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남자들은 아내나 여자친구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아로마 목욕을 시켜주고 부탁하지 않아도 알아서 두피 마사지를 해준다. 그들은 아내가 차를 한잔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물을 끓인다 . 차 한잔 마실까?' 하는 순간 차는 이미 대령해 있는 것이다. 다른 남자들은 아내가 미처하지 못한 생각을 해낸다. 잠도 자지 않고 어지간해서는 지치지도 않는다. 세상에 존재하는 다른 남자들은 이처럼 정력적이고 매력이 넘친다.
여인의 편지에는 다른 남자가 있다. 영원히 할께 할 수없다는 점 때문에 남자는 여자에게 있어 다른 남자다. 내남자가 어떤 사건으로 인해 영원히 만날 수 없는 다른 남자가 된 것이다. 그런 이유로 그 남자와 함께하고 싶은 욕망은 불같이 타오른다. 그러면서도 여인이 쏟아내는 편지 속 언어는 담담하고 아름다웠다. 감옥이라는 배경과 어두운 상황은 머리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어떤 책은 감정을 쏟아내고 싶지 않고 읽은 다음 그자리에서 털어버리고 싶다. 너무 애잔하고 슬퍼서 오히려 감정을 아끼게 되는 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밤이었다. 나는 소설가를 대체로 천재로 여기지만, 존 버거만큼 그 단어가 어울리는 사람도 드물다고 생각한다. 그는 시인이면서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을 떡 주무르듯 주무르는 예술가다. 못하는 게 없는 멀티 플레이어다. 그러니 나를 잠 못들게 하는 건 누워서 떡 먹기다. 내 집에 있는 내 남자, 눈치라고는 밥 말아 먹은 내 남자, 침대 구석을 차지하고 웅크리고 잠든 남자, 한때 성은 백 이름은 마탄이었을지도 모르는 내 남자와 당신들의 남자. 그들이 감옥에 갇히지 않고 옆에서 자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라고 오늘 밤 존버거가 알려주었다.
이날 독서모임의 이야기는 언젠가 꼭 글로 남기고 싶었다. 왜나하면 우린 A가 X에게를 읽고 만났지만 에릭 시걸의 러브스토리에 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했기 때문이다. 대중 소설의 소재는 반이상 사랑 이야기고 잘 쓴 사랑 이야기는꼭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러브스토리> 역시 내 또래의 사람이라면 안 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영화다. 요즘 젊은이에게 <러브스토리>를 봤냐고 를으면 모른다고 하겠지만 눈싸움 장면을 이야기하거나 주제곡을 들려주면 다들 아~ 한다. 짐작하겠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다. 게다가 여주인공은 영화나 드라마에서만큼은 자주 등장했던 백혈병이다. 오직 죽음만이 둘을 갈라놓을 수 있다는 오래된 낭만적 사랑의 계보 같은, 조금 뻔한 이야기다. 이별은 원래 슬픈 일이지만 특히 죽음이 만든 이별은 사람의 마음을 아리게 하는 구석이 있다. 나는 딱 거기까지만 알았다. 왜냐하면 영화로 봤지, 소설은 읽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우리 독서모임 구성원 중에 러브스토리를 소설로 읽은 사람이 있었다. 여전히 낭만을 밤처럼 먹고 사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책 구절을 수첩에 적어 다녔다. 나는 그 점 또한 놀라웠다. 그분이 소개해준 소설의 도입부가 그냥 끝장난다.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하는 마음에 도입부의 문장은 이곳에 적지 않는다. 다만, 에릭 시걸이라는 소설가는 사람들이 무엇에 혹하는지 너무나 잘 아는 사람이라는 점만 알려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