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질 수 없어 더 목마른 마음
-A가 X에게 존 버거-
휴일 아침이었다. 습관처럼 일찍 잠이 깨어 거실로 나오니 아직 어둠이 가득했다. 거실에 앉아 하루가 밝아오는 것을 보고 있다가 갑자기 멍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오늘 하루는 무엇을 해야 할지 가늠이 안 됐다. 하루라는 온전한 시간이 앞에 놓여 있는데 무엇을 해야 할까? 다음 주에 예정된 독서모임의 책을 다 읽지 못한 게 생각났다. 내가 목록에 넣은 책이지만 솔직히 내키지 않았다. 이 책을 왜 읽자고 했을까? 후회하면서 2주를 보냈다.수정할 부분에 빨간 줄이 북북 그어진 초고가 돌아오려면 아직 시간이 좀 남았다. 지금은 가리지 않고 아무 책이나 다 읽어버려도 될 만큼 시간이 많다. 그래도 누군가의 편지를 읽으면 이상하게 죄책감이 든다. 보고 싶은 마음과 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싸운다. 어떤 사람이 쓴 은밀한 편지를 읽어도 되는 걸까.
책을 방금 다 읽었다. 좀 울었다. 안 그래도 울고 싶은 참에 누군가가 뺨을 한 대 친 것 같다. 누가 마음을 칼로 두세 번 그은 것 같다.찢어진 마음이 바람에 나부꼈다.그러고는 우울했다. 이 우울의 원인은 욕망을 숨긴 여자의 담담함 때문인 것 같다.
정치범으로 독방에 간힌 남자를 그리워하는 여인의 욕망은 삶을 이끌어가는 동력이기도 하지만, 여인의 삶은그 욕망에 끌려다닌다. 단 한 번의 면회도 허용되지 않는 상황에서 그리움으로 야위는 여성의 말들. 그걸 보는 게 아팠다. 그런 삶은 뭔가가 부족하고 황폐하다. 갈증이 난다. 욕망이 어디 그리 쉽게 채워지던가. 바닷물을 먹는 것처럼 욕망은 항상 그녀를 목마르게 했을 뿐 단 한 번도 시원하게 해갈된 적이 없다. 들이켜고 들이켜도 갈증은 커지기만 한다. 그걸 알면서도 쉬지 않고 욕망에 목말라하는 여자가 나를 우울하게 한다. 어떤 책은 마음을 다치게 한다. 상처나고 벌어진 틈새로 피가 고이고 아물때 쯤이면 결국 마음의 결이 바뀌게 되는 책이 있다.
정서와 감수성이 픙부히고 남을 배려할 줄 알면서 조지 클루니같은 카리스마와 부드러움을 동시에 지닌 완벽한 남자, 아니면 오스카 와일드는 어떤가. 촌철 살인과 시크함, 유머 감각에 우아한 외모까지 빠지는 게 없다. 비록 성 정체성은 모호하지만 어자피 상상인데 그게 무슨 상관인가. 감성 두 스푼에 까칠 한 스푼을 섞어 천천히 저어놓은 듯한 매력을 가진 남자도 좋다.조금 골치 아플 스타일이지만 뭐, 적당히 넘어갈 수 있다.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예술적 감성이 있다면 골치 아픔 정도는 적당히 넘어갈 수 있다. 이처럼 여자들이 상상하는 건 언제나 다른 남자다. 내 집에 있는 남자 말고, 내 남자 말고 다른 남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