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투어 현장에서 벌어진 ‘접시 가격 사건’의 기억

그날 이후 우리는 서로를 피해 다녀야 했다

by ANNA

한국에서는 옷만 겨우 빨아 말리고 다시 스페인으로 날아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스페인 가이드들 역시 인솔자와 다를 바 없이, 집에서 하루 이틀 숨만 돌리고 다시 투어 현장으로 투입되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니 안면을 튼 인솔자와 가이드들은 결국 어디선가 다시 마주치게 된다.
패키지 투어 특성상 같은 도시, 같은 일정, 비슷한 시간대.
피할 수 없는 재회였다.


그중 특별히 친해진 가이드들이 있으면 서로의 일정을 공유해 가며 만날 날을 학수고대하기도 한다.
때로는 그 만남을 위해 스페인에서는 구하기 힘든 것들을 한국에서 챙겨 오기도 하는데, 그중에서도 최고 난이도는 단연 김치였다.

캔에 든 김치가 아니라, ‘제대로 담근’ 김치.


정열의 나라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후덥지근한 날씨 속에서 김치를 운반하는 일은 극도의 눈치와 인내 없이는 불가능했다.
냉장고 있는 호텔을 만나는 일은 드물었고, 매일같이 호텔을 옮겨 다니는 일정 속에서 캐리어 틈새로 새어 나오는 오묘한 냄새는 배달이 끝날 때까지 나를 끊임없이 긴장하게 만들며 나도 모르게 기사와 손님들의 눈치를 살피게 된다.




기분 좋은 날이었다.
세비야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이드와 일정이 맞아 만나기로 한 날이었고, 온갖 역경을 딛고 공수해 온 김치를 드디어 내 손에서 내려놓을 수 있는 날이기도 했다.

가이드는 힘들다며 굳이 가져오지 말라고 했지만, 그만큼 애정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나는 꼭 한국에서 담근 오리지날 김치를 주고 싶었다.


그날의 동선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세비야를 거쳐 론다를 찍고, 그라나다에서 만나기로 합의된 상태였다.

손님들을 데리고 세비야 스페인 광장으로 향하던 중 마주 오던 길에서 그 가이드를 만났다.
서로 반가움만 짧게 나눈 채 '이따 저녁에 보자'는 말로 다시 헤어졌다.
괜히 마음이 한 번 더 가벼워졌다.


하지만 우연인지, 불행인지 그 팀과는 중식 식당에서 또 마주쳤다.

중식은 점심이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이 집은 정말 ‘중식당’이었다.
세비야 대성당에서 멀지 않고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각종 바비큐를 무제한으로 구워 먹을 수 있는 곳.
그래서 세비야에 들르는 한국인 단체라면 거의 빠지지 않고 들르는 식당이기도 했다.

당연히 붐볐다.
미어터진다는 표현이 맞겠다.


줄을 꽤 서야 하는 곳이라 가이드들 사이에는 이 식당에서 최대한 효율적으로 식사하는 방법이 공유돼 있지만 대부분의 팀이 같은 방법을 쓰기 때문에 결국 큰 효과는 없다.

그날도 여러 팀의 식사 시간이 겹쳤고, 웍은 말 그대로 인산인해였다.

당연히 내 절친 가이드의 팀도 그 안에 있었다.


이 중국집에서는 늘 그렇듯 가이드와 인솔자에게는 신라면을 끓여준다.
손님들은 줄을 서서 바비큐를 굽느라 아우성이었고, 나는 내 몫의 고기를 미리 줄에 올려두고 가이드와 마주 앉아 히히낙낙 느긋하게 라면을 먹고 있었다.

그때였다.

쨍하는 소리와 함께 접시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소란스럽던 웍 전체가 마치 동영상이 일시정지된 것처럼 순간 멈췄다.

정적을 깬 건 두 명의 아이였다.

줄을 서던 중 누군가 새치기하여 시비가 붙던 중 다른 팀의 고등학생이 우리 팀 중학생의 머리를 접시로 가격했고, 머리를 맞은 우리 팀 중학생은 포크를 집어 들고 '죽이겠다'라고 소리치며 덤벼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사람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둘을 떼어놓았지만, 욕설과 죽이겠다는 분노는 멈추지 않았다.

결국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조금 먼저 식사를 마친 내 절친 가이드 팀이 서둘러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다.




하,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세비야 대성당을 시작으로 론다, 그라나다까지 이후의 모든 일정이 겹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라나다에서 끝이 아니었다.

톨레도를 거쳐 마드리드 아웃까지.
말 그대로 완전히 같은 일정으로 진행되었다.


하필, 그 팀이었다.

이런 경우라면 좋아 죽어야 하는데, 우리는 서로에게 위치를 공유하며 최대한 마주치지 모든 동선을 계산해야 하는 희극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나 어쩌겠나?

북한도 무서워 못 쳐들어온다는 사춘기 소년들이 다시 붙으면 살인사건이 일어날 판인걸




그렇게 우리는 실시간 채팅으로 서로의 위치를 공유하며 숨 막히는 ‘007 작전’을 수행하듯 피해 다녔고, 길고 긴 하루를 지나 마침내 그라나다에 도착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그라나다가 집인 그 가이드를 위해 마침내 김치 전달식을 해야 하는데, 너무 지쳐버린 가이드가 그날은 도저히 못 만나겠다고 한 것이었다.

이 일은 또 어쩌나?

김치를 버린다고 난리를 쳐서 결국 겨우 호텔로 불러냈다.

조금 진정된 가이드는 '밥이나 먹자'라고 했고 호텔 레스토랑에서 말수는 줄고, 피로만 남은 식사를 했다.


이후 마드리드까지 우리는 계속해서 007 작전을 이어갔고, 다행히 두 아이가 다시 마주치는 일은 피할 수 있었다.

또 다른 문제는 이후 이어지는 투어 중 계속 발생되었다.
우리 팀 부모들이 끝까지 나에게
'그쪽 아이에게 사과를 받아야 하지 않느냐'라고 요구했던 것이다.

자기 자식이 접시로 머리를 맞아 깨질뻔한 부모마음은 잘 안다.

하지만 절대 마주치지 말아야 할 상황에서 그 부모는 끝까지 상대팀 고딩을 만나고자 했고 나는 점점 더 지쳐갔다.




그날 상황을 곱씹어 보면 혼잡한 식당에서 새치기 문제로 시비가 붙었고, 상대팀 고딩이 우리 팀 중딩의 머리를 접시로 찍었고, 중딩은 포크를 들고 '죽이겠다'라고 덤빈 것이었다.

누가 더 잘못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다친 사람은 없었고, 일이 더 커지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더 복잡했던 건 대학생 형과 고등학생만 투어에 참여한 상태라 그 팀에는 보호자가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나도 사춘기 자식을 다 겪어봤기에 단언할 수 있다.

사춘기 아이들과의 여행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순간의 감정이 폭발하면 누가, 언제, 어떤 식으로 사고를 낼지 알 수 없다.


여행은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야 하기에 사춘기 아이들과의 여행은 조금 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좋은 의도만으로는 모든 상황을 감당할 수 없기에 사춘기와 여행은 생각보다 아주 위험한 조합이기 때문이다.





애정하는 가이드와 같은 일정으로 함께 움직이는 기적 같은 여행은 그 이후로 다시는 없었다.

마치 우리의 우정을 시샘이라도 하듯 그날 이른바 ‘접시 박살 사건’이 일어났고 여행은 그 이후 현실보다 더 가혹하게 진행되었다.


시간이 흘렀다.
7년이 지났고, 우리는 여전히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그날의 일은 상처가 아니라 이제는 웃으며 꺼내놓을 수 있는 훌륭한 안주거리가 되었다.


함께 겪은 일이 관계를 갈라놓기도 하지만, 어떤 날들은 오히려 사람 사이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

그날의 스페인은 아수라장이었고 여행은 쉽지 않았지만 우정만큼은 보란 듯이 살아남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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