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니나nina Jul 11. 2020

달빛과 지하철 공룡놀이에 위안 받은 시간들

잠들기 힘들었던 어느 달밤, 영화 <행복을 찾아서>를 본 기억

잠들기 전 은은한 달빛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싶어요. 저도 참 달빛을 좋아합니다. 쨍한 햇빛은 저에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못난 저를 적나라하게 비추기만 하는 것 같아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런 해가 부담스러워 밖보다는 안을 좋아해 바람을 쐬는 일도 거의 없었어요. 그렇지만 달빛은 좋아합니다. 나만의 공간이 별로 없었던 삶을 살며 모두 잠든 나만의 시간을 붙드는 습관이 생겨 달빛과 친해졌어요.


제 팔베개를 베고 잠든 아이 숨결을 느끼며 창문으로 들어오는 달빛을 느끼는 시간은 저에게 참으로 위안이 되었습다. 아이가 잠들기까지 한참 동안 팔베개를 해주고, 잠들고도 깰까 봐 한참 동안 그렇게 ‘그대로 멈춰라’ 하고 있는 시간. 그 시간은 오로지 반투명 창으로 은은하게 들어오는 달빛을 느끼는 저 만의 시간이죠.


매일을 '살아내는 보통의 사람들'은 대개 있는 힘껏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쩌면 매일 힘든 일을 마주하기도 합니다. 예민하고 걱정이 많은 편인 저도 다가오지도 않은 내일에 대한 불안과 걱정을 많이 느껴요. 두려움을 덜기 위해 막연한 다짐보다는 몸을 움직여 무엇이라도 하는 행동을 지향합니다. 하지만 모든 일이 잘 풀릴 수는 없어요. 행동에 수반되는 절망, 실망, 실패는 항상 함께 합니다. 거의 매일 크고 작은 두려움과 실패는 있는 셈이에요.   


저는 9년 전쯤 결혼했습니다. 4년 뒤 아이가 태어났어요. 그로부터 3년 뒤 이혼소송을 했고 1년 후 합가를 했습니다. 합가 후 1년 정도 시간이 흐르고 있네요. 이혼소송 즈음 시작된 부부의 실업은 간간히 계약직 생활을 하긴 했지만 현재까지 장기실업 중입니다.


이 기간 동안 매일. 정도의 차이지만 기쁨, 기대, 걱정, 불안, 두려움, 슬픔, 절망, 실패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혼소송을 시작하기 전 개인상담을 받은 경험이 있어요. 그런데 제 발로 상담센터에 달려가기 전까지의 어떤 날들은 (많이 부끄럽지만) 밑도 끝도 알 수 없는 두려움과 무력감, 절망감에 압도되어 눈을 감고 깊은 잠에 들고 싶기만 하기도 했었어요.


잠을 자고 싶지만 너무 잠이 오지 않는 어떤 날은 숨도 잘 쉬어지지 않는 것 같고, 온몸 구석구석에서 어디서부터 어디가 간지러운 건지도 알 수 없는 가려움이 피어올라 몸부림을 치기도 했습니다. 인생 망한 것 같다고 느껴지던 밤들. 내가 바라던 삶에서 반대 지점까지 온 느낌, 어쩌면 동전 뒷면처럼 영원히 닿을 수 없는 어딘가에 가 닿은 느낌에 지배당해 두려움, 절망감, 피곤함, 무력감, 무능감..... 알고 있는 부정적인 단어를 모조리 끌어안고 스스로를 괴롭히던 시간들.


‘여기’만 아니면 괜찮을 것 같아 어디든 도망가고 싶었던 밤들이습니다.  마음을 다 읽고 있는 듯한 달빛은 ‘네가 어디를 가더라도, 너의 어떤 감정의 밤이라도, 나는 너에게 가닿아 응원할게. 정말이야’라고 속삭여 준 것 같아 위로가 되었습니다. 제가 듣고 싶은 말을 달빛에게라도 간청했던 모양이에요. 그런 달빛을 여전히 참 좋아합니다. (그래서 여전히 전 밤잠이 없나 봐요. 달빛이 너무나 좋아서.)


그런 밤을 함께 보낸 몇 편의 영화와 몇 권의 책들도 저에게 많은 위안이 되었습니다. 저는 실화 바탕 영화를 좋아해요. 영화화까지 된 실화. 어쩐지 살아가는 데 위안이나 통찰을 엿보는 기분이라 남편이나 아이가 잠든 시간에 달빛을 벗 삼아 보기도 했습니다.


그 밤들을 보내며 봤던 영화 중, 지금 생각나는 영화가 있어요. <행복을 찾아서 The Pursuit of happyness>. 물론 실화 바탕이에요.


<행복을 찾아서 The Pursuit of Happyness>는 윌 스미스와 그의 친아들이 부자지간으로 출연해 보는 입장에서 감정이입이 더 되었어요. 영화는 모든 인간은 삶, 자유,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는 말을 합니다.


배운 것도, 재산도 없는 한물 간 의료기기 세일즈맨 윌 스미스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 내고 있었지만 빚밖에 없고, 나아질 희망도 없는 현실에 아내도 자신을 떠나고 아들과 길에 나앉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넌 못할 거란 말을 절대 귀담아듣지 마. 꿈이 있다면 지켜야 해. 원하는 게 있으면 어떻게든 쟁취해’란 말을 아들에게 하는 아버지였고, 그 모습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아버지였어요.


임시거처에서도 쫓겨난 밤, 갈 곳이 없어 지하철 역사 화장실에 가게 된 부자. 아빠는 아이에게 타임머신을 타고 공룡세계에 온 듯 놀아주며 아이에게 자신의 불행한 현실을 나누어 주지 않으려 애썼어요. 그러다 잠든 아이에게 화장지를 이불 삼아 깔아주고 잠든 아이를 끌어안고 흐느끼는 장면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습니다.

영화 <행복을 찾아서 The Pursuit of Happyness>. 잘 곳이 없어 지하철 화장실에서 잠을 청하는 윌 스미스와 아들

이혼 결심 후 제대로 된 집도 구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와 집을 나갈 생각에 영화 속 '화장실에서 자는 장면'이 '나의 현실' 같다고 느껴지던 날들. 나의 온몸에 알 수 없는 가려움이 피어나는 날엔 그 장면을 보며 가려움을 잠시나마 잊었어요.

잘 곳이 없던 부자. 팔지 못해 들고 다니는 의료기기를 타임머신 삼아 공룡시대로 돌아가는데. 티라노사우르스를 피할 동굴을 찾자며 지하철역에 화장실로 가 잠을 청하게 된다

나의 눈물을 아이에게 보여주지 않고 윌 스미스처럼 공룡놀이라도 신나게 해 주고, 아이가 잠이 들면 울었어야 했는데. 참 쉽지 않았습니다. 영화는 결국 행복한 결말인데요, 결말과 상관없이 지하철역에서 공룡놀이를 하며 티라노사우르스를 피할 동굴을 찾다 아이를 화장실로 데려가, 휴지이불 위에 아이를 재우고 그제야 흐느낀 아빠의 모습. 그걸 보며 마음이 동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다정한 달빛을 많이 받다 보니 달빛 아래 깨어 있을 때나 햇빛 아래 깨어 있을 때나 감정 기복은 거의 없어졌어요. 밤이 좋아 깨어 있긴 하지만 예전처럼 알 수 없는 가려움이 많이 피어나지도 않고요. 하지만 여전히 마주 해야 할 두려움과 실패는 매일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압니다.


이제는 너무 많은 걱정과 두려움보다는 지금 나에게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그 안에서 충만하고, 그 안에서 지혜롭게, 그 안에서 자유롭게, 그 안에서 실패를 보듬어 나를 사랑하며 담담하게 두려움과 실패를 마주하고 싶습니다.


오늘도 해가지고 달이 뜨면 달빛은 제가 몸을 누이는 곳을 비추겠지요. 언제나처럼 그렇게 아무 말 없이 다정한 달빛을 저는 여전히 참 좋아합니다. 넘어지고 실패한 날도 달빛은 저를 찾아와 위로하겠죠. 편안한 밤 보내고 내일 보자고요.



매거진의 이전글 햇살은 언제나 나를 응원하고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