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직전 이집트에서 만난 ‘찐 짠돌이’ 팀에 대한 기록
때는 2020년 2월 말.
1년 동안 숨 가쁘게 달려온 인솔자 생활의 1라운드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투어지는 이집트였다.
코로나라는 이름의 공포가 전 세계로 번져가던 시기
어느 나라에서든 단 한 명의 확진자 소식만 들려와도, 사람들은 앞다퉈 여행을 취소하곤 했다.
이 투어가 끝내 출발할 수 있었던 이유는 출발 직전까지도 ‘이집트’에는 공식적인 확진자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안한 사람들은 취소 수수료를 감수하고서라도 발걸음을 돌렸다.
반대로 취소 수수료가 아까웠던 사람들은 코로나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여행을 선택했고, 원래 멤버가 반토막 났지만 회사에서는 투어를 진행시킬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꾸려진 10여 명의 멤버와 함께 이집트로 떠나게 되었다.
이집트 가이드는 이집트대학에 재학 중인 다소 때가 덜 묻은 청년이었다.
어떻게든 옵션과 쇼핑을 팔아야 본인몫의 수익을 챙기는 가이드는 시종일관 울상이었다.
도저히 손님들이 옵션을 구매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과, 심지어 어찌어찌 성사된 하나의 투어조차 돈 아까운 옵션이라며 컴플레인이 난무하다는 것이었다.
코로나의 공포에도 불구하고 취소 수수료가 아까워 여행을 감행한 그야말로 '찐 짠돌이'들로 이뤄진 그룹이었던 것이었다.
이집트 일정은 야간기차를 타고 아스완으로 이동한 뒤 나일강 크루즈를 타고 올라오면서 주요 관광지를 투어하고 카이로로 가기 전에는 홍해의 휴양지 후루가다에서 하루를 보내는 구조였다.
며칠 동안 돌덩이 유적만 보다, 마지막에 리조트에서 느긋하게 쉬어가는, 꽤 그럴듯한 ‘완급 조절형’ 일정이었다.
여기에서 마지막 옵션투어인 사막투어가 있었지만, 그마저도 몇 신청하지 않아서 가이드는 그 투어를 깨버렸고 신청했던 사람들은 오히려 돈 굳었다며 좋아하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우리는 후루가다의 리조트에서 시간이 남아돌게 되었다.
굳이 사막 투어에 따라갈 필요가 없어진 나로서도 나쁘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곳은 올 인클루시브 리조트였다.
수영을 하고 지치면 수영장 안에 설치된 바에 앉아 칵테일과 위스키, 맥주를 마음껏 마실 수 있었다.
리조트 안의 각종 레스토랑과 수영장에서 손님들은 자리를 잡고 각종 술과 음식을 즐기고 있었다.
나는 그 장면이 조금 의외였다.
이 팀의 사람들은 그동안 술을 거의 마시지 않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안 마신다’기보다는 ‘돈 내고는 안 마신다’에 가까웠다.
어떤 식당에서는 누군가가 맥주를 주문해 놓고 계산하지 않은 채 나가려다, 직원에게 붙잡혀 다시 불려 온 적도 있었다.
호텔 미니바에서 맥주 한 캔을 꺼내 마시고 신고하지 않고 도망치려다 버스 출발 직전에 호텔 측에 적발되어 술값을 내게 된 일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었다.
공식적으로 주문하는 술에는 한없이 인색하면서도, 계산할 필요가 없는 술 앞에서는 누구보다 솔직해지는 사람들.
그런 그들 앞에 ‘무제한 공짜 술’이 놓였으니, 이 리조트는 그야말로 천국이었을 것이다.
그러던 중, 가이드에게서 메시지가 하나 도착했다.
'선생님, 저 그냥 이 팀 포기하고 그냥 돈 쓰며 놀래요. 여기 마사지랑 랍스터 디너가 좋다 해서 선생님도 원하시면 같이 예약해 놓을까요?'
일비를 받는 인솔자로서는 꽤 과한 제안이었지만, 나에게도 이 여행이 ‘마지막 투어’라는 느낌이 유난히 강하게 와닿던 때여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렇게 우리는 마사지를 받고, 손바닥만 한 랍스터를 들고 서로 사진을 찍고, 화이트와인 한 병까지 비우며 그동안의 피로와 스트레스를 몽땅 흘려보냈다.
짠돌이들의 천국 한가운데서 그날만큼은 우리 둘만 보란 듯이 다른 세계를 살았다.
다음날
카이로로 출발하기 위해 손님들의 짐을 실으려는데 기사가 낑낑 거리며 짐을 제대로 못 드는 상황이 목격되었다.
그걸 도와주려는 힘 좋은 젊은 가이드조차 짐을 제대로 못 드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제야 머릿속에 번개처럼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이곳은 올인크루시브 호텔
호텔 냉장고엔 각종 술과 음료수가 꽉 차 있었고, 이 모든 것이 공짜
그리고 추가 주문까지 가능했다.
이들은 모든 술과 음료수, 심지어 물까지 가방 빈틈에 빼곡히 박아 온 것이었다.
하..
왜 이 모든 부끄러움은 나의 몫인 것일까?
이건 짐이 아니라 뻔뻔함의 무게였다.
버스 짐칸으로 힘겹게 올라갈 때마다 대한민국 양심을 대표하는 듯한 내 자존감도 함께 끼익 소리를 내며 눌려 들어갔다.
코로나로 멈춰 있던 2년여의 시간이 흐르고 그 뒤로도 수많은 팀을 만났지만 이처럼 전원이 한마음 한뜻으로 ‘거지근성’에 똘똘 뭉친 팀은 지금까지도 이 팀이 유일무이하다.
코로나의 공포 앞에서 취소 수수료쯤은 미련 없이 버린 사람들은 먼저 팀을 떠났고, 돈이 아까워 위험을 감수한 사람들만 남아 만들어 낸, 말 그대로 우연과 계산이 빚어낸 기묘한 조합이 빚어낸 진풍경이었다.
예전에 한 가이드가 쓴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옵션과 쇼핑, 인두세와 수익 구조를 설명하며
'옵션과 쇼핑이 전부 꽝인 팀은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다'라는 문장으로 마무리했다.
그렇다면 옵션이 단 한 건만 성사된 이 팀은 오십 년에 한 번쯤 등장하는 희귀한 사건이었을까?
어쨌든 나는 그 진귀한 풍경을 직접 목격한 사람이 되었다.
결국 거의 자원봉사에 가까운 투어를 마친 그 가이드는 다시 학생의 자리로 돌아갔을 것이다.
그 후 무사히 졸업했을지,
다시 가이드 일을 하고 있을지,
아니면 아랍어를 무기로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을지.
가끔 그때 그 리조트에서 보냈던 하루와 함께 그의 근황이 문득 떠오른다.
그리고 손님들..
그 사람들이 그 여행에서 무엇을 얻었을지 생각해 본다.
그들은 피라미드보다 값비싼 옵션을 피했고
신전보다 비싼 맥주를 경계했으며
사막보다 더 넓은 무료의 틈을 찾아다녔다.
아마도 그들이 배운 것은
‘세상은 공짜를 찾아내는 사람이 진정한 승리자’는 사실이었을 것이다.
위험한 시대에 여행을 떠났고, 그 안에서도 끝까지 돈을 지켜냈다는 기억은 그들 나름의 작은 승리였을지 모른다.
지인들에게 이집트여행을 설명할 때, 이집트에서 뭘 보고 느꼈느냐가 아니라
'내가 세상에, 코로나 직전에 단돈 얼마로 이집트 다녀 왔잖어'라고 떠벌릴 사람들..
여행이 사람을 바꾸지는 않지만,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끝내 드러내 놓는다.
후루가다의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나는 그 사실을 유난히 또렷하게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