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 몇 개월이에요?

그렇게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by 서윤


처음 해보는 육아였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새로운 무언가를 할 때, 배움 없이 이렇게 막무가내로 맞닥뜨려본 적이 있었던가? 초등 입학식 날엔 앞으로의 행복한 학교 생활을 위한 지침을 배웠고,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 물어볼 수 있는 담임 선생님이 계셨다. 회사원이 되었을 때에도 신입 사원 연수를 받으며 머리로 먼저 익힌 뒤, 실무에 적응하기까지 선배로부터 일대일 지도를 받는 시스템이 있었고, 처음 운동을 할 때도 PT선생님이 계셨는데... 아이가 태어남과 동시에 바로 엄마가 되었다. 엄마 양성 OJT 도 없이 맨 땅에 헤딩하듯 바로 실전 투입.


아주 맨 땅은 아니었다고 해야 하나. 임신 때 사 두었던 ‘임신, 출산, 육아 대백과’와 출산 선물로 받은 ‘삐뽀삐뽀 119 소아과‘ 책이 헤딩할 때 아프지 말라고 얇은 매트 한 겹 정도의 역할은 해 준 것 같다. 늘 똑같지만은 않던, 그때그때 미묘하게 다른 듯한 아이의 울음소리가 분명 나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같은데, 알아챌 도리가 없었으니 나도 답답, 너도 답답하던 때였다. 그렇게 몸소 헤딩을 하며 터득한 아이와의 의사소통은 하루하루 발전을 했다. 졸린 상태와 배고픈 상태가 아이의 눈빛과 울음소리로 어느 순간 구분이 가능해졌으니 말이다.

아이가 징징거리려고 시동을 걸려하는 바로 그때, 재빨리 눈빛을 확인한다. 예외 없이 아이의 초점이 흐려지려 한다. 그럴 때 재빠르게 유모차에 태워 최대한 지체 없이 밖으로 나온다. 이것이 아이를 품에 안고 집 안 곳곳을 배회하는 것보다 훨씬 더 편하게 낮잠을 재우는 꿀팁이라는 것도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통해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매일 비슷한 시간에, 최대한 편하게 낮잠을 재우기 위해 아파트 주변을 산책하다 보니 나와 비슷한 처지로 보이는, 유모차를 미는 아기 엄마들-일명 유모차 부대-이 꽤 눈에 들어왔다. 유모차에 곤히 잠든 아기를 흘낏 보니 우리 아이 월령대와 비슷해 보인다. 말을 걸까 말까 뭐라고 말을 걸어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애기, 몇 개월이에요?


먼저 물어온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그렇게 시작된 동네 엄마들과 친구가 되는 과정. 그녀가 무슨 일을 하는지, 나이는 몇 살인지, 고향은 어디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심지어 이름은 무엇인지는 전혀 관심 분야가 아니다. 그녀가 밀고 있는 유모차의 그 아기는 몇 개월인지가 유일한 관심사였다. 우리 아이와 비슷한 월령이라면, 물어보고 싶은 게 많으니까.


우리 애 3개월일 때 그렇게 만난 2개월, 7개월 아이를 둔 육아 동지 친구들은 어느덧 14년이란 세월을 아이들의 성장과 함께 해 온 동네 친구가 되었다. 나도, 그녀들도 난생처음인 육아라는 길을 함께 의지하며 걸어온 소중한 인연이다. 아이들이 커 가는 발달 과정을 함께 겪으며 시시콜콜한 고민거리를 물어볼 수 있었고, 아 우리 애만 그런 게 아니구나 하며 안심할 수 있었다. OJT도 없이 어려운 프로젝트를 혼자 맡게 되었는데, 든든한 지도선배를 만난 기분이랄까.


잠깐 한눈을 파는 사이에도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영유아기 아기를 키우는 엄마도 끼니때가 되면 식사는 해야 하고, 화장실도 다녀와야 한다. 그야말로 몸이 세 개 정도 되어야 하는 그때, 우리는 종종 아니 자주 한 집에 모여서 아이들을 지켜보는 일과, 끼니를 준비하는 일을 분담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그렇게 모여서 최근에 아이의 변화된 수면 습관이라던가, 아기에게 잘 먹힌 성공한 이유식 레시피 등에 대해 수다를 나누었다.

대화를 주고받을 수 없는 아이와 하루 종일 집에 있을 때면 주로 나 혼자 일방적으로 아이에게 떠들다가 가끔, 그나마 유일한 친구인 라디오 DJ의 멘트에 격하게 공감하는 한 마디를 내뱉는 것이 대화 아닌 대화의 전부였다. 비록 상대방은 들을 수 없는 대답이었다 할지라도. 그러다가 오랜만에 모이는 날이면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있었고, 말이 통하는 어른과 소통도 할 수 있었으니, 그런 날엔 하루가 2배속으로 흘러가는 듯이 느껴졌다. 그때 육아로 답답했던 숨통이 조금씩 트였던 것 같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의 힘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OJT도 없이 시작되는, 누구나 처음 해 보는 육아의 길에서 함께 걷는 동료가 있다는 건 나에게 크나큰 힘이 되었다. 요즘엔 물론 스마트 폰만 열면 연결되는 맘카페의 수많은 육아 동지들의 넘쳐나는 정보가 있고, 온라인 소통도 매우 도움이 된다. 하지만 동네에서 만난 또래 엄마들과의 연결이 없었다면, 숨통을 틔워줄 그 만남이 없었다면, 나는 아이의 작은 행동에도 걱정이 앞섰을 거고 불안했을 것 같다. 나의 좁은 식견만으로 한 아이를 키우기엔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함께 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고 안심되었다.

처음 하는 육아라 긴장해서 마음이 닫혀있던 나에게 “애기 몇 개월이에요?” 하며 말을 걸어 주었던 친구에게 새삼 고맙다.



사진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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