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발도르프 1
개학 날이다. 이제 일찍 일어나고, 점심 도시락도 싸야 하고, 제시간에 도착하도록 채근해야 한다. 저번 학기까지만 해도 큰 애와 작은 애가 같은 유치부여서 편했다.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 데려다 놓으면 되니까. 9월 학기부터 큰 애가 초등부로 옮긴다. 알림장 앱을 보니 초등부는 유치부 집결장소로부터 열 걸음 멀어지고 시간은 15분 빨라진다. 첫날이라 엉뚱한 시간과 장소에 있을까 봐 몸에 힘이 들어간다. 아침 등교 담당인 남편에게 신신당부했다.
오늘은 휴가 복귀 첫날이니 집에서 일하기로 했다. 똑같이 재택근무하는 남편이 등교시키고 돌아왔다. 큰 애는 새 선생님 보고 잘 갔다 하고 작은 애는 알던 선생님이라 반가워했단다. 순조로운 새 학기구먼. 나만 잘하면 된다. 백 통이 넘는 이메일을 찬찬히 읽는다. 지우고, 메모하고, 물어볼 거 정리하고...
한참 일하는데 큰 애 친구 아빠에게 메시지가 왔다. "굿모닝, 아이가 울고 있어요. 오늘 행사는 유치부에서 초등부로 올라가는 걸 기념하는데요..." 첨부된 사진에서 아이는 친구들 사이에서 혼자 선생님에게 안겨 울고 있다. 맙소사.
얼른 알림장 앱을 켰다. 새 학기 공지에 첨부파일이 두 개 있었다. 첫 번째 첨부는 생활 전반에 관한 것이고 두 번째 첨부는 초등부 첫날, 즉 오늘에 대한 내용이었다. 두 번째 첨부를 안 읽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학교 첫날에는 전교생이 1학년의 입학을 축하합니다.
8시 30분까지 정문에서 아이와 부모님이 기다립니다.
8시 45분에 선생님과 함께 학교 마당으로 갑니다.
형님들이 노래를 불러줍니다.
선생님이 먼저 작은 강을 뛰어넘어 '1학년' 쪽으로 옵니다.
입학하는 아이가 호명되면, 책가방을 맨 채 강을 뒤따라 넘어옵니다. 이제 아이는 1학년이 된 것입니다.
1학년 아이들은 선생님과 의자에 앉아서 노래를 듣습니다. 6학년 형님에게 꽃 한 송이를 받습니다.
9시 15분, 1학년이 교실에 갈 때 6학년이 손을 잡고 동행합니다.
아이들의 하루가 시작되고 어른들은 축하의 디저트를 나눠 먹습니다.
이럴 수가. 안 읽어서 행사가 있는지 몰랐다. 와 어떻게 안 읽었다고 입학 행사를 짐작조차 못 하지.
내가 경험한 유치부엔 입학 행사가 없다. 만 4세 생일에 살포시 반에 입장하는 느낌. 개학 행사도 없다. 유치부 개학날에 데려다주면 그만이었다.
내가 경험하거나 들은 적이 없으면 그냥 없을 일이다. 이민 와 살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음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름에 익숙하다. 없음과 모름은 과묵해서 별 탈 없이 살지만 입학 행사는 없는 셈, 모르는 셈 치기에 너무 굉장한 일이었네.
행사가 끝날 시간이었지만 그때라도 일을 제쳐두고 학교로 갔다. 부모들은 삼삼오오 모여 케이크를 먹고 있다. 몇몇 아는 얼굴이 나를 보고 울상을 짓는다. 왜 안 왔냐고. 아이가 엄청 울었다고. 끔찍했다고. 나도 울상을 지었다. 아이가 교실로 올라갔다고 해서 나도 찾아갔다. 아이는 작년 언어 보조 선생님과 손을 잡고 있었다. 선생님께 첨부를 안 읽었다는 구차한 변명을 했다. 선생님이 자기가 잘 달랬다고, 계속 울다가 6학년 아이들 여럿이 하이파이브를 해주니 기분이 좀 풀렸다고 했다. 담임선생님도 지금이라도 와서 다행이라고, 아까는 너무 슬펐다고 했다. 아이는 진정한 것 같았다. 미안하다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에 앉는 걸 보고 돌아왔다.
나의 부재에 바로 연락하는 이 없구나. 연락할 만큼 가깝지 않아서일까, 아님 입학 행사가 있어도 일하러 갔을 법 하다 느꼈을까. 잘못은 내가 하고 연락 없는 남 탓을 하다가 생각을 고쳐먹었다. 입학식 같은 행사를 모를 리 없다 여겼겠지. 피치 못해 못 온 사람 마음이 더 불편하게 연락할 수는 없었을 꺼야.
이미 지난 일 어쩌겠나. 이제 알림장 앱 구글 번역기 돌려 꼼꼼히 읽어야 겠다. 네덜란드어에 익숙해지려고 일부러 번역기를 안 썼는데 그러다 보니 대강 보게 되었다. 아이에게 씁쓸한 기억을 남겼고 나도 소중한 순간을 놓쳐 속상하다.
엄마가 진짜 미안해, 우리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