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거림을 간직하기 위해 계속 초짜로 남아 있었던 인솔자의 선택
처음 인솔자 교육을 받을 때 담당자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강조했던 말이 하나 있었다.
“절대 초짜 티를 내서는 안 된다.”
일을 했던 회사는 소위 말하는 스페인에 본사가 있는 랜드사였다.
대형 여행사의 스페인·포르투갈 상품을 담당하고, 한국에서는 서울에 있는 사무실이 인솔자와 각종 지원을 맡는 구조로 운영되는 방식이었다.
대형 여행사 홈페이지에서 상품 소개란을 보면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문구가 있는데,
바로 '전문 인솔자 대동'
가이드의 주도로 패키지 투어가 진행되는 스페인 투어 특성상, 인솔자는 실질적으로 단순 보조 역할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다.
일정의 중심에 서지도 않고, 설명의 주도권도 없고, 그저 일비를 받는 ‘옆사람’이 되기 십상이었다.
그러니 냉정하게 말해 ‘전문 인솔자’가 될 수 있는 구조는 아니었다.
특별한 기술이나 숙련이 요구되지 않았기에 여행업 병아리들을 모아 교육시키고 현장에 내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품 설명에 ‘초짜 인솔자 대동’이라고 적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니었을까?
여기서 손님들의 심리는 또 묘하게 작동한다.
‘전문’이라는 단어 하나만 붙어도 왠지 노련한 사람이 능숙하게 이끌어줄 것 같은 기대를 하게 된다.
반대로 인솔자나 가이드가 초짜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여행의 질과는 상관없이 괜히 손해 본 기분이 들기도 한다.
실제로 손해를 본 건 아니지만, 기분이라는 건 원래 그렇게 논리보다 먼저 반응하니까.
일 자체는 단순한 편이었다.
하지만 단지 ‘초짜 티’를 내지 않기 위해, 그 단순한 일을 해내기 위해, 정말 말 그대로 박 터지게 공부해야 했다.
가장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은 바로 동기 인솔자들의 단톡방이었다.
함께 면접을 보고 합격했던 십여 명의 동기들 중 인솔 경험이 있던 사람은 딱 한 명뿐이었고, 나머지는 대부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었다.
막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증을 따고 인솔자에 도전한 나 같은 사람들, 스페인어를 전공했다는 이유 하나로 막연하게 인솔업에 발을 들인 사람들, 여행사에서 OP 업무를 보다가 현장으로 넘어온 사람, 외식업 매니저를 하다가 커리어를 바꾼 사람까지.
배경은 제각각이었지만 공통점은 하나였다.
그야말로 여행업 ‘쌩초보’라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다들 불안한 마음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단톡방을 만들었고, 서로의 경험담과 정보를 거의 생명줄처럼 의지하게 되었다.
아무리 일정표를 외우다시피 반복해서 봐도, 현지 패키지 투어를 실제로 진행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부분들이 꼭 생기고 손님들이 그런 질문을 던질 때가 가장 당황스러웠다.
모른다고 하면 안 된다.
절대 초짜 티를 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일단 가장 그럴듯한 답변을 내놓은 뒤, 슬쩍 자리를 피해 동기들 단톡방이나 가이드에게 확인 자문을 구한다.
그리고 만약 그 답변이 틀렸다는 사실이 밝혀질 경우, 다시 전화를 걸어
“아우, 이게 그새 바뀌었네요. 호호호” 같은 말을 덧붙이며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능청스럽게 연기를 해야 한다.
그 순간만큼은 인솔자가 아니라 거의 배우에 가까웠다.
길치인 나에게 가장 당황스러운 순간은 새로운 공항 환승이나 식당 자리 배정을 위해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식당을 가이드의 도움 없이 찾아가야 할 때였다.
아무리 공항 배치도를 머릿속에 그려 넣고, 식당 위치를 지도로 수십 번 들여다보며 눈에 익혀도 막상 그 자리에 서는 순간 사방이 깜깜해지는 듯한 아찔함이 밀려온다.
직접 가이드 역할까지 겸해야 하는 날 새로운 식당을 찾아가야 하는 상황에서 구글맵마저 먹통이 되거나 엉뚱한 골목으로 안내라도 하면 온몸에 식은땀이 맺힐 정도였다.
왜냐하면 그 순간의 나는, 이곳을 수십 차례 드나들었고 이 상품을 수십 번이나 진행해 본 베테랑 가이드처럼 보여야 했기 때문이다.
길을 헤매는 모습은 허용되지 않았다.
멈칫하는 눈빛 하나, 휴대폰을 내려다보는 각도 하나까지도 모두 ‘초짜 티’가 될 수 있었으니까.
일이 편하려면 차라리 한 군데만 파서 그 지역의 진짜 전문 인솔자가 되는 편이 낫다.
하지만 여행을 좋아해서 인솔을 업으로 택한 나 같은 사람에게, 한 곳만 주구장창 다닌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2019년, 인솔을 시작한 첫해.
스페인과 포르투갈만 스무 번이 넘도록 오가며 나는 어느새 진짜 ‘스페인·포르투갈 전문 인솔자’가 되어 있었다.
남들은 평생 한 번 가보는 게 소원이라는 사그라다 파밀리아에도 스무 번 넘게 입장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그 걸작이 점점 시큰둥해지기 시작했다.
감동은 사라지고 동선만 남았다.
직업의 저주였다.
그럼에도 그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건, 그런 반복의 시간 덕분에 인솔업의 기본을 몸으로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내 꿈대로 전 세계를 여행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코로나 이후 산티아고 순례길을 시작으로, 전 세계를 하나씩 커버하며 소위 말하는 ‘세계여행하며 돈 버는 삶’을 살게 되었다.
그때의 나는 그 모든 시작이 스페인과 포르투갈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새로운 지역에 도전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매 순간 수많은 변수와 예상치 못한 도전에 부딪혀야 했다.
지역의 문제만도 아니었다.
풀패키지 투어, 세미패키지 투어, 크루즈 투어, 트레킹 투어까지..
존재하는 거의 모든 형태의 여행을 인솔해 보았고, 그 과정에서 나는 늘 도전했고, 부딪혔고, 종종 깨져야 했다.
그 결과 업력은 쌓여 갔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계속 초짜 인솔자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한 지역만 편하게 반복했다면 지금쯤은 여유 있게 그 지역의 전문 인솔자로 일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 수많은 경험이 차곡차곡 쌓여, 지금 내가 여행업을 운영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난 아직도 긴장되면서도 가슴 두근거리게 되는 초짜 상태가 좋다.
그리고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아무리 초짜가 전문가인 척을 해도, 손님들은 다 안다는 것이다.
이 자리를 빌려, 서툰 아는 척으로 현장을 버텨내던 귀여운 병아리를 모른 척 눈감아 주었던 그 많은 손님들께 조용히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