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공항에서 시작된 남미 투어의 균열
남미 투어에 배정되었다.
남미는 처음이었지만 이미 인솔의 최고봉이라는 동유럽/발칸 가이드까지 섭렵했고, 각 구간마다 한국인 가이드가 나오는지라 단순 인솔만 하면 된다고 들어서 남미 정도야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을듯 했다.
인솔자의 길로 들어선 이상 내친 김에 남미까지 정복해 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주변 선배님들은 남미는 '인솔자의 무덤'이라며 우려를 표했지만, 전문으로 일하던 동유럽/발칸 비수기에 들어서 일을 할 수 없었고, 집에서 노느니 남미나 다녀오자는 것이었다.
그때의 나는 이미 인솔자의 달인쯤은 된 것처럼 조금은 기고만장해 있었다.
여행사에서 대표님과 미팅을 하며 상품 설명을 듣는 동안, 생각보다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거대한 남미를 이동하기 위한 수단이 거의 전 일정 항공 이동이었기 때문이다.
한 번의 항공 이동만으로도 매순간 긴장의 연속인데, 이주가 넘는 기간 동안 거의 매일 비행기를 타야 한다니..
그제야 이 여행이 결코 만만하지 않겠다는 현실감이 밀려왔다.
이 상품은 거대한 남미 대륙의 핵심 지역만을 빠르게 훑고 지나가는 데 특화된 여행상품이었다.
보통은 최소 25일 정도는 되어야 변수에 크게 흔들리지 않고 남미를 제대로 돌아볼 수 있는데, 이 상품은 단 2주 일정이었다.
2주라는 시간은 단 한 번의 항공 결항이나 지연조차 허용되지 않는 구조였고, 일정 전체가 그야말로 빈틈없이, 빡빡하게 맞물려 돌아가야만 그나마 제대로 진행되는 패키지 투어였다.
첫 비행 일정은 아시아나항공을 타고 LA를 경유해 페루 리마로 향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길고도 예측할 수 없는 남미 여행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손님들보다 먼저 공항에 도착해 티켓팅을 진행했는데, 분명 인천–LA, LA–리마 두 장의 항공권이 모두 발권되어야 하는 상황에서 LA발 리마행 라탐항공 티켓이 나오지 않았다.
직원의 설명으로는 아시아나항공과 라탐항공이 같은 스타얼라이언스 소속이 아니라 연계 발권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사정을 설명하고 따져 물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일이었고, 환승 시간이 2시간 40분이라면 큰 지연만 없다면 충분히 가능하겠지 싶었던 그 판단이, 지금 생각하면 모든 일의 화근이었다.
그렇게 LA 공항에 도착했다.
환승에 대한 불안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비행기가 오히려 예정 시간보다 일찍 도착하면서 잠시나마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미국 공항에서의 환승 시스템은 생각보다 훨씬 까다롭다.
다른 나라 공항처럼 단순히 게이트에서 게이트로 이동하면 되는 구조가 아니라, 미국은 환승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입국 심사를 거쳐야 하고 수하물을 직접 찾아 다시 부쳐야 한다.
게다가 인천공항에서 리마행 티켓팅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LA 공항에 도착한 후에는 라탐항공 카운터로 이동해 체크인까지 모두 완료해야만 페루 리마로 향하는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LA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마주한 것은 족히 1킬로미터는 되어 보이는 입국 심사 줄이었다.
줄은 여러 겹으로 굽이치며 끝이 보이지 않게 이어져 있었고, 함께 줄을 서 있던 손님들은 “이거 비행기 탈 수 있는 거 맞나요?”라며 불안을 감추지 못했다.
사실 나 역시 겁이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솔자로서 의연한 척, 괜찮을 거라며 손님들을 안심시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설마 비행기를 탈 수 없는 일정으로 상품을 짰을 리 없다는, 근거 없는 믿음 같은 것도 마음 한편에 자리하고 있었다.
어쨌든 한 시간가량을 기다린 끝에 우리 팀의 차례가 되었고, 입국 심사를 마치자마자 짐을 챙겨 들고 손님들과 함께 거의 뛰다시피 라탐항공 카운터를 향해 달려갔다.
그 와중에 한 손님에게서 톡이 왔다.
‘저 어떡해요. 무슨 문제가 있는지 기다리라고 하네요.’
이 와중에 또 문제라니, 이건 또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다.
일단 다른 손님들에게는 체크인을 마치고 게이트로 먼저 가 달라고 당부해 두고, 혹시라도 도와줄 방법이 없을까 싶어 다시 발걸음을 돌리던 중, 먼저 이동했던 손님들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비행기 못 탄다네요. 이쪽으로 와주셔야겠어요.”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비행기 출발까지 아직 한 시간이 남아 있는 상황이었고, 내 계산으로는 탑승을 거부당할 이유가 조금도 없어 보였다.
카운터로 달려가 직접 상황을 확인해 보니, 이미 체크인이 클로즈되어 더 이상 탑승이 불가능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 순간, 흔히들 말하는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카운터에 매달려 직원들에게 플리즈를 수백 번 외치며 애걸복걸하자, 일곱 명 정도는 가능할 것 같다며 일단 여권을 달라고 했다.
그 말에 손님들이 앞다퉈 여권을 내미는 소동까지 벌어졌지만, 잠시 뒤 돌아온 답은 결국 모두 불가였다.
믿을 수 없는 일이 눈앞에서 벌어졌지만,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해결책을 강구하는 수 밖에 없었다.
LA 공항에서 리마로 향하는 비행기를 놓친, 최악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누구에게 연락해야 하지?
눈앞이 깜깜해졌지만, 인솔자로서 여기서 무너질 수는 없었다.
정신을 다잡고, 어떻게든 해결해야만 했다.
그날 LA 공항에서, 내 인솔 인생은 완전히 다른 국면으로 넘어갔다.
그때는 몰랐다.
그 비행기를 놓친 일이, 남미보다 더 긴 시간을 나에게 남길 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