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경사 바틀비 허먼 멜빌-
작가님의 인생은 어땠나요? 젊은이들에게 자주 받는 질문이다. 나는 대답 대신 내 인생을 영상으로 만들어 보여주고 싶다. 인생이 이렇게까지 꼬인다고?' 하며 찜찜한 기분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말해서 내 인생은 내가 어쩔 수 없는 것이 분명히 있었다. 삶에는 어느 정도 계획이 필요하다는 말에 동의하지만, 계획을 세워도 계획대로 되는 건 많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번뜩인 생각과 충동적인 선택이 마치 악마가 장난을 지는 것처럼 내가 가려는 길을 조금씩 비트는 것 같았다. 마음과 행동이 언제 어디서 흔들릴지 모르니까 예측조차 할 수 없었다. 예측이 현실과 100% 맞아떨어진다는 건 애당초 불가능했다.
나는 어느 순간 속으로 이렇게 외치고야 딸았다. '아. 망했다. 인생이 연극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미련도 고민도 없이 이쯤에서 끝날 텐데 그러나 어쩌겠나 바틀비 흉내를 내며 "이따위 인생 안 사는 편을 선택하겠다 라고 말할 용기가 없는데.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삶이라는 놈에게 끌려다니며 살았다. 그건 처음 자전거를 배우던 어린 시절의 기억과 비슷했다. 딱 넘어지기 직전의 기분이다. 아, 이거 넘어지겠는데, 팔꿈치가 쓸리고 무릎이 깨질 일이 서서히 다가온다는 예감, 자전거의 위태로운 흔들림속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곤 어... 하는 외마디 비명 외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 그저 바람이 뺨에 와닿은 것을 느끼는 것. 그게 내가 경험한 삶이었다.
직장 동료 중 인생이 매끈해 보이는 사람이 있었다. 성격 또한 호탕해서 천성이 저런가 싶었다. 나와는 다르게 직장 생활이 편해 보였다. 오늘 관둘까, 내일 관들까만 생각하는 내가 보기에 그녀는 직장의 신' 같았다. 어느날 그 비결을 물어본 적이 있다. 그녀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그래 보인다고? 난 부지런하게 사는 방법 밖에 몰라. 그래야 행복해진다고 배웠어. 그래서 참는 거야. 그러니까 너도 참아. 행복, 또 행복이 문제구나. 행복이 목표면 정말 행복해지는 걸까? 그즈음 나는 직장에서 돌아올 때마다 다른 사람이 됐다. 능력이 더 생긴다는 뜻이 아니라 알 수 없는 불안함과 조급함에 두리번거리고 오히려 행복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나는 행복할 수 있을까. 성취도 없이 자부심도없이 돈도 없이 집도 없이 그럴 수 있을까. 그런 생각만 머릿속에 꽉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