다.
술로 얘기하자면 여행팀의 주류, 비주류가 확연히 구분된다.
본인이 아무리 술을 좋아한다 한들 멤버들 대부분이 술을 즐기지 않는 분위기면 거기에 편승해 비주류파가 된다.
멤버 중 대다수가 술을 즐긴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술을 즐기지 않는 비주류파도 맥주 한잔 정도는 마실 용기를 얻으며 그 팀이 전부 주류파가 되는데 합류한다.
그 팀은 내가 만난 팀 중 최강의 술팀이었다.
군대동기 커플 멤버가 전부 술을 즐겼고, 심지어 잠시 쉬는 휴게소에서조차 와인잔을 부딪치는 광경을 목격한 나머지 손님들은 용감하게 주류파로 합류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모로코로 넘어가는 배가 하염없이 지연되자, 가족팀의 아들이 주도해서 인근 시장에서 사 온 와인과 해산물을 바닥에 깔아, 스페인 알헤시라스에서 한국식 술판을 벌였던 일이다.
이 가족이 독특했던 것이 다들 딱히 여행을 좋아하지도 않는 듯했고, 결정적으로 가족들이 전부 따로 놀더란 것이었다.
블로그를 운영하신다는 아버님은 사진 찍기와 자신의 블로그를 홍보하기에만 열중했고, 자식들은 술을 즐겼고, 어머님은 걱정스레 그 곁을 지켰다.
아들의 여권을 가득 채운 스탬프를 보고, 슬그머니 직업을 물어보았다.
그는 S전자 연구원이었다.
중국 출장이 잦았다며 담담히 설명하는 그의 옆에서 어머니가 “우리 아들, 엘리트예요” 라며 거드는 말투에 아들에 대한 자부심이 묻어 있었다.
어쨌거나 이 팀은 술로 대동단결하여 지금까지 만남을 이어오고 있다.
그 단톡방의 참여자는 아들분 하나였고, 어찌어찌 계속 이어오던 차에 함께 여행했던 어머님의 부고를 들었다.
그리고 스페인여행을 다녀온 것이 고인이 되신 어머님에게 정말 좋은 추억이 되었다는 것이다.
나중에 알았던 사실이지만 어머님은 암진단을 받았고 가망 없음을 알았기에 항암 전 이별여행을 온 것이었다.
그리고 작년 여름 강남 삼겹살집에서 모임이 잡혔다.
정년퇴임하신 공군 대령님의 재취업을 축하하는 자리를 만들기 위해 참석인원을 정하고 장소를 조율하는데, 유독 그 분만이 답이 없었다.
단톡방에서 참석여부를 재촉해도 침묵만을 지켰다.
그래서 모인 자리에서 어르신들은 못 오더라도 참석여부에 대한 답을 줘야지 젊은 놈이 싸가지가 없어~ 이런 분위기로, 대령님께서 직접 전화를 걸더니 다소 당황스러운 말투로 물어보셨다.
'~씨 휴대폰이 아닌가요?'
그 이후 네, 네만 반복하던 대령님의 표정이 점점 굳어갔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그의 아내
그는 작년에 뇌종양을 진단받았고, 진달 받았을 당시 이미 손을 쓸 수 없는 상태여서, 지금은 모든 기억을 잃고 호스피스에서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그제서야 지난해 그분이 단톡방을 나갔고, 난 실수인 줄 알고 다시 불러들였던 사실이 기억났다.
그때 이후 1이 사라지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상황을 설명하지 않고 조용히 주변을 정리하려는 그를 내가 다시 불러들인 것이다.
40대 초반의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가 비명횡사한듯한 사건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충격이었다.
60대 70대의 일행들은 가는 데는 순서 없다며 다들 한탄하며 술잔을 기울였다.
일 년 전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으니, 아마도 그분은 영면에 들었을 것이다.
죽음은 가장 잔인한 벌이다.
전생에 어떤 죄를 지었기에 단란했던 가족은 그리 가혹한 형벌을 받게 되었을까?
시간이 흘러도 그 가족이 떠오를 때마다 나는 묘한 감정에 휩싸인다.
초등학교 자식 둘을 키우던 젊은 가장은 눈이나 제대로 감았을까?
운명이라는 단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잔혹함.
그리고 어쩐지, ‘이 세상에 남은 아버지의 마음은 어떤 모습일까’라는 생각이 한동안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어머니와 아들, 두 세대가 같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 앞에서 나는 인간의 삶이 얼마나 덧없고 연약한가를 새삼 느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누구도 막을 수 없었던 일.
그저 생과 사가 한 집안 안에서 너무 가까이 다가왔다는 사실이 오래도록 가슴 깊은 곳을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