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죽이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산티아고 순례길 위의 균열

by ANNA

어떤 사람의 진짜 얼굴을 알고 싶다면, 그와 함께 여행을 떠나보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 결혼을 앞둔 커플에게 여행은 일종의 예행연습처럼 여겨진다.
실제로 신혼여행지에서 이혼 도장을 찍는 부부가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농담이 아닐 만큼 여행이 사람의 본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일 것이다.


여행 인솔자로 일하며 나는 그런 장면들을 수없이 목격했다.
여행지에서 크게 다투고는 남은 일정 내내 서로 말을 섞지 않는 부부,
여행 카페에서 ‘룸조인’으로 만났다가 사이가 틀어져 한 사람이 조기 귀국해 버린 동행들.

하지만 그 모든 이야기를 압도하는 무대는 단연, 40일을 함께 걷는 산티아고 순례길이었다.

산티아고에서는 갈등이 전혀 다른 얼굴로 나타난다.

패키지여행이나 일반적인 자유여행에서는 결코 드러나지 않을 방식으로 사람의 성격과 상처와 이기심이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수면 위로 떠오른다.


반면에 이 길에는 그곳에서 남남이었던 사람들이 가족보다 깊은 인연이 되기도 하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하는 곳이다.




40일이 넘는 시간을,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 걷는 여정인만큼 산티아고 순례길의 모습은 일반적인 패키지여행과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한국인 단체투어 순례자들의 대부분은 이미 은퇴한 이들이다.
그들 나이대의 아랫단계는 많은 시간과 돈을 동시에 가질 수 있는 사람들이 섞여 들어온다.
임대업을 하거나 회사를 소유해 스스로 일정을 조절할 수 있는 사람들, 안식년을 얻어 길 위에 오른 직장인, 영업과 원격근무를 병행하는 디지털 노마드들.

여성 순례자들 중에는 경제적으로 비교적 여유 있는 전업주부들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 길 위의 사람들은 대체로 시간이 있고, 돈이 있고, 그래서 오히려 마음속에 여백이 많은 사람들이지만, 그 여백 속에서 서로의 본모습이 아주 선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한다.




비슷한 나이대의 직장인 남자 두 명은, 각자 혼자 이 길에 올랐지만 금세 함께 걷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강남 한복판 같은 동네에 산다는 비슷한 또래의 사모님 두 명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네 사람은 하나의 팀이 되었다.

함께 걷고, 함께 쉬고, 함께 밥을 먹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함께 장을 보고, 함께 밥을 지어먹기 시작했다.
남자들은 여자들의 배낭을 들어주고, 여자들은 남자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었다.

묘하게 얽힌 조합에 역할이 나뉘는 그 모습에 주변 순례자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지만, 순례길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라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 네 사람이 처음으로 삐걱거리기 시작한 것은, 여자 팀의 조금 더 젊은 한 사람이 어느 날부터 그 무리와 떨어져 혼자 걷기 시작했을 때였다.

길 위에서는 누군가 한 발짝 떨어지는 순간이 이미 오래전부터 쌓여 있던 균열의 신호가 된다.


나중에야 전말을 알게 되었는데, 남자 둘은 멤버들 중 가장 젊고 멀쩡해 보였지만 실은 어렵게 시간을 쪼개어 나온 직장인, 즉 월급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40일이 넘는 길 위에서 매 끼니를 호사스럽게 해결하기에는, 그들에겐 여유가 많지 않았다.

반면 여자 둘은 달랐다.

넉넉한 형편의 강남 사모님들이었고, 식사 시간이 되면 자연스럽게 남자들 몫까지 계산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몇 번의 호의였을지 모르지만, 그 호의는 곧 하나의 ‘역할’이 되었다.

마트에 함께 가도 남자들은 팔짱을 낀 채 장바구니를 바라보기만 했고, 계산대에는 늘 여자들만 섰다.
먹고 마시는 모든 것이, 조용히 여자들의 몫이 되었다.


그 균형에 가장 먼저 의문을 제기한 사람은 여자 팀의 더 젊은 멤버였다.
“이건 좀 아니지 않냐”는 말에 연장자는 웃으며 답했다고 한다.
우린 돈이 많으니 사주는 게 맞지. 그리고 남자들이 얼마나 귀여워.

그 순간, 네 사람의 균형은 무너졌다.

젊은 여자는 그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여러 남녀가 섞여 있던 ‘성당 팀’에 합류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팀 역시 이미 갈등 끝에 둘로 쪼개져 있던 상태였다.

산티아고에서는 이렇게 사람들이 끊임없이 흩어지고 다시 엮이고, 결국 초기의 조합은 결국 전혀 다른 모양새로 걷게 된다.


남자 둘을 “귀엽다”고 부르며 그들의 식사를 책임졌던 왕언니는, 귀국 날 비행기 좌석마저 그들 사이에 끼어 앉고 싶다며 체크인 카운터에서까지 신경 써 달라고 할 만큼 끝까지 특별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 팀 안에는 또 다른 조합의 두 남자가 있었다.
나이대가 비슷해 자연스럽게 엮인 사람들이었다.

한 사람은 소방관으로 평생을 일하다 퇴직해 택시기사가 된 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유명 건설사의 CEO로 일하다 정년퇴직한 사람이었다.

삶의 결은 전혀 달라 보였지만, 순례길에서는 그런 차이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같은 숙소에서 한 침대를 나누어 쓰고, 걷는 속도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함께 걷고, 같은 식당에서 밥을 먹고, 와인을 마시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사람들은 또 하나의 ‘순례길 커플’이 탄생했다고 생각했다.

이 길에서는 그런 관계들이 너무 쉽게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날 그 둘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걷는 간격이 조금씩 벌어지고, 대화의 온도가 서서히 식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작은 어긋남은 곧 이 길이 얼마나 잔인한지를 보여주게 된다.


소방관은 어느 날부터 혼자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직 건설사 대표는 자연스럽게 나와 발을 맞추게 되었다.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끝내 알 수 없었다.
다만 중반을 넘길 때까지 꽤 오랜 시간 함께 걷던 두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갈라섰다는 사실만이 조금 기이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그렇게 혼자가 된 그는 길 위에서 나를 붙잡았다.

순례길에서는, 외로움이 가장 빠르게 사람을 다른 사람에게 밀어붙인다.

아무리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펼쳐진 모험담이라고 한들, 나는 점점 그의 이야기를 듣는 일이 조금씩 부담스러워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전직 소방관이 나에게 따로 면담을 요청했다.
대수롭지 않게 나간 자리에서,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을 들었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가 굳이 ‘누군가’라고 말한 이상 상대가 누구인지 말해줄 생각이 없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순례길을 함께 걷고 있는 멤버라는 건 분명했고, 떠오르는 얼굴은 하나뿐이었다.

“혹시... 우리 팀 사람인가요?”

“그건 말해 줄 수 없습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러나 분명하게 말했다.

“우리 팀 사람일 가능성이 크니 그걸 전제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스스로를 컨트롤하기 어렵다고 느끼신다면, 잠시 팀을 벗어나 따로 숙소를 잡고 걸으셔도 됩니다. 필요하다면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는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하지만 결국 그는 끝까지 우리와 함께 걸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날 들었던 ‘죽이고 싶다’는 한마디는 이 팀에서 '산티아고 순례길 살인사건'이 일어날까 봐 끝까지 나를 조마조마하게 만들었다.




이 모든 갈등의 끝에는, 결국 돈이 남는다.

전직 건설사 대표와 함께 걷는 동안 들은 이야기들을 종합해 보면, 둘의 균열은 아주 사소한 지점에서 시작된 듯했다.
비교적 여유가 있던 그는 쉬는 시간마다 바에 들러 커피나 간식을 사 먹고 싶어 했지만, 소방관은 그런 지출이 부담스러워 “전날 마트에서 산 걸로 해결하자”라고 했다고 한다.

문제는 커피 한 잔이 아니라 그 말이 건드린 감정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자존심이 먼저 긁혔을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싸움은 없었지만, 비슷한 균열은 나이 지긋한 여성 둘로 이루어진 성당 팀에서도 보이고 있었다.

유럽의 바에서는 화장실을 쓰거나 잠시 쉬기 위해서라도 무언가 하나쯤은 주문하는 것이 암묵적인 예의다.
무료 화장실이 당연한 한국에서 온 사람들에게 이 규칙은 생각보다 큰 부담이 된다.

그 둘 중 조금 더 여유 있는 사람은 늘 커피와 간식을 주문했고, 동행하는 사람은 “나는 괜찮다”며 아무것도 시키지 않은 채 그 옆에 멀뚱히 앉아 시간을 보내는 날들이 지속되었다.

그 장면이 하루, 이틀, 열흘 반복되면서 말없이 쌓인 거리감은 결국 사람들을 갈라놓았다.


같은 길을 걷고 있어도, 마음은 이미 경제적인 차이만큼 다른 속도로 멀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길이 아니라 거울에 가깝다,

40일 동안 걷는 것은 다리가 아니라, 자기 자신과 타인의 민낯이다.


이 길에서는 누가 더 오래 걷고 완주하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가 더 오래 참고, 누가 더 오래 베풀고, 누가 더 오래 자존심을 내려놓을 수 있느냐가 관계를 결정한다.

커피 한 잔, 간식 하나, 화장실 앞에서의 몇 유로가 사람의 체면과 상처를 건드리고 그 적은 금액들이 쌓여 결국 관계의 방향을 바꾼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 길에서 평생 갈 동행을 만나고, 어떤 사람은 가장 가까웠던 사람과 남이 되어 돌아간다.


산티아고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함께 걷는 사람에게 얼마나 솔직해질 수 있는가?
그리고 얼마나 더 초탈해질 수 있는가?


그 질문 앞에서, 우리는 모두 순례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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