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슨 인 케미스트리/보니 가머스
아이고, 수희 님....
엄살쟁이가 왔습니다. 전 세계를 통틀어 폐경을 맞은 여자들 중 가장 아프다며 엄살을 부리는 김설입니다.
내 입으로 엄살이라고 말하지만 나에게 누군가가 "거 참, 죽는소리 어지간히 하쇼!" 라고 말한다면 그냥 확 멱살을 잡고 싶을 만큼 아팠습니다. 와... 진짜... 엄마는 폐경 직전에 자궁에 자궁만 한 혹이 발견되어서 끙끙 앓으셨는데 나는 그때 속으로 걱정은 했지만 얼마나 아프신지는 짐작도 못했거든요. 퇴근을 하면 집으로 곧장 가서 엄마를 도와드릴 생각은 안 하고 친구들과 건국대 주변을 배회하거나 단골 카페에서 수다를 떨거나 주방장 아저씨가 청양고추를 썰어 넣고 끓여주는 신라면을 먹으며(죽순이) 시시덕거리다가 늦게서야 집으로 가곤 했어요. 이 나이가 돼서야, 폐경 후유증을 호되게 앓는 지금에서야 그때의 철없는 행동이 생각나는 걸 보면 나도 참.... 답이 없는 인간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수희 님, 지난주 유일한 낙은 한의원이었어요. 이번에 한의원을 옮겨 봤습니다. 옮긴 병원의 의사 선생님은 정말 침을 잘 놓으십니다. 사실 병원은 끔찍하게 싫어요. 특유의 냄새며 휜 가운이며 후덥지근한 공기, 그것과는 별개의 서늘한 기운 하며.. 뭐 하나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죠. (병원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마는) 그런데 한의원은 예외예요. 씁쓸하고 달큼한 한약 냄새도 좋고 잔잔히 흐르는 음악도 좋고 뜨뜻한 침대도 좋고 등에 올려주는 찜질팩도 마음에 들어요. 치료가 끝나면 집에 가는 길에 병원에서 사용하는 것과 똑같은 찜질팩을 찾아서 주문해야지 생각하곤 합니다. 물론 병원 문을 나서면 바로 잊어버렸다가 이틀 뒤 같은 생각을 또 하고.
치료가 끝나면 하루 동안 사용할 양의 피를 수혈받은 것 같아요. 추운 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보리차를 얻어 마신 것처럼 온몸에 온기가 퍼져요. 그러고 나서 마시는 라테 한 잔은 그야말로 행복입니다. 그 순간이면 입버릇처럼 자주 하는 말이 나옵니다. '사는 거 뭐 별거 있어?' 행복이란 게 특별한 게 아니라고! 어쨌든 살아있잖아??
산다는 게 다 그런 거지 누구나 빈손으로 와 소설 같은 한 편의 얘기들을 세상에 뿌리며 살지. 자신에게 실망하지 마 모든 걸 잘할 순 없어.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면 돼. 인생은 지금이야. 딴딴 딴딴 딴.... 아모르파티~~ 를 흥얼거리며 목각으로 만든 것 같은 어깨도 들썩들썩. 아주 신이 납니다. 일찍이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며 아모르파티를 외친 니체에게 경의를 표하면서 시계를 보면 오후 네 시가 넘어가고 있답니다. 그러면 또 저는 2절을 부르기 시작합니다.
말해 뭐해 쏜 화살처럼 사랑도 지나갔지만 그 추억들 눈이 부시면서도 슬펐던 행복이야. 나이는 숫자. 마음이 진짜. 가슴이 뛰는 대로 가면 돼 이제는 슬픔이여 안녕. 왔다 갈 한 번의 인생아. 아모르파티...
좋은 노래를 들을 때마다 진정한 글은 노랫말에 다 있구나.... 생각한답니다. 아무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런 겁니다.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자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 운명이라는 놈이 뭘까요? 이 얄궂은 것이 대체 무엇이길래 인간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으켜 세우기도 하고 울게 하고 웃게 하고 고통을 주고 슬픔을 주는 걸까요? 나는 내 운명을 알고 싶어서 미쳐버릴 것 같은 때가 많았어요. 힘든 일이 너무나 많아서 운명이라도 미리 알아야겠다. 그래야만 앞으로 닥칠 끔찍한 일에도 더 놀라지 않을 것 같았으니까요. 나는 운명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책을 읽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예요. 그러다 어떤 책을 읽게 되었는데요. 안타깝게도 오래전이라 책 제목이 기억나지 않아요. 이런 내용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전설처럼 내려오는 (슬픔의 나무) 이야기입니다. 알고 계실지도 모르겠지만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사람이 죽어 하늘로 올라가다 보면 누구나 슬픔의 나무를 지나게 된답니다. 그곳을 지나야 천국에 갈 수 있다나요. 자신이 살아오는 동안 겪었던 슬픔을 모두 그 나무에 걸어 놓고 홀가분하게 천국으로 올라갈 수 있고 자신의 슬픔보다 가벼운 슬픔을 선택해 목에 걸 수도 있다고. (굳이 왜 슬픔을 다시 선택해야 하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 사람들은 자신의 슬픔을 다 걸고 나서 다른 사람이 걸어 놓은 슬픔을 면밀히 살펴보는 거죠. 고심 끝에 슬픔을 다시 선택하는데 대부분 자신이 걸어 놨던 슬픔을 다시 선택한다는 거예요. 이유 인즉은 이렇답니다. 나만큼 얄궂은 운명을 살아온 사람이 또 있을까. 나만큼 큰 슬픔을 겪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 싶지만, 막상 다른 사람의 슬픔을 살펴보면 그래도 내가 겪은 슬픔이 가장 견딜만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지요. 내 운명이 거지 같았어도 내게 주어진 삶이 가장 귀하고 고맙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 온다는 겁니다. 그걸 깨닫는 순간 자신은 이미 천국에 도착했음을 알게 되는 것이지요.
수희님, 운명은, 운명이라는 건,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도 그래요. 그냥 비극적인 존재이자 운명적 존재인 것이지요. 원래 그런 거니(원래 그렇다는 말을 이길 재간이 없습니다) 인간으로서 운명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요. 운명이란 놈이 내 편이 아니라고 느껴지는 순간이 오면 이런 생각만 하면 됩니다. 시간아.. 가라... 얼른 가라...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새 운명이 친 장난도 지나가고 난 뒤가 되는 거예요. 그야말로 치유의 힘을 가진 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고난의 시간을 못 견디는 사람이 있기도 합니다. 고난의 시간은 유독 느리게 지나가니까요. 그럴 때는 신에게 의탁하는 방법도 있지요. 거기서부터는 각자의 선택인 것입니다.
그리고 고맙게도 자신의 운명에 찾아온 고난과 슬픔을 이겨낼 한 가지 방법이 더 남아 있습니다. 아주 쉬운 방법이자 모든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거나 실행하고 있을 방법입니다. 운명의 휘둘림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인간들끼리 비극을 나누고 위로를 주고받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처럼 편지로 근황을 주고받고 아프다며 엄살을 부리고 살아있는지 안부를 묻는 이런 사소한 일, 좋아하는 일을 함께 해보자며 의기투합을 하는 것, 돈 버는 일과는 무관하지만 낄낄대며 즐거워할 수 있는 일을 도모하는 것. 소설을 한 번도 써보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소설을 써보자고 약속을 하는 것. 그러다 보면 운명이 치는 짓궂은 장난도 좋은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는 것이지요. 수희 님! 이렇게 즐겁게 지내다 보니 남들보다 일찍 늙어가는 몸을 가진 나의 운명도 좋은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어쩌라고? 내 몸이지!) 참 놀랍지 않습니까?
최근 레슨 인 케미스트리라는 소설을 읽었습니다. 처음엔 제목 때문에 무슨 과학 소설인가 했습니다. 이 책을 읽은 어떤 작가는 몸이 아프면서도 하루 밤새 360 페이지의 책 두 권을 완독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위급 수술을 할 정도의 급성 질환이었다고. 그 정도로 재미있었다고 했어요.
곧 애플 tv에서 드라마로 제작될 거라는 얘기도 있고요. 이 소설을 여성의 이야기로 몰아가려는 분위기도 느꼈는데요. 나는 그런 이야기로 읽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인생에 필연적으로 오는 역경과 고난과 슬픔에 맞서고 이겨내는 한 인간의 이야기로 읽었어요. 운명이란 놈은 받아들이는 사람의 태도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인간 성장 서사였습니다. 미국적 영웅 스토리라는 느낌은 있었지만 취향에 맞는 유머가 곳곳에 많아서 나름 즐겁게 읽었답니다. 수희 님! 나는 기회가 된다면 이런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사람들을 펑펑 울게 했다가 배꼽 빠지게 웃기는 @@@에 털 나게 하는 소설을 쓰고 싶어요. 사람들이 내가 쓴 소설을 읽고 이렇게 말했으면 좋겠습니다. 김설 진짜 소설 쓰고 앉아있네.
2022. 12.6
언젠가는 소설을 쓸 김설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