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을 쓸어 담던 열두 명의 여자
패키지투어 업계에는 통용되는 은어 중 ‘팀칼라’라는 말이 있다.
이 팀이 돈을 많이 쓸 것 같은 색인지, 아니면 끝까지 지갑을 닫고 버틸 색인지가 베테랑들의 눈에는 한눈에 들어온다는 뜻이다.
이 ‘팀칼라’는 여행사에서 먼저 판단한다.
팀원들의 구성이나 지역을 보면, 신기할 만큼 이 팀이 돈을 쓸 팀인지 아닌지가 분명하게 갈린다고들 한다.
여행사가 이를 미리 가늠하는 이유는, 저가 상품으로 모집한 뒤 쇼핑과 옵션으로 수익을 내야 하는 하청업체들이 살아남기 위한 일종의 생존 전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수익을 제법 안겨줄 것 같은 팀에는 노련한 가이드를 붙여 더 많은 매출을 끌어올리도록 가속을 걸지만, 처음부터 지갑을 열지 않을 것이 뻔한 팀은 말 그대로 버린 셈 치고 실적이 없는 가이드에게 던져줘야 하기 때문이다.
한 패키지투어에서 전라도의 어떤 특산물로 유명한 시골 마을에서 온 열두 명의 여자들이 합류한 적이 있었다. 여자들만 열두 명이 한 팀을 이뤘다는 점도 낯설었지만, 친구라고 보기에도 애매할 만큼 나이대가 제각각이었다.
이 팀은 여행사에 꽤 큰 수익을 안겨줄 것으로 예상되는 ‘훌륭한 팀’이었기에, 여행사는 특별히 미니버스를 대절해 그들을 모셔왔다.
인천공항 미팅 테이블에서 인사를 나누는데, 그들 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
“우린 여행 많이 다녔어요. 절대 경우 없는 사람들 아니에요.”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도대체 이 상황에서 왜 이런 말을 하는 거지?’
사실 생각해 보면 딱히 무시한 것도 없었고, 인사를 나누고 샌딩팩에 들어 있는 서류 설명과 일반적인 탑승 절차만 안내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현지에서 만난 가이드에게까지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시골에서 왔다고 해서 특별히 무시한 적도 없었는데 말이다.
“우리 경우 없는 사람들 아니에요.”
이 말은 여행 내내 반복되었다.
도대체 어떤 자격지심이 이 문장을 바닥에 깔고 투어를 하게 만드는 걸까?
이들 무리는 거의 모든 옵션 투어에 참여하고, 쇼핑도 빠짐없이 하면서 가이드에게만큼은 패키지투어의 ‘암묵적인 룰’을 지킬 줄 아는, 결코 경우 없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었다.
이들의 돈잔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시내 면세점 쇼핑에서 펼쳐졌다.
선물하기 좋은 자잘한 명품을 파는 면세점에서 그들은 '선물할 게 필요하다'며 각종 명품들을 말 그대로 쓸어 담았다.
계산을 도와준다며 (사실은 커미션을 제대로 챙기기 위해) 카운터에 붙어 있던 가이드는 분주한 와중에도 입꼬리가 내려갈 틈이 없었다.
“우리 경우 없는 사람들 아니에요.”
그 말은 결국 ‘우린 제대로 돈 쓸 줄 아는 사람들이에요’라는 뜻으로 해석되었다.
어떤 모임이냐는 질문에는 끝내 답을 피했지만, 그들의 정체는 아마도 지역 유지급 인사들의 사모님 모임이었을 것이라 짐작할 수밖에 없었다.
투어 중 열심히 버스에서 멘트를 날렸지만, 반응이 없어 상심하고 있던 가이드가 나에게 뭔가를 그 원인을 알았다고 한다.
'충청도 손님들이 반 이상이었어'
믿을 수가 없지만 이런 지역색은 팀칼라에 큰 영향을 미친다.
서울·경기, 소위 부자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사는 지역 사람들이 여행지에서도 돈을 가장 많이 쓸까?
네버네버
집값이 비싼 동네에 사는 사람일수록, 그 집값을 감당하기 위해 하루하루를 더 빡빡하게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하는, 또 다른 의미의 서민인 셈이다.
반대로 집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그 지역에서 안정적인 수익원이 있다면 훨씬 여유로운 소비를 한다.
실제로 바닷가 지역 손님들은 소득 수준과 상관없이 ‘화끈하다’는 평가를 받는 경우도 많다.
서울·경기권에 ‘똘똘한 아파트 한 채’가 있느냐 없느냐로 부가 나뉘는 이 시대의 기준은 해외 여행지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적어도 전라도의 특산물로 돈을 벌어 지역에서 유지로 통하는 사모님들에게, 주변 사람들에게 뿌리는 여행 선물은 ‘구짜 스카프’, '구라다 지갑', '채널 액세서리' 정도는 기본이라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