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설 Aug 18. 2024

필경사 바틀비2




프리드리히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에서 거친 노동을 사랑하며 빠르고, 새롭고, 낮선 것을 쫓는 사람들은 자신을 감내하지 못하고 있는 거라고 했다. 그런 부지런함은 오히려 현실에 대한 도피이자, 자기 자신을 잊으려는 의지의 표상이라는 거다.  일찍이 니체는 진정한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하고 앞만 보며 달려가는 사람들에게 깨우침을 준 것이다.  바틀비는 아무래도 니체의 영향을 받은 듯하다.  그의 저항은 비굴하지 않고 있어 보인다. 소설의 화자인 월스트리트 변호사가 바틀비를 표현한 문장만 봐도 그가 얼마나 꼿꼿한 인물인지 알 수 있다.



창백할 정도의 단정함, 애처로운 기품, 그리고 치유할 수 없는고독, 그가 바틀비였다. r필경사 바릅비a, 최먼 멜빌 지음, 한기욱 옮김, 창비, 2010. p58




짧은 이 문장은 눈앞에 바틀비가 서 있는 듯 생생하다.  바틀비는 변호사 사무실에서 법적 서류를 필사하는 일을 한다.  어느 날부터 그는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라는 말로 필사를 거부하고.  사무실에 머무르기만 한다. 안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안 하는 것을 택하겠다니.  다른 일이 바빠서도 아닌데 어떤 일을 시켜도 똑같이 대답한다. 이 엉뚱한 고집쟁이를 난감하게 바라보는 변호사는 고용주답게 직원을 쓸모로 판단하는 사람이다.  직원 개개인의 특징을 파악하고 있는, 이를테면 직원 관리 능력이 뛰어난 고용주다.  그런 그가 바틀비라는 비상식적인 인물과 부딪치며 겪는 혼란이란! 그는 바틀비에게 일을 시키려고 온갖 방법을 동원한다.  하지만 거부하기 힘든 기운, 생기는 없지만 오만한 태도에 짓눌린다. 바틀비를 향한 동정심과 개인의 이익이 끊임없이 줄다리기하지만 결국 바틀비를 버리는 선택을 한다.  그에게 퇴직금을 주며 내일 아침엔 사무실에서 보지 않길 바란다는 최후의 말을 남긴다.  변호사는 바틀비를 사무실에 두고 방을 나온다.  



바틀비 자신보다 더 유명한 그의 어록, "안 하는 편을 택하겠다'는 말은 반항이라기엔 약하지만 따라하고 싶을 만큼 유혹적이다.  얼핏 들으면 수동적 저항 같아 보이지만 열정적 저항이다.  그는 하지 않겠다는 선택을 통해 자기의 삶을 스스로 닫아버렸다.



지금, 야근을 밥 먹듯이 하고 주말에도 직장 동료들과 스터디 모임을 하고 자식이 몇 학년인지는 몰라도 직장상사의 생일은 챙기는 사람이 있다 .  어느 날 그가 느닷없이 상사가 시키는 일을 거부하고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고 말한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 질문에 J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자기 인생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일개미라고 했다. 하루에 열두 시간을 근무하고 주말까지 그렇게 일해서 돈은 차곡차곡 통장에 쌓였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게 좋았다고 한다.  돈에 여유가 생기자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 일을 찾아 직장을 옮겼는데 행복하지 않고 불안하기만 했단다.  어느 날 잠자리에 들었는데 뭔가 형언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중압감에 눌려 밤새 두려움에 떨었고 당장 죽을것 같은 공포감이 들었다고 한다.  시간이 많아지니 뭘 인하는 시간을 견디기 힘들었고, 뭐라도 하려고 사람들을 무작정 따라 하기 시작했단다 .  도무지 멈추는 게 안 돼서 병원을 찾아갔고 의사의 조언으로 독서를 시작했다고 했다.



그런 일을 겪은 경험자로서 필경사 바틀비는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소설이었다고 발했다.  독서모임은,자기에게 일종의 치유라면서 자리에 앉은 모두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나는 J에게 내가 힘들  때마다 중얼거리던 문장 하나를 적어주었다.



에스키모들에게는 '훌륭한'이라는 단어가 필요 없어.  흘륭한 고래가 없듯 훌륭한 사냥꾼도 없고, 훌륨한 선인장이 없듯 훌륭한 인간도 없어. 모든 존재의 목표는 그냥 존재하는 것이지 훌륭하게 존재할 필요는 없어."

-펭귄뉴스- 김중혁 지음, 문학과지성사, 2006,p99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