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추우니 수프가 당긴다. 기왕이면 진해서 속이 든든하고 열감이 오래가면 좋겠다. 며칠 전 수프를 염두에 두고 사 둔 양송이버섯이 떠오른다. 잔뜩 끓여서 두 아이와 나눠 먹어야지. 편식이 심한 남편이 안 먹을 테지만 그렇다고 먹고 싶은 걸 안 할 순 없다.
1. 양송이 6개와 양파 반 개, 마늘 한 톨을 다지고 올리브유를 둘러 볶는다.
2. 다른 팬에 루를 만든다. 버터 2T를 센 불에 녹이고 밀가루 2T와 우유 1T를 재빠르게 볶는다.
3. 루와 볶은 채소를 합치고 우유 500ml와 생크림 250ml를 더해 끓이고 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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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글보글 끓는 수프를 눌어붙지 않게 계속 저어주었다. 눅진하고 꾸덕한 수프 완성! 느끼하고 고소하니 맛이 꽤 괜찮다. 오늘 점심은 여기에 면 섞어서 대충 애들 먹여야겠다. 수프를 저으며 면도 다 삶았다. 애들 식탁에 앉히고 면에 수프를 얹어주려 했는데...
'엄마 나 수프 먹기 싫어.'
'나도.'
야 너네랑 같이 먹을라고 잔뜩 만들었는데...! 하고 억울해하기엔 메뉴를 내 맘대로 정했구나. 그렇다고 내 잘못은 아니다. 아이들이 원하는 메뉴만 해주면 아이들에게 신메뉴는 어떻게 소개한단 말인가? 그냥 재수가 없는 한 끼다. 하. 냄비 반이 넘는 이 수프를 혼자 다 먹어야 하네.
삶은 면으로 급하게 오일파스타를 만들어 애들을 먹였다. 나는 수프를 배부르게 먹었다. 저녁엔 다른 걸 먹었다. 그래서 다음 날에도 수프는 변함없이 냄비에 남아 있다. 이걸 안 먹으면 계속 냄비에 남아 거슬리고 냄비를 쓸 수도 없다.
반찬통에 담고 냉장고에 보관해도 되지만 번거롭다. 냄비를 씻어야 하고, 반찬 통 재고가 줄며, 냉장고 자리를 차지하고, 냉장고를 열 때마다 먹어야 함을 상기해야 한다. 냉장고에서 꺼내면 다시 냄비에 옮겨 데우고, 먹고, 반찬통과 냄비를 닦아야 한다. 게다가 냉장고에 들어간 음식은 왠지 맛이 없다. 먹고 싶어서 먹는 게 아니라 먹어야 해서 먹기 때문. 냉장고에 넣고 아예 존재를 까먹는 경우도 있는데 그럼 음식이 상한다. 음식을 버리는 마음은 정말 죄스럽기에 냉장고에 보내는 일을 애초에 차단하고 싶다.
그래서 다음 날 저녁에 수프를 끓이고 면을 섞어 와장창 다 먹어버렸다. 천천히 먹으면 배불러져서 먹기 싫어질까 봐 전투적으로 왕창왕창 먹었다. 다 먹고 나니 나의 먹성에 으쓱해지고, 음식을 안 버리는 윤리적인 사람이 되는 것 같다. 근데 배가 터질 것 같다. 배불러서 고통스러울 바에는 조금씩 요리하거나 차선으로 냉장고에 음식을 맡기면 될텐데. 알지만 늘 그냥 먹는다. 이미 양 조절에 실패했고 먹어서 빨리 없애는 게 제일 간편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