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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길은 반드시 계산서를 청구한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배운 가장 비싼 교훈

by ANNA

여행사를 통해 걷는 산티아고 순례길 상품은 겉으로 보면 패키지투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패키지투어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흘러간다.

그 차이가 가장 또렷하게 드러나는 지점 중 하나가 바로 ‘식사’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는 패키지투어에서 당연하게 제공되는 단체 식사가 불가능하다.
사람마다 걷는 속도가 다르고, 하루에 도착하는 시간도 제각각이기 때문에, 속도가 천차만별인 순례자들을 한자리에 모아 식사 시간을 맞춘다는 것 자체가 애초에 성립하지 않는다.


그래서 인솔자의 역할도 달라진다.
정해진 식당으로 사람들을 이끄는 대신, 걷는 도중 들를 수 있는 바(bar)나 각자가 도착해 머무는 지역의 식당 정보를 건네준다.

선택은 온전히 순례자의 몫이다.

그 결과,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는 매일 작은 갈림길이 생긴다.
현지 바에 앉아 메뉴판을 들여다보며 미식 탐험을 할 것인가, 아니면 빵 하나를 사서 배낭에 넣고 ‘극한의 절약 모드’를 발동할 것인가.
이 길에서는 걷는 방식만큼이나, 먹는 방식 또한 각자의 선택이다.




내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연수 차원에서 참관했을 때, 단체를 이끄는 팀장이 있었다.
그리고 그 팀장 옆에는 K라는 남자가 늘 함께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처음 인연을 맺은 뒤, 그 팀장의 투어만 벌써 네 번째 따라다니고 있다는 사람이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들과 함께 걷고, 함께 식사하게 되었다.
그 관계를 한 단어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었다.
식사 비용은 늘 K가 냈다는 점이다.

한두 번의 호의처럼 보이지 않았고, 팀장 역시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손님들은 대부분 도미토리에 묵었고, 팀장과 K는 호스텔을 따로 예약해 지내는 편이었다.

그러다 3인실이나 4인실을 쓰게 되는 날에는 나와 혼자온 남자 P라는 손님이 그 방에 합류하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자연스럽게 넷이 함께 어울리게 되었다.


피레네산맥을 넘기 전, 생장에서 요리가 가능한 아파트를 구하게 되었다.
4인용 숙소였고, 팀장과 나, K, 그리고 P가 처음으로 한 공간에서 머물며 제대로 안면을 트게 된 날이었다.

모든 식비를 책임지던 K는 음식의 ‘가성비’보다 ‘퀄리티’를 훨씬 중요하게 여기에, 그날 저녁 식탁에는 스테이크를 비롯한 각종 산해진미가 가득 올랐고, 와인까지 곁들여졌다.

그렇게 우리는 순례길의 첫 끼를, 유난히 배부른 순례자로 시작했다.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던 중이었다.
사이즈가 유독 컸던 P씨의 배낭에서 낯선 물건 하나가 눈에 띄었다.
무심코 그게 뭐냐고 묻자, 그는 휴대용 정수기라며 수돗물을 붓고 정수되는 과정을 직접 보여주었다.
처음 보는 물건이었고 마셔보라고 하는데 전혀 내키지도 않았지만, 짠돌이 기질이 보이는 그 유난스러움에 잠시 말문이 막혔다.


다음 날 아침.
팀장은 첫날은 아파트에서 식사를 하게 되니 각자 라면이나 햇반 같은 간단한 한식을 챙겨 오라고 공지했다.
주방에는 자연스럽게 각자의 컵라면과 즉석밥이 하나둘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때 P씨가 내어놓은 것은 새끼손가락만 한 김치 한 조각이 전부였다.
그마저도 기내식으로 나왔던 포장을 뜯지 않은 채 아껴 두었다가, 이날을 위해 꺼낸 것이라 했다.

그리고 그의 젓가락은, 체면상 '나눠 먹자는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다른 사람들의 라면 위를 분주하게 오갔다.




본격적으로 이상한 징후가 느껴진 건 그 이후였다.

P씨는 점점 더 적극적으로 “같이 식사하자”며 팀장을 찾기 시작했다.
대여섯 번쯤 식사를 함께하는 동안, 그는 다음날 걸을 모든 에너지를 비축하겠다는 자세로 게걸스럽게 먹어치웠고, K가 결제하는 상황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말로는 종종
“다음엔 제가 샌드위치라도 하나 사겠습니다”
라고 했지만, 그 약속이 실제로 지켜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쯤 되자 팀장도 슬슬 P씨의 연락을 피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P씨는 포기 대신 다른 선택을 했다.
팀장과 K의 동선을 파악해 따라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순례길 위에서는 묘하게도, 식사를 둘러싼 작은 추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수많은 추격전에서 실패한 P씨는 결국 전략을 바꿨다.
멤버들을 하나씩 찾아다니며 맛집을 발견해서 모시고 가고 싶다는 말로 가스라이팅을 하기 시작했고, 레이더에 걸린 팀원들은 알면서도 한두번은 따라가주었다.

물론 P는 계산할때가 될때마다 화장실을 다녀오거나 신발끈을 묶으며 자신의 몫을 은근슬쩍 다른 팀원들에게 넘겼다.


그마저도 여의치 않은 날에는 식당에서 얻은 바게트 빵을 직접 정수한 수돗물과 함께 삼키며 극도의 절약을 몸소 실천했다.




이쯤 되자 팀 안에서도 서서히 P씨의 ‘짠돌이 기행’을 눈치채기 시작하면서, 그에 관한 작은 괴담들이 돌기 시작했다.

“순례길 걷다가 잠깐 쉬는 바에서 P를 만났는데, 그 사람이 웬일로 빵을 권하더라. 어디서 샀냐고 물었더니 기내식으로 나온 빵이래.” (비행기를 탄 지 이미 열흘이 훌쩍 지난 날이었다)

“팀장이 추천한 맛집에 팀원들이랑 갔는데, 메뉴판을 보더니 갑자기 속이 안 좋다면서 수프 하나만 시켰는데,
그리고는 계산도 안 하고 먼저 내빼더라

“어제 같이 저녁 식사를 했는데, 바게트 빵을 계속 리필하며 봉지에 넣어 챙겨서, 내가 진짜 챙피해서 죽는 줄 알았대니깐”


아침 식사 자리에서 그를 마주치면, 그는 늘 그렇게 모아둔 바게트 빵을 물과 함께 천천히 씹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 모습이 안쓰러워 이것저것 더 먹으라고 권하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런 권유는 오래가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그를 차갑게 외면하기 시작했다.




초반 몇 번의 식사 이후로는 그와 직접 부딪칠 일은 거의 없었다.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썩 달갑지 않았던 터라, 나 역시 최대한 엮이지 않으려 조용히 그를 피해 다녔다.


순례길에서 가끔 마주치는 그의 모습은 늘 비슷했다.

어김없이 외국인 여성 한두 명을 동행하고 있었다.

같은 팀의 손님들은 가스라이팅 하는 존재로만 여기던 P씨는, 밥 얻어먹는 수단으로 밖에 여기지 않았던 팀원들에게 대하는 것과는 백팔십도 다른 태도로 외국인에게는 바라는것 없이 상냥했고, 유부남이라는 사실이 무색할 만큼 노랑머리 이성에게 다가가는 데만큼은 꽤 적극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서툰 영어로 어떻게든 말을 걸며 함께 걷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바에 들러 여자에게 커피 한 잔을 사줄 금적적인 여유까지는 없었던 모양이다.
그의 외국인 여성 동행은 늘 그렇게, 하루를 넘기지 못한 채 끝나곤 했다.




순례길이 중반을 넘기면서, 나는 예정대로 빠지게 되었고, 이 팀은 후반부로 접어들었다.

그 즈음, 연락을 주고받던 K에게서 꽤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전해 들었다.

P씨가 감기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때는 2022년 봄.
코로나의 기세가 조금은 누그러들었다고는 해도, 사람들 마음속 공포까지 사라진 시기는 아니었다.
감기 증상만 있어도 반드시 PCR 검사를 받아야 했던 때였다.

아무리 숨기려 해도 감출 수 없었던 증상은 결국 팀장의 레이다에 포착되었다.
P씨는 팀장이 지켜보는 앞에서 검사를 받았고, 결과는 양성이었다.


당시 P씨와 밀접하게 어울리던 팀원은 없었기에 모두들 그가 순례길에서 만났던 외국인 동행에게서 옮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추측했다.

그의 양성 판정 하나로, 팀 전체는 순식간에 공포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 이후 P씨는 방역 정책에 따라 더 이상 도미토리 형태의 알베르게를 이용할 수 없게 되었다.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혼자 쓰는 1인실, 그것도 독실.

수돗물을 정수해가며 아낀 돈, 식당에서 얻어먹은 바게트로 연명하며 아낀 돈, 외국인 여성에게 커피 한 잔 사주지 않으며 지켜낸 그 모든 돈보다도 훨씬 큰 비용을 그는 그때부터 지불해야 했다고 한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귀국을 앞두고 받은 코로나 검사에서도 다시 양성이 나왔고, 결국 모든 비용을 자비로 부담한 채 일주일을 더 머물러야 했다.

순례길에서 그렇게까지 애써 아꼈던 시간과 돈은, 마지막에 와서 한꺼번에 빠져나갔다.


솔직히 말하면,
정말 고.소.했.다.



내가 직접 겪은 손님은 아니지만, 팀장이 들려준 산티아고 순례길 전설적인 ‘대왕짠돌이’의 일화로 이야기를 마무리해 보려 한다.

순례길을 걷던 중, 한 손님이 알베르게 숙박비가 너무 비싸다며 앞으로는 따로 움직이겠다고 선언했다.
팀장은 말리지 않았고, 대신 마지막 날 산티아고에서 다시 만나자고 했을 뿐이다.


그리고 약속한 날, 산티아고에 거지꼴로 나타난 그는 단돈 백유로로 자신이 어떻게 산티아고 순례길을 완주하며 생존했는지 자랑스러운 무용담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는 주로 도네이션으로 운영되는 알베르게에 묵었고, 도네이션조차 하지 않은 채 이용했다.
때는 가을이라 길가에 떨어진 사과를 주워 먹고, 밤을 주워 깎아 먹고, 포도밭에서 몰래 포도를 따 식사와 간식으로 삼았다고 했다.

참으로 추잡스러운 생존기를 그는 '거지놀이 미션'을 완수한 양 참으로 당당했다.


문제는 모든 일정을 마치고 귀국길에 올랐을 때였다.

공항 체크인 카운터에 여권을 내밀었는데, 그 여권이 그의 것이 아니었다.

한국 여성의 여권이었다.

알고 보니 산티아고 입성 전 마지막 알베르게에서 한국 여성과 함께 체크인을 하며 여권을 건넸고, 스캔 후 돌려받는 과정에서 서로의 여권이 바뀌었던 것이다.

결국 그는 비행편 변경 비용과 영사관에서 임시여권을 발급받기 위한 가이드 비용, 그리고 예기치 않게 추가된 호텔 숙박비까지

모두 자비로 부담해야 했다.

그가 순례길에서 그렇게 애써 아낀 돈의 몇십 배를 한 번에 지불하며 억울해했다고 전해지지만, 결말을 듣는 사람들은 이유모를 카타르시스와 통쾌함을 느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난 짠돌이들의 이야기는 결국 돈에 대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실은 돈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대한 태도의 이야기였다.

아끼는 것과 인색한 것은 닮아 보이지만 전혀 다르다.
아낌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지만, 인색함은 종종 타인의 몫까지 계산서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그 차이는, 걷는 동안에는 잘 드러나지 않다가 마지막에 가서야 정확한 값을 요구받는다.


순례길에서는 아낀 돈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보다, 아끼려 했던 방식이 더 큰 비용으로 되돌아오는 장면을 자주 보게 된다.
돈은 결국 쓰지 않아서 사라지는 게 아니라, 쓰지 말았어야 할 곳과 써야 했던 곳을 구분하지 못할 때 가장 비싸게 빠져나간다.


그래서 나는 이 길에서 돈을 얼마나 아꼈는지가 아니라, 어디에서 기꺼이 썼는지가 사람을 드러낸다는 사실을 배웠다.


가끔 P씨가 궁금하다.

그리도 민폐 끼쳐가며 욕 먹어가며 알뜰살뜰 아껴서 건물 한채 올리셨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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