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자식 삼각 관계

친애하는 개자식에게_데팡트

by 김설

누가 누구에게 "개자식"이라고 할 수 있는 자격이 있을까? 인생이란 그냥 누군가의 눈에는 개자식으로 보이는 역할을 돌아가며 맡는 연극 같다.

​이 소설에서 세 명의 주인공은 각자 자신의 관점에서 '정의의 사도'이자 동시에 다른 이의 눈에는 '개자식'이다. 40대 남성 작가 오스카는 자신의 SNS에 " 아름다움이 완전히 몰락해버렸다"라며 50대 여배우 레베카의 노화를 조롱한다. 레베카는 "친애하는 개자식에게"로 시작하는 분노의 이메일을 보내고 20대 페미니스트 조에는 오스카의 성희롱을 미투로 고발한다. 그렇게 '개자식 삼각관계'가 시작된다.




​나도 얼마 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출간한 책에 대한 부정적인 후기를 쓴 사람도 더러 있었고 블로그에서 외모에 대한 비아냥을 우연히 읽었다가 마음이 쓰린 적도 있었다. 내가 피해자가 돼보니 너도 좀 당해 봐야 돼... 하며 그대로 대갚음해 주고 싶었다. 그 사람의 SNS에 분노의 댓글을 달고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싶은 충동도 있었다.



데팡트는 이런 현대인의 복잡한 감정과 갈등을 편지와 SNS 게시글이라는 형식으로 날카롭게 포착해낸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나도 이런 생각 해본 적 있는데?" 하는 순간이 계속 계속 찾아온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처음에는 서로를 증오하던 세 인물이 점차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다.

"저 인간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지?"라고 생각하다가도, 그 사람의 인생 스토리를 알게 되면 "아, 그럴 수도 있겠네"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처럼.



이 책은 "나를 거부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을 수없이 던진다. 그러나 질문 자체가 요즘 시대의 가장 중요한 숙제인가 싶을 뿐 책에서 명확한 답을 찾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이 소설의 진짜 매력은 작가의 문체에 있다. 데팡트는 감정을 정말 '날것'으로 표현한다. 특히 레베카의 초반 분노 이메일은 읽으면서 "와, 이 정도 욕설도 문학이 될 수 있구나" 하는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프랑스어 원문은 더 심하지 않았을까 싶다. 누군가에게 보내고 싶었던 분노의 이메일이 있다면, 이 소설을 읽고 대리만족을 느낄 정도다.

프랑스에서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다는 말을 들으니 그들 역시 '개자식'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일이 많은가 보다. (요즘 뉴스를 보면서 욕을 자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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