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생활인 1
저녁에 공원에 나간다. 자전거로 2분 거리에 있는 공원 한켠에 높이별 철봉과 평행봉이 생겼다. 아이가 철봉에 높이 오르고 회전하는 걸 좋아해서 매일 간다. 곁에서 운동을 하다가 아이들 잘 시간이 되면 집으로 향한다. 자전거를 올라 공원을 빠져나가는데 멋부린 여중생 셋이 나란히 자전거로 온다. 길가로 비켰다 지나쳤는데 뒤통수에서 소리가 들린다. "니하오!"
니하오는 내 빡침 버튼이다. 빡쳐서 이성이 살짝 마비된다. 마비된 이성으로는 영어도 네덜란드어도 떠올릴 수 없다. 잔뜩 인상 쓰고 뒤를 돌아 한국어로 소리쳤다. '야! 하지 마!!!' 한 애가 놀란 듯 돌아보길래 쏘아보고는 서둘러 중심 잡고 앞으로 나갔다. 뒤이어 우스꽝스럽게 리듬을 붙인 말과 웃음소리가 들린다 "하쥐뫄~~~"
와. 죽이고 싶다.
집에 가는 길에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화가 내려올 줄을 모른다. 내가 남을 가격해 본 경험이 있고 스스로를 제어할 수 없었다면 뭔 일이 났을지도 모른다. 상상 속에서나마 여러 버전의 응징쇼를 벌였다. 주먹질, 뒤통수 스매싱, 목 조르기. 상상은 실현을 가늠한다. 쫓아가서 팬다. 주변 사람들에게 제압당한다. 경찰서에 끌려간다. 이런 상상까지 가서야 멈춘다. 어쩔 수 없군. 그러고 보면 인간은 당한 것을 용서할 만큼 선량해서가 아니라 복수 후의 잃을 것이 두려운 사회적 동물이라 세상의 평화가 유지되나 보다.
3년 전, 네덜란드에 처음 이민 왔을 때만 해도 니하오에 예민하지 않았다. 멍청한 사람의 호감 표현이려니 했다. 중국에 대한 악감정이 없으니 중국인으로 오인받는 게 불쾌할 일이 아니라고도 생각했다. 둘 다 아니다.
의무 집단이 아니고선 이렇다 할 소속이 없는 현대인은 모르는 사람에게 인사를 안 하지 않나. 하더라도 보고, 미소 짓고, 안녕이라 말할 시간이 충분한 산책 때나 하지 않나. 지역 룰을 따라 그 나라말로 하지 않나. 하지만 나는 자전거를 탈 때 많이 당했다. 추월을 당하며, 혹은 나를 지나치면서. 대응할 틈을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호감은커녕 오물 투척하 듯 뱉는 오물 같은 말이다.
그렇게 검은 머리에 누렇고 납작한 얼굴을 지닌, 눈에 띄는 나는 이곳에서 통용되는 행동양식에서 제쳐진다. 반면 니하오, 아리가토, 칭챙총, 합장 인사 등 특정한 언행을 반복적으로 당한다. 그게 나와 관련이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나를 니하오로 보도록 허락한 적이 없었음이 관건이다. 지들 보고 싶은 대로 나를 보는 건 지들 소관이라 치더라도 그렇게 보고 있음을 알리기까지 하는 무례함은 도무지 참을 수 없다. 인간 각자가 얼마나 다채로운가. 자기만의 무지갯빛을 소중히 안고 다니다 주변에 맞을 빛깔을 골라 활짝 혹은 조심히 드러내는 개인들에게 왜 맘대로 보자기를 씌우고 보자기라고 부르냐는 말이다. 같은 이유로 중국인도 불쾌할 것이다. 보자기가 오성홍기라 완전히 부정할 수 없으니 더 불쾌할지도 모르겠다. 휴. 찌질한 것들. (니하오를 내뱉는 것부터가 구제불능.)
다음에 또 당하면 어쩌지. 물리적 복수는 실현할 수 없으니 남은 건 말 뿐이다. 상상 속 나는 그 애를 뒤쫓아 멈춰 세운다. 떠듬떠듬 네덜란드어로 말한다.
"나한테 니하오 왜 했니? 여기는 중국이 아닌 네덜란드잖아. 나도 여기 말로 'Hallo'로 인사하거나 그냥 지나쳐지고 싶은데. 네가 나처럼 생긴 사람에게만 니하오라 하는 거, 그거 차별이야. 생김새로 사람을 다르게 대하는 거잖아. 너도 언젠가 너의 타고난 특징으로 차별받으면 기분이 매우 더러울 거야. 너는 다른 사람 불쾌하게 하는 걸 즐기니? 넌 그런 사람이니? 그럼 계속 그렇게 살아. 그리고 너와 똑같은 애가 너로 인해 즐거울 일이 항상 함께하길 바래. 네가 차별의 말을 듣지 않는 시간에도 너의 취약점에 꽁꽁 갇혀있길 바래. 넌 쉽게 네가 싫어질 거야. 남을 깔보는 사람은 스스로를 깔보기 쉽거든. 너를 깔보는 사람에게 합당한 이유가 없다는 것도, 그래서 어쩔 도리가 없다는 것도 깔봐봤으니까 알겠지. 그니까 넌 망할 거야. 이만 간다. 망할 사람이랑 말 섞기가 싫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