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푸른 Jul 15. 2023

지가 착한 줄 아는 임대인

「조용한 생활」2023년 5월호에 채택 (주제 : 이사)

연고 없는 이천으로 이사를 간 건 남편의 이직 때문이다. 남편은 열린 척하며 옭아매는 국내기업에서 열일하다가 몸이 좀 상했다. 더는 이렇게 못 살겠다 싶어서 외국계 회사로 옮겼다. 회사 합격 통보를 받고 이천으로 이사 가기 전부터 다음 단계를 생각했다. 네덜란드에 위치한 본사로 가자. 이곳은 스쳐가는 곳.


주중에는 남편이 일하느라 시부와 함께 이천에 집을 알아보러 갔다. 이천 지리를 몰라서 아파트 몇 곳을 되는대로 둘러보다가 주공 아파트에 닿게 되었다. 시부는 주공 아파트는 대단지여서 관리비가 저렴하고, 20년 넘은 아파트여서 오히려 더 튼튼하고, 위치가 괜찮을 것이라고 했다. 부동산에 가서 2년 전세 있냐고 물으니 한 군데를 소개해 줬다. 체리색 몰딩이 탐탁지 않았지만 리모델링이 돼있다는 사실이 중요했고, 할머니 혼자 살아선지 깨끗한 편이었다. 거실에 놓인 마리아 상을 보니 선한 사람일 것 같았다. 할머니는 이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얼결에 새집으로 옮기게 되었다고, 시간이 촉박해 팔지 못해서 전세를 내놓는다고 했다. 나는 원룸에서 2년을 살다가 작지만 방이 세 개에 베란다가 생긴다는 사실과 마음까지 확 트이는 논뷰에 들떠버렸다. 순한 세입자처럼 보이려 했다. 할머니는 시부와 내가 사이가 좋아 보여 부녀지간인 줄 알았다고, 세입자 잘 얻은 것 같아 기쁘다고 했다. 뭐가 되었든 좋은 집에서 살고 싶어서 분위기 맞춰서 웃었다.


집주인 할머니는 일 년에 한 번 정도 집에 찾아왔다. 낯선 곳에 아이와 덩그러니 하루 하루를 버티던 그 때엔 누구의 관심이라도 단비 같아서 집주인의 방문도 황송했다. 깨끗한 집 빌려주셔서 감사하다 하고 깨끗하게 관리하고 있는 걸 알아주길 바라며 잘 보이고 싶은 이 마음이 궁금해지는 시간이었다. 과일이나 빵을 들고 와 한 시간 남짓 계셨던 것 같다. 집주인은 독일에서 30년간 일하고 살다가 사별 후 고국으로 돌아왔는데 그 결정을 두고두고 후회한다며, 우리가 네덜란드에 간다면 다시는 돌아오지 말라고 했다. 각별한 조언 같았다.


입사부터 본사에 갈 생각이라고 말하고 다녔던 남편에게 상사는 2년은 이천에 머물라 했다. 2년이 지나니 상사는 불쑥 1년을 더 있으라고 했다. 전세 계약이 끝날 참이었다. 집주인은 전세 연장은 불가하다고 했다. 나는 둘째 임신으로 배가 불룩한 상태였다. 다른 전셋집으로 가기엔 남편의 본사행이 언제 결정될 지 몰랐다. 전세금을 못 받을 위험을 끼고 무거운 몸으로 이사까지 하기엔 몸과 마음이 사려졌다. 집주인에게 월세 전환을 제안했다. 아기 엄마가 하자는데 해야지. 1년짜리 월세 계약으로 바꿨다.


본사 행은 1년짜리 월세 계약이 끝날 즘인 2020년 1월에 결정된다. 4월쯤 비행기를 타게 될 것이다. 3개월짜리 월세 계약서로 갱신했다. 약속한 4월이 되었는데 코로나가 시작되어서 출국 날짜는 기약 없이 미뤄졌다. 할머니에게 전화로 사정을 말씀드렸다. 코로나 때문에 나갈 날짜가 계속 미뤄지네요. 계약서 쓰기도 뭣한 상황인데 한 달씩 연장해도 될까요? 그러라고 하셨다.


7월이 되자 드디어 날짜가 정해졌다. 할머니께 전화드렸다. 저희 이제 가게 되었어요! 축하의 말을 기대했는데 할머니는 이런 갑작스러운 통보가 어딨냐고 노발대발했다. 나는 코로나 때문에 이사 날짜를 정할 수 없어서 그랬고, 이전에 한 달씩 연장하는 걸로 합의되지 않았나고 했다. 할머니는 그런 적이 없다며 석 달 전에 알리는 게 관행이라고, 코로나든 뭐든 내 사정이라고, 나가려면 관행대로 월세 석 달 치를 내고 가라고 했다. 기가 찼다. 사람의 인정에 기대서 대화 내용을 녹음하지 않은 내 순진함이 야속했다.


남편이 법령을 뒤져본 결과 다행히 우리에게 유리한 조항을 발견했다. 임대인과 세입자 사이에 계약 종료 관련 대화가 오가지 않았으면 이전 계약기간만큼만 묵시적으로 연장이 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연장된 날짜는 보름 정도 남아있고 통보를 안 하더라도 그때 끝난다. 남편은 이 조항을 들이대며 월세 한 달 치로 합의 보겠냐, 아님 법정에 가겠냐고 물었다. 3개월 전에 통보해야 한다는 부동산 말을 등에 이고 기세등등하던 할머니는 부동산 사장이 남편을 압도하지 못하자 마지못해 합의를 봤다. 한 달 치 더 내는 것도 매우 못마땅했으나 남편은 관용이라 생각한단다. 이봐, 관용은 약자에게나 보내는 거라고.


스치는 집이라 생각했지만 그 집에 정이 많이 들었다. 전업주부가 되고 처음 만난 집. 매일 구석구석 쓸고 닦고 보살폈다. 두 아이 백일잔치, 돌잔치를 다 하고, 철마다 바뀌는 논뷰를 보며 고립감을 잠시, 자주 잊었다. 천천히 육아 동지들이 생겼다. 주변 곳곳에서 변함없이 머무는 얼굴들에 익숙해졌다. 그 집은 오랜만에 내가 동네에 속해있단 느낌을 주었다. 그런데 끝이 그래 놓으니 그 집에 관련한 모든 추억이 더럽혀지는 것 같았다.


그래도 이 글을 쓰고 나니 할머니가 이해가 간다. 월세로 바꾸며 나같은 복덩이가 어딨겠냐 여겼는데 할머니는 매매할 걸 월세로 바꿔준 것이 선의였다 생각하겠지. 계약 해지 통보를 석 달 전에 못한 것도 코로나든 뭐든 내 사정이라면 내 사정. 이런 사정에서 손실을 최소화 하도록 미리 조치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보인다. 할머니가 열통 터질만 하다. 나로선 운명이 도와준 것 처럼 잘 풀린 마무리였다.


그래도 싫다. 편의를 봐줄 게 아니면 딱 임대인처럼 굴 것이지 왜 착한 척, 아량있는 척이야. 매매로 집 방문 하겠다는 부동산 연락을 거절하는 것으로 미미한 보복을 했다. 짐 빼던 날, 할머니는 남편만 불러 정산하고 나에겐 인사도 안하고 가 버렸다. 보복이 미미하지만은 않았음에 은은하게 고소했다.


푸르른 여름의 논. 바로 우리 아파트 길 건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