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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nina Jun 12. 2020

답이 없다고 여겨질 때

'답이 없다는 것도 하나의 답'

답이 없다는 것도
하나의 답이다.
소박하게 먹고
조심스럽게 말하고
아무에게도 상처 주지 마라
  - 호피족
  * 시집 - 김용택 엮음 <<삶이 너에게 해답을 가져다 줄 것이다>>


요즘 같이 답답할 때 자주 떠올리게 되는 시이다.

이 시가 아니더라도 답답할 때 누구나 한 번쯤은 '그래, 답이 없다는 것도 답이지'라는 생각은 할 것 같다.


나 역시도 '답이 없는 지금 내 상황'이 답답하다는 생각을 하는 건 하루 이틀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 내 삶을 비참하게 묘사하고 싶진 않다. 이혼 소송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힘든 일이 있을 때도 '남들도 다 그렇고 나만 힘든가 뭐. 다들 이렇게 불행하기도 하면서 사는 거지'라며 무턱대고 스스로를 억누르고 살았다. 항상 웃고 다니고 허우대 멀쩡하게 해서 다녔으니. 겉모습만 보면 그럭저럭 괜찮게 사는 사람으로도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마음은 비참할 때가 많아 비참함을 가리려고 더 웃고 다녔다. 알고 보면 남들도 나랑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고 합리화하며 하루하루 버텼다. 행복은 현실에선 찾아보기 힘든 것이며, 드라마나 책 속에나 있는 것이라 생각하면서 말이다. 지금은 무턱대고 '알고 보면 다들 불행한 면도 있어. 남들도 알고 보면 불행하다'는 식으로 내 삶을 대하진 않는다. 이혼 소송을 할 즈음부터 개인상담과 부부상담, 부모교육을 받으며 내 삶을 지탱하는 가족, 지인들과 알맹이 있는 이야기들을 처음으로 나눠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나 나름대로도 괜찮다'라고 진심으로 처음 생각했다. 30년 넘게 스스로의 삶을 비참하게 바라보던 호된 습관은 내 마음이 더 편안해지는 방향으로 고쳐가고 있지만, 현실이 답답한 건 답답한 거다.


이번 주에 갑자기 온 연락 한통이 답답함을 더했다. 퇴사한 지 몇 년이나 된 직장일로 다음 주에 검찰에 참고인 조사를 가게 된 것이다. 내가 퇴사 후 취임하신 임원과 또 다른 기존 임원 두 분의 3년간의 법적 다툼 관련으로 나에게까지 걸려오게 된 검찰 조사관의 전화. 검찰 조사관과의 30여분 간의 통화로 내 10년을 난도질당하는 것 같았다. 출산 시기가 1년에 한 번 있는 기관 평가 시기와 겹쳤던 터라 평가 담당이었던 나는 애 낳기 전날 밤 11시까지 야근을 했다. 애 낳는 당일까지 이메일로 평가 보고서를 제출하고 조리원에서도 노트북으로 일을 하며 보냈다. 내 아이는 태어난 지 70일도 되기 전에 어린이 집 종일 반에 가서 내가 바쁜 날엔 야간 보육까지 해야 했다. 열심히 했지만 아이에겐 미안해도 너무 미안했던 그런 시간이었다. 그런 10여 년간의 시간이 난도질당하는 것 같았다.


항상 매 순간 최고는 아니라도,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겠다는 마음으로 살아왔다. 지난 시간을 후회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어쩌면 내 삶의 전반 전에 해당하는 상당한 시간들의 현실적인 현재 스코어는 엉망으로 보인다. 속상하다.


그래도 계속 다운되어 있을 순 없다. 그렇다고 대책 없이 희망을 외치고 싶지도 않다.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EAT PRAY LOVE> 에서 주인공 리즈는 무너진 로마제국의 잔해를 대하며 변화하기 위해서는 두려워도 무너져야 함을 깨닫는다.

준비된 기회 앞인데 막연한 망설임으로 주저한다면 '아,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될 대로 라. 케세라세라'를 외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삐끗하고, 낙담하고, 준비하지 않고 '될 대로 돼라. 아, 몰라' 했다가는 다음 달, 내년에 더 큰 어려움이 오지 말란 법이 없다. 내가 희망을 붙들고 싶다면, 오늘도 내가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우선, 다음 주 조사에 가서 난도질당한 것만 같은 내 시간들에 대해 담담하고 진솔하게 이야기할 준비를 해야겠다.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에서 주인공 리즈가 두렵기도 했지만 자신의 진심을 포기하지 않고 마주하러 달려간다.

그리고 하나 더, 알 수 없는 허기로 인해 신경질적으로 거의 무의식적으로 계속 먹고 있다. 바삭바삭한 식감을 좋아해 맛이 강한 과자나 크리스피 초콜릿을 하이에나처럼 주방과 아이 물건 구석구석에서 찾아내어 입으로 넣고 있다. 위에 적어 놓은 시의 '소박하게 먹고'란 부분을 참 좋아해서 평소에 적어도 놓고 자주 떠올리는데도, 마음이 황폐해지는 순간에는 마구 먹어대고 후회하기를 반복한다. 이렇게 대놓고 브런치에 적어놓고 마구 먹고 후회하는 행동 또한 경계해야겠다.


마지막 하나. 위에 적어 놓은 시의 '조심스럽게 말하고 아무에게도 상처 주지 마라'를 되새긴다. 검찰에 참고인 조사를 간다는 상황 앞에 마음이 좋지 않게 많이 동하고 있다. 그럴 땐 오히려 잠시라도 입을 닫고, 생각을 가지런히 하고, 이렇게 브런치 같은 곳에 생각을 정돈하여 꺼내본다. 예전에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이라고 해서 내가 그에게 상처를 돌려줄 필요도 없다. 지나간 시간일 뿐이므로. 그리고 나에게 내가 상처를 주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내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보살펴야 하므로.


답이 없다고 절망하지 말고 근거 있는 희망을 찾아보자.

마음이 허하다고 아무거나 먹고 후회하는 일상생활을 하지 말자.

마음이 좋지 않게 요동친다고 해서 남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하지 말자.

내가 나 스스로에게 상처를 주지 말자.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EAT PRAY LOVE> 에서 주술사 케투가 균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이미지 :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EAT PRAY LOVE>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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