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소고기를 1근 먹었다. 얇게 저민 불고기용 고기를 뜨끈한 국물에 담가 들쩍지근하면서 고소한 연노랑 알배추와 아삭한 숙주를 더해 양껏 먹었다. 소고기가 이렇게 맛있는 거였나 생각하면서. 요즘 툭하면 하는 말이다. 소고기가 이렇게 맛있는 거였어?? 고기 맛을 알아버렸다. 먹어보니 그렇더라. 고기는 맛을 알아버리면 게임은 끝이었다. 그때부터는 기름지고 고소한 육고기의 맛을 잊을 수가 없어지는 것 같다. 삼겹살은………하………
불과 6개월 전만 해도 "나는 채식을 합니다."라고 말하고 다녔다. 폴로와 페스코 베지테리언을 오가며 나름 잘 살았었다. 남들은 계란에서 비린내가 난다는데 나는 그 말을 들으면 내 코와 입맛이 이상한가 싶었다. 맥반석 계란을 먹고도 목이 멕히기는 커녕 그 자리에서 두 개를 먹고도 물을 안 찾을 정도였고 가만히 있다가도 뜬금없이 계란말이에 흰쌀밥이 눈앞에 아른아른하는 사람이었다. 닭고기는 없어서 못 먹었다. 탕수육보다 깐풍기가 더 맛있었고 치킨을 먹을 때면 높은 칼로리에 발목이 잡혔지만 잡힌 발목에 기름을 발라 미끄럽게 만든 다음 발을 쓱 빼고는 치킨 앞에 앉는 인간이 나였다. 반면에 돼지고기와 소고기의 맛은 몰랐다. 그건 없어도 그만인 식재료였고 안 먹어도 일 년 내내 생각이 안 나서 폴로 베지테리언의 벽은 벽으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랬던 내가 채식에 관심이 생긴 건 집사(고양이 이름)가 집에 와 한 식구가 된 후였다. 어느 날부터 고기를 눈앞에서 치우고 싶었다.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생각했고 그런 내가 기특하다고 여긴 적도 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지금 고기를 먹는 사람이다.
얼마 전 사석에서 왜 고기를 다시 먹게 되었는지 질문을 받았다. 나는 뻔하지만 당뇨 핑계를 댔다. 곡물 탄수화물을 완전히 끊으니 고기가 당겼다고. 이상하리만큼 단백질에 매달리게 되더라고 대답했다. 쌀을 끊고 고기를 먹은 덕분에 혈당 스파이크는 없어졌지만 이제 내가 걱정해야 할 건 당뇨병이 아니라 고지혈증으로 바뀌었다. 뭐... 어차피 그게 그거.
고기를 잔뜩 사서 냉동실에 쟁여놓기는 했지만 식물성 단백질 식품과 콩고기도 꾸준히 먹으면서 육류와 대체 식품을 오가며 지낸다. 당뇨병은 음식 선호까지 바꿔버린 병이었다. 외식을 하려면 이제 고기 맛집부터 검색하게 되었을 정도다. 앞으로 또 어떻게 달라질지 모른다. 건강 상태에 따라 어떤 음식을 먹게 될지 또 어떤 음식을 끊게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아마 그때그때 방법을 찾아가며 이것저것 먹고살게 될 것이다.
오래전 친구와 한의원에 가서 진맥을 하고 약을 지어 먹은 적이 있다. 그때 의사가 했던 말이 꽤 의미 있었다. 의사는 내게 당신은 반드시 땀나는 운동을 해야 힘이 나고 건강해져요!라고 말했고 친구에게는 땀을 흘리면 오히려 몸에 해로우니 되도록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끝내라고 말했다. 그때는 왜? 나만? 땀을 흘려야 하냐며 억울해 했지만 땀 흘린 후에야 오히려 힘이 생기는 사람이라는 걸 여러 번 경험했기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수긍했다고 운동을 열심히 한 건 아니고)
살다 보니 반드시 이래저래야 한다…는 건 없었다. 이런저런 경험을 하다 보면 되는대로 살아가는 게 좋을 때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되는대로 살다가 오히려 일이 잘 풀리는 경우도 많다. 먹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채식을 하다가 건강에 작은 문제가 생겨 육류를 다시 먹는 사람도 봤고 완벽한 채식을 하면서 채식을 하기 전보다 더 건강해진 사람도 봤다. 친구와 내 체질이 다르듯 사람마다 체질과 몸 상태가 다르기에 각자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나가면 되지 않을까? 당뇨병이 걸리니 지키고 싶은 신념이나 가치관을 완벽하게 따르지 못하게 되었다. 그에 따라 작은 죄책감이 생겼지만 그 감정을 잘 다스리면서 자연스럽게 살아가면 된다고 나를 다독인다.
구황작물 님의 책은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자기의 경험을 나누는 정도여서 읽기에 좋다. 채식을 하든 하지 않든 다른 이가 먹고사는 이야기를 듣는 일은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