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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nina Jun 30. 2020

햇살은 언제나 나를 응원하고 있다

입사지원서를 제출하며

쨍하고 깨끗한 햇살이 집안 곳곳을 훑어대는 것 같은 날이 있다. 오늘 우리 집을 찾은 햇살이 유달리 부지런해 보인다. 급기야 지난 며칠 비가 내리는 동안 (몇 장 짜리 입사지원서와 씨름하며) 훔치지 않은 먼지와 고이 모셔둔 빨래 더미를 찾아내 나를 나무라는 것 같다.


'어린애 키우는 엄만데, 먼지 쌓인 것 좀 보시게. 요즘처럼 습할 때 빨래를 저리 쌓아 두면 어쩌시나.

 그래서 입사지원서는 잘 썼는가?'


'...... 그게, 저... 아니요.'


해가 뜬 날은 좋다. 하지만 환한 햇살 아래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지저분한 집안꼴을 마주할 땐 나 스스로 찔려 마음이 불편해지기도 한다. 오늘은 청소랑 빨래도 제대로 안 하면서 씨름했던 입사지원서까지 보태어 나를 찔러댄다. 화장대 앞에서 아들 녀석 키에 맞는 작은 의자에 쭈그려 앉아 턱을 괴고 한참 앉아 있다 거울을 봤다. 언제부터인가 해가 쨍할 때 거울 보면 얼굴 잡티, 부스스한 머리, 울룩불룩해진 몸까지- 못난 모습만 어찌 그리 잘 보이는지. 거울도 괜히 봤다며 구부정하게 앉아있던 몸을 일으켜 따뜻한 물 한잔 끓여 '전송완료'된 나의 입사지원서를 다시 한번 봤다.


직업상담사 자격으로 10여 년간 일을 하며 매년 1천~2천여 명의 구직자를 만나고 상담하고 이력서 클리닉도 했다. 하지만 내가 구직자가 되어 마주한 '입사지원서'양식의 빈칸 하나하나는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나를 채용해 주세요'라는 메시지를 '몇 장에 걸쳐 구체적인 근거로 제시해야 하는 입사지원서'. 

영화 <미스 리틀 선샤인> 한 장면
자기소개서 잘 쓰는 방법

첫째, 내가 어떤 사람이며 무엇을 할 수 있고 어떻게 살기를 바라는지 거짓 없이 그리고 명확하게 요약합니다.

둘째, 자기소개서는 글쓴이가 읽는 사람들 자신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도록 써야 합니다. 읽는 사람이 중요하고 의미 있다고 느낄 만한 사실을 중심으로 써야 한다는 것이죠. 그러려면 철저하게 읽는 사람에게 감정을 이입해서 자기 인생을 요약해야 합니다. 기업 인사담당자들은 회사의 생존과 발전에 도움이 될 만하 사람을 선택합니다. 업종, 시장 상황, 경영자의 철학, 조직 문화, 직종에 따라 기업이 원하는 사람의 특성은 기업마다 다릅니다. 따라서 자기소개서를 쓸 때는 내가 그 조직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기능, 경력, 인간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도드라지게 강조해야 합니다. 읽는 사람의 관점에서 나의 인생을 발췌 요약하는 거죠,

* 유시민 글, 정훈이 만화, 『표현의 기술』, ㈜도서출판 아름다운 사람들, 2016, p.105~p127

입사지원서에 한 줄 혹은 몇 장에 들어가는 나의 지난 10여 년은 최선을 다한 시간이었다. 그래도 적어 놓고 보면 별 거 아닌 경력 같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 것만 같기도 하다.

'면접 전형까지 못 갈 것 같은데 부끄럽기만 한 서류 그냥 내지 말까' 하고 낙담하기도 한다.


'이 몇 장으로 나를 어떻게 판단해!' 하다가도

'이 몇 장도 제대로 못 채우면서 어떻게 나를 뽑아달라고 하겠니' 한다.


쓰다 말다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덧 마감기한이 다가왔다. 


'전송완료!'


부족하고 부끄럽고 비굴하고 비참한 기분도 들지만, 이 감정들은 열심히 작성한 과정의 감정으로 두겠다.


도망칠 곳 없이 모든 곳을 비추는 해가 난 날. 구석구석 어디든 가닿는 햇살. 이런 날은 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느낌이 불편하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이 햇살은 내가 어딜 가든 쫓아오고 내가 어디에 숨으려 해도 결코 나를 포기하지 않는다고 느껴졌다. 잔소리로 날 피곤하게도 하지만 무슨 짓을 해도 날 무조건 사랑하고 품어주는 엄마처럼 말이다.


영화 <미스 리틀 선샤인> 콩가루 집안을 보여주며 뼈 때리는 농담하는 것 같은 영화. 내 못난 구석구석 다 비추면서도 나를  항상 따뜻하게 비춰주는 햇살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

오늘도 도망가고 싶었지만 엄마 잔소리 같은 해도 내리쬐고 어찌어찌 버텼다. 전송한 메일에서 뭐라도 답장이 오길 기다려 봐야겠다.


 (나를 포함하여) 누군가의 긍정적인 회신을 기다리는 모든 분들의 건투를 빈다.

영화 <미스 리틀 선샤인> 한 장면.  내일 미인대회 참여를 앞두고 본인은 예쁘지 않다며 낙담하는 손녀. 넌 노력하고 있으니 패배자가 아니라 말하는 멋진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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