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수저인가 흙수저인가

by 김설



매달 책 한 권으로 현실 도피하는 독서 모임 운영자 김설입니다. 어제는 일본 소설 「은수저」를 읽고 모였습니다.







소설의 시작에서 주인공은 "상자 안에는 별 보배 조개, 동백나무 열매, 어릴 때 가지고 놀던 자잘한 것들이 가득 들어 있는데, 그중에서도 특이한 모양을 한 작은 은 숟가락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라고 말해요. 서랍 속 상자에서 발견한 은수저가 이야기의 시작점이 되어 과거로의 여행을 시작하게 됩니다.
은수저는 과거와 현재의 연결 고리죠. 저도 읽는 동안 줄곧 내 인생의 은수저를 발견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미니멀하게 살자고 다짐하고는 웬만한 잡동사니는 다 버렸으니 추억이 담긴 물건이 남아 있을 리 없지요. 생각해 보니 흠집이 잔뜩 난 스테인리스 수저와 대나무 수저는 있네요.

"어린아이의 작은 입속으로 약을 떠밀어 넣기가 어려웠는데, 이모가 어디선가 찾아온 이 숟가락으로 매번 약을 떠먹여주었다"라는 구절에서 볼 수 있듯이, 은수저는 병약했던 주인공을 돌보던 이모의 헌신적 사랑과 보살핌을 상징합니다. 이모가 주인공에게 약을 먹이던 도구는 단순한 물건이 아닌 돌봄과 치유의 상징이 되는 것이지요. 또한 값비싼 물건이 아니라도 그것에 담긴 감정과 기억이 더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소설의 배경은 일본의 메이지 시대(1868-1912)입니다. 일본이 근대화를 급속히 추진하던 시기로, "은수저"는 이 시대 말기와 다이쇼 시대 초기의 교육과 가족 문화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주인공이 학교 입학을 두려워하는 모습은 당시 새롭게 도입된 근대적 교육 제도에 적응해야 했던 아이들의 심리를 보여줍니다.
열등반, 엄격한 규율, 집단주의적 교육 방식 등은 메이지 시대 학교 교육의 특징이 나타나는데 우리나라와도 깊은 연관성이 있지요. 놀라운 건 소설에서 그려진 학교 폭력, 따돌림, 적응 문제는 현대에도 여전히 지속되는 이슈라는 사실입니다.


"아버지는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는 집에 둘 수 없다"라는 문장도 나오는데요 인류의 상상력은 100년 동안 진화하지 않았나 봐요. 부모님들의 협박 멘트가 메이지 시대나 지금이나 참 창의력이 빈곤하죠?





소설에서 특히 재미있게 읽은 부분은 전통적인 이야기(이모가 들려주는 옛이야기, 하쿠닌잇슈 등)와 근대적 교육(서양 의학, 독일어 등)이 공존하는 모습이었어요. "도케이 선생이 돌아가시고 대신 '서양 의사' 다카사카 선생이 돌봐주면서, 종기가 서양 약으로 깨끗이 나았다"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요즘으로 치면 "한의원 다니다가 돈 아까워서 병원 갔더니 항생제로 하루 만에 낫더라" 같은 현대적으로 자동 번역되는 문장도 많았어요. 그래서 더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소설 속 이모의 역할이 현대에는 제도적 돌봄(유치원, 학교, 방과 후 프로그램)으로 대체되었는데요, 이모가 제공했던 정서적 안정과 무조건적 사랑의 중요성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가치인데 그것을 실현하기 어렵다는 사실이 조금 안타깝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점차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은 권위주의적 분위기 속에서도 싹트는 개인의 자율성을 보여줍니다. 지금은 아이들의 자율성과 의견 존중이 더 강조되지만, 위 세대 권위와 경험의 가치를 후대와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는 여전히 중요한 과제인 것 같습니다.



일본에는 하시모토 선생이라는 분이 계세요 이 분이 '슬로 리딩' 교육법으로 도쿄대 최다 합격생을 배출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소설 "은수저" 한 권을 3년 동안 읽게 했답니다. 넷플릭스 한 시즌을 3시간 만에 완주하고 다음 날 내용을 하나도 기억 못 하는 시대에 슬로우 리딩이라니. 하지만 이 소설의 전반부만 읽어보면 자동으로 한 문장, 한 단어를 음미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발견하는 내 안의 작은 울림들. 책에서 빠져나오기 쉽지 않아요


하시모토 교육법의 핵심은 한 권의 좋은 책을 오랜 시간에 걸쳐 깊이 있게 읽음으로써, 단순한 지식 습득을 넘어 창의적 사고와 깊은 통찰력을 기르는 것입니다. 어떤 책을 3년 동안 읽으며, 등장하는 단어나 개념마다 깊이 탐구하고 연결 지어 사고하는 습관을 만든다고 해요. 단순히 암기나 문제 풀이를 뛰어넘어 문학을 통해 깊은 사고력과 창의성, 인문학적 소양을 기르는 방법인 것 같습니다.



참고 도서~ 천천히 깊게 읽는 즐거움
저자: 이토 우지 다카
내용: 하시모토 다케시 선생님의 슬로 리딩 교육법과 그 성과를 소개하는 책으로,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이 책은 하시모토 선생님이 일본 고베시의 무명 학교에서 "은수저" 한 권을 3년 동안 천천히 읽는 국어 수업을 통해 도쿄대학 최다 합격자를 배출하고 창조적 리더를 양성한 교육 사례를 상세히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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