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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푸른 Dec 16. 2023

IKEA 핫도그

쌀쌀한 일요일이다. 영원히 뜨듯한 전기장판의 포로가 되고 싶지만 아침 8시에 아이들이 안방으로 들이닥친다. 이불 안으로 끌어들여 조금 더 버텨보지만 오래 못 간다. 그래도 8시가 어디냐. 두 시간마다 깨던 신생아시기에 비하면 감지덕지다.


날이 추운 겨울에는 아이들과 놀 거리가 마땅치 않다. 일단 먹는다. 아침을 대충 먹이고 나는 뜨끈한 미역국과 당근라페를 올린 토스트를 먹었다. 종이접기, 색칠공부, 과학상자, 기찻길 만들기로 오전을 보낸다. 시간이 안 가서 일찍 점심을 준비한다. 대충 고기랑 김치 볶아 먹이고 나는 또 뜨끈한 미역국과 토마토 오이 샐러드, 계란비빔밥을 먹었다. 


뜨거운 국을 먹으면 남은 국을 먹는 건데도 융숭한 대접을 받는 것 같다. 미역국과 같이 먹은 토스트, 샐러드, 계란비빔밥도 간단하게라도 내가 나를 위해 차린 음식이다. 내 음식에 성의를 조금만 묻혀도 포만감이 흡족해진다. 그럼 다른 주전부리가 필요 없다. 이 만족스러운 배부름에 뭘 얹기 싫기 때문이다.


오후엔 슬슬 놀 거리가 모자란다. 하다 하다 한글공부를 했다. 추운데도 산책을 다녀왔다. 그래도 두 시 반. 돈 별로 안 들고 애들이랑 시간 때울 만한 데 어디 없나. 그렇게 급 정한 곳이 IKEA다. 차 없을 땐 버스 두 번 타고 한 시간 걸려 가야 해서 엄두를 못 냈다. 한데 남편이 겨울에 자전거 타고 비 맞기 싫고, 내가 한국에 출장 간 사이에 육아에 필요하다며 경차를 리스했다. 처음엔 떨떠름했는데 막상 차를 타보니 신분이 상승한 것 같다. 차가 주는 자유보다 구속이 더 크다고 끊임없는 다짐을 했지만 이제는 그 다짐이 잘 안 먹힌다. 나도 내가 몸 편한 걸 아쉬워하게 될 줄 몰랐다. 쬐끄만 차여도 우리 넷을 멀리 옮겨다 주니 기특하다. 편하네. 차는 편하다는 걸 인정한다. 좀 씁쓸하구나.


IKEA에 들어서자 에스컬레이터 앞에 있는 점원이 쿠키를 건넨다. 남편은 안 먹고 아이들도 안 먹는단다. 나도 아침 점심 잘 먹었으므로 안 먹어도 되는데... 홀랑 하나 집어 들었다. 누가 먹을 걸 주는데 안 받는 건 내게 너무 어려운 일이다. 사실 필요 없는 물건은 잘 거절한다. 물건은 들이면 사라지지 않는다. 계속 그 자리에서 자기의 불필요함을 어필한다. 버리자니 용도가 있는 것도 같고 쓰레기로 전락시키기 꺼려진다. 그렇다고 새로운 주인을 찾아주려면 구질구질해진다. 필요할 만한 사람을 정하고 적절한 타이밍에 조심스러운 뉘앙스로 필요하냐 물으며 나에게 필요 없는 물건의 쓸모를 호소해야 한다. 몇 번 이 과정을 반복하니 초장에 거절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처신임을 알게 되었다. 

반면 음식은 받아서 먹으면 없어진다. 받은 것의 결말을 고민할 필요가 없다. 먹기만 하면 쉽게 주려는 사람의 선행욕구를 채워줄 수 있다. 거절을 안 해서 거절당하는 이의 민망함을 야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맛있다. 뜬금없이 들이닥치는 공짜 음식은 대게 공장 발 가공식품이다. 달콤하고 바삭하고 고소하다. 수락의 일회성과 주고받는 즐거움과 맛의 즉각적인 쾌락에 주는 족족 받아먹는다. 


하지만 주전부리를 먹으면 달콤함은 잠깐이고 오늘은 망했다는 판정이 내려진다.


다이어트와 묶여 산지 대략 30년이다. 부모의 자식 생각 마냥 다이어트는 안 하고 있는데도 내 메모리를 좀먹고 있다. 어떤 음식이든 보자마자 다이어트 훼방용인지 아닌지를 감별할 수 있는데 먹고 나면 기상부터 그 순간까지 참아 온 공덕(?)을 날리게 된다. 그럼 망한 것도 속상한데 망한 김에 먹어나 볼까 하며 야금야금 먹다 결국 퍽퍽 먹고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남편이랑 애들이 와플 사 먹을 때 시나몬브레드를 굳이 사 먹었다. 귀가 전 애들이 아이스크림 먹을 때 IKEA 채식 핫도그를 발견했다. 일반 핫도그는 99센트인데 채식 핫도그는 49센트다. 오늘 다이어트는 망했고 채식 핫도그는 반값이고 채식 핫도그는 여기서 밖에 못 먹으니까 먹어야겠다. 먹기 직전엔 승리한 기분이었는데 먹기 시작하자마자 완패한 기분이 든다. 이 기분을 달래려고 저녁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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