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끼다 똥 될 뻔
요즘 혼술 거의 안 한다.
다이어트, 건강상 이유, 멀쩡한 정신으로 할 일도 많고 기타 등등
그런데 집에서 종일 노트북만 들여다보는 늘 그렇고 그런 날
7시 정도면 미치도록 술이 고픈 것이다.
술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는 술의 유혹보다 더 강력한 '귀차니즘'이다.
집에 술을 쟁여놓지 않는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라 술을 마시기 위해서는 편의점으로 출동해야 하기 때문
우리 집 복도 한켠에는 장식장이 있는데 딱히 장식할 게 없어, 여기저기서 얻은 독주들만 빼곡히 진열해 놨다.
독주가 내 취향이 아니라 이것도 다행이라면 다행
이날은 술 마시고픈 욕구가 그 어느 날 보다 강력했는지, 할 일 없이 술 진열장 앞을 어슬렁거리다 내 눈에 띈 바로 이것
복숭아맛 짐빔이다.
작년 크루즈를 타고 들렀던 일본 기항지에서 가장 공을 들였던 건 마트 털기였다.
함께 했던 스텝들이 트렌드에 빠삭한 MZ세대들이 대부분이었다.
일본에서 '어멋! 이건 꼭 사야 해'
이런 이모티콘이 자동 재생되는 각종 쇼핑 필수품들을 딱히 고심하지 않아도 알게 되니 난 그저 어버버 쫓아다니며 카트에 주워 담기만 했었고 복숭아맛 짐빔도 그중 하나였다.
하이볼 열풍이 거세게 불고 있었던 그 해
한국에서도 흔하게 구할 수 있는 일반 짐빔보다 일본에서만 구입할 수 있다는 복숭아맛 짐빔을 무족권 득템해야 한대서 가져오긴 했는데 하이볼이 취향이 아니라 진열장에만 전시해 놓고 방치해 뒀던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웬일인가?
복숭아맛 짐빔이 언더락으로 딱 두 잔 분량밖에 남지 않았다.
남편이나 얘들이 홀짝홀짝 마신 결과겠지만 난 맛도 못 봤다는 사실에 갑작스러운 억울함이 밀려왔다.
작년 여름
이거 한병, 구보타주 한병 기타 등등 각종 잡술 들
혹시 세관 걸릴까 봐 노심초사하던 기억
술병으로 가득 찬 캐리어 그 무거운 거 끌고 크루즈에서 내리고 다시 기차 타고 서울역 와서 파주 자택까지 옮기던 힘들었던 기억
일본 보따리상에 빙의되어 갑자가 울컥해지며, 내 오늘 이것을 꼭 마시리라 다짐했고, 다 비웠고, 이렇게 일본 크루즈의 기억 하나도 비웠다.
ps. 별 맛없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